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역 - [초특가판]
월터 살레스 감독,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외 출연 / SRE (새롬 엔터테인먼트)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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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은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길과 함께 얘기가 시작되고 그 길이 막바지에 다달을 때 영 화는 끝난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실제적인 물리 적 공간 'road'이기도 하지만 인생과 연관되는 추 상적인 공간 'way'를 가리키기도 한다. 보통 영 화 속 주인공들은 우연찮게 '길'에 나서게 된다. 그 길은 예정된 목적지가 있는 길일 수도, 무작정 떠나는 길일 수도 있다. 아마 영화 속의 길들 은 어떤 예정된 목적지가 있는 경우가 더 많을지 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공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가정된 목적지가 없는 영화에 나는 한층 흥미를 느낀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두 여성들의 만남과 헤어짐만큼 내 예측을 넘어선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찌 보면 세상의 많은 영화들은 2시간 남짓의 길을 함께 하다가 헤어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로드 무비가 아닌가 싶기도 하 다. '길이 끝나자 여행은 시작된다'라는 모호한 말 은 대학 1년부터 나를 괴롭히고, 그만큼 나를 사로잡은 말이다. 여행은 길이 시작되면서부터 시 작되는 게 아니던가.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 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고 지금 그 말 뜻을 온전히 이해한 것도 아니다. 이 말은 소설의 내적 형식을 설명한답시고 어떤 사람이 한 말이 다. 소설 속 주인공은 뭔가를 찾아 길을 떠나지 만, 그 길이 끝나도 실질적으로 뭔가를 찾아낼 수는 없다. 다만 그때 그 주인공의 의식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는 달리 새로운 의식으로 감싸이게 된다. 그때 시작되는 의식 속의 여행을 통해 주인공은 한 차원 높은 의식으로 옮아간다.

이런 식의 설명법은 헤겔식의 논리를 성장소설이나 교양소설을 밑바탕으로 구성한 논리에 불과하지만, 로드 무비를 볼 때도 나는 이런 식의 평가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그 영화 속 주인공들과 그 영화를 보는 내게 길이 끝나는 그 순간 의식 속에 여행의 여지를 마련해 주느냐 않느냐. 물론 영화는 소설같지 않아서 액션 위주의 로드 무비도 많다. 그런 경우엔 그 액션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상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가 그 이상을 보여줄 때 나는 좀 더 진지하게 그 영화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중앙역'의 두 주인공 꼬마 죠슈아와 중년 아줌마 도라. 어찌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만 남이지만, 그들의 만남과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대화을 엿듣고 있노라면 그리 과장된 포즈를 느낄 수 없다. 그건 연출한 감독의 의도나 태도상의 문제이리라. 뭔가를 찾아 우연히 길을 떠나게 된 두 사람. 죠슈아는 아빠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그리던 아빠의 상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반쯤은 성공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은 이젠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해 여유롭고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할 중년 아줌마 도라의 변화를 목격하는 일이다. 그의 이웃과 함께 하지 못한 채 기괴하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예전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조슈아와의 여행을 통해서 그녀는 자신이 묻어뒀던 지뢰를 스스로 터뜨리고선 울고, 뉘우치고, 그리워한다. 그 나이의 인간에게도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마냥 나이만 먹는다고 삶이 순조로워질 거라거나 자신이 현명해 지거나 단단해질 거라는 생각은 막연한 낙관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진실과 그 진실이 던져주는 감동, 이건 비단 문학에만 고리타분하게 적용시켜야 할 기준은 아닐 것이다. 삶이 지겨워서 신나는 영화가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삶이란 게 그리워진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지 이 런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뭔가가 그리워진다. 영화 속 주인공이 내가 되고 내가 영 화 속 주인공이 되어 일종의 호접지몽, 이심전심의 경지로 나를 이끄는 그런 경험. 그런 경험을 선사할 영화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굳이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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