반 고흐 창해ABC북 1
마리 엘렌 당페라 외 지음, 신성림 옮김 / 창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 본 쿠로사와 아키라의 [꿈]이라는 영화에는 고흐가 등장한다.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밀밭을 배경으로 태양에 노출된 자연 풍경을 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한쪽 귀를 자른 상태였으니 아마도 그가 자살하기 얼마 전의 모습일 것이다. 고흐 역을 연기한 마틴 스콜세지의 모습이 고흐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서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고흐는 미술가들 중에서는 가장 세계적인 인물이 아닌가 한다. 네덜란드나 프랑스를 떠나 전세계인의 가슴 한 켠에 간직된 예술가의 원형적 인물인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흐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고 그의 예술의 비밀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가 그림에 집착했던 열도에서 삶을 대하는 어떤 자세를 배우고자 하는 듯하다.

가난과 냉대 속에서 자기만의 절대를 꿈꾸었던 예술가로서의 고흐는 그의 사후에, 그러니까 생전의 그에게는 하등 조금의 삶의 용기도 심어주지 않는 칭찬과 존경을 남겼다. 자기가 죽은 후의 명성이나 영광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만 비참하게 죽으면서도 불멸과 절대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그것으로도 예술가에게는 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흐에 관한 책들은 아동용 도서에서 성인용, 그리고 화보나 전기, 허구의 이야기 등 다양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림만으로, 혹은 허구만으로 고흐의 예술적 성취와 관련된 비밀에 다가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호사가의 취미나 아니면 극적인 감동을 기대하는 세인들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가장 풍부하게 고흐의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예술적 풍토와 결합되지 않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조명은 특정 예술가의 성취를 제대로 조명할 수 없다. 바르비종화파나 인상파, 일본 판화와의 연관성, 그리고 고흐가 교류한 화가들과의 상관관계 등 이 책에는 고흐와 관련되어 언급되어야 할 부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예술가의 병은 창조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작업을 중단할 때, 그의 생명은 끝이 나는 것이다. 고흐의 정신적인 고투가 얼마나 치열했던가는 그가 죽기 전 그린 작품의 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예비군훈련을 떠나면서 챙겨 가지고 갔다. 그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까 하다가 고흐를 선택한 것이다. 무릇 삶이 따분하다고 느낄 때면, 항상 나는 화가와 그의 그림을 생각하게 된다. 결코 쉽게 범접하기 힘들지만, 그와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나는 결론 삼아 독서의 결실로 챙기곤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프랑스, 그러니까 고흐가 거닐며 작품을 구상하던 그곳들을 방문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남프랑스의 강렬한 태양을 맞으며 고흐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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