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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역사 - 누벨 끌리오 총서 02
사빈 멜쉬오르 보네 지음, 윤진 옮김 / 에코리브르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문득 어느 순간부터 거울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반사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거울이 발명되지 않았거나 이용 가능하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맑은 샘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비쳐지는 반사상은 평면거울과는 달리 보는 위치에 따라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에서 보는 이는 자신과는 다른 괴물을 본 것처럼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거울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거울 속에 반사된 자신의 상을 정확하고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상을 보면서 만족과 불쾌를 느끼고, 자신에 대한 환영이나 환상을 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이나 동영상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자신의 반사상을 보는 일이 더 이상 두려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거울은 외양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아의 정체성을 시험하고 욕망과 환영을 개입시키는 정신분석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특히 감수성이 민감한 예술가나 철학자의 경우 거울은 우리가 보는 것의 이면에 보이는 것을 규율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측면에서 거울은 신성이나 우주의 섭리를 보여주는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거울은 결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 수많은 예술 작품의 비밀에 다가가는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거울의 존재론이나 현상학에 다가가려 할 때, 서적이나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정치사나 제도사 위주의 역사 연구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미시사적, 문화사적 접근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고는 하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인 듯하다.
거울을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으로 다룬 책을 찾다가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프랑스 학자의 연구 결과이므로, 프랑스 중심의 역사 서술이 책의 초반부를 차지하고 있지만, 후반부의 서술은 거울과 관련해서 내가 기대한 점들을 잘 다뤄주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의 거울의 역사가 본질적인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거울과 관련된 지적 갈급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