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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지식 ㅣ 나남신서 88
콜린 고든 지음 / 나남출판 / 1991년 2월
평점 :
품절
푸코는 지금 우리가 사상적으로 언급하는 학자들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닌가 싶다. 확정적인 언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태도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그가 구사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가장 많은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는 인물이면서, 그가 제공하는 지식이나 이론의 차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언가 푸코의 언급을 인용하는 차원에서도 그다지 명료하지 못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무언가 푸코의 진의를 왜곡한 것같은 느낌을 가지게도 되고, 어떨 때는 그런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주장의 개요만을 따서 자기 논의의 문맥에 맞게 인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독자들의 지적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그가 구사하는 발화 전략상의 특징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인 것같다. 프랑스 본국의 학자들까지 푸코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쩔쩔매는 걸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푸코 자신의 문제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런 현상을 사물을 바라보는 코드나 전략상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역시 궁극적으로 세계관이나 인식론상의 문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저작을 통해서 그것에 접근하는 일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의 발화들은 일련의 조리 있는 개념 체계로 정리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며, 때로는 각각의 발화들이 모순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런 탓에 푸코라는 사상가는 대체로 아주 대중적인 논점, 예를 들면 미시권력론을 주창한 이론가로서 범박하게 제한된 상태로 대중화되거나 전문적 지식의 영역에서만 논의되는 양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적 지식과 전문적 지식 사이에 가로놓인 이 늪을 건너는 일은 푸코식 사유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기존의 푸코에 대한 저작이 여러 권 출간되어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연구서로 알려진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라는 번역서가 있기는 하지만, 번역상의 문제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을 요한다. 명저가 難箸로 돌변한 기막힌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글보다 말 속에 진리가 더 많이 담겨 있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문자보다 소리에 높은 권위와 진정성을 투영하는 이런 통념에 대해서 데리다는 현전의 형이상학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학문의 요체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현장성, 그러니까 직접성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의력과 환기력을 월등히 고양시키기 마련이다. 비록 그 현장성을 다시 문자로 옮긴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대담집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대담이나 강연 형식의 책은 대중적 지식과 전문적 지식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 <권력과 지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은 푸코 사상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그 어떤 푸코 관련 서적보다 이 책을 더 권하고 싶은 것은 형식상의 이점과 함께 푸코 사상의 요체가 될 만한 이야기들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서 번역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인명이나 지명을 영어식으로 옮긴 잘못이 간간이 눈에 띠지만, 그것도 큰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문제를 가감하고 남을 정도로 번역이 깔끔하게 되어 있는 편이라, 국내 학자의 저서 이상으로 잘 읽힌다는 점은 순전히 번역자의 재능으로 돌려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