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온다
Wen Jiang 감독, 지앙 홍보 외 출연 / 엔터원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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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국내외적으로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국가간의 협상은 이미 예전 협정을 통해 끝난 문제처럼 얘기되지만, 그로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결은 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는 마치 유럽에 있어 나치즘이 그러하듯 '기억의 정치'를 통해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는 역사의 미궁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난 10여 년 간 일본의 행보가 보여주듯 일본 군국주의는 그 싹이 완전히 거세되지 않은 채 적당한 환경의 도래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우려?) 우리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중국, 필리핀의 움직임은 조용한 듯하다.(과연 그럴까?)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중국에서 이런 문제들이 크게 거론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일본과 곧바로 맞닿아 있지 않다는 지정학적 조건이나 일본 정도는 충분히 대적할 수 있다는 중화의 자존심, 그런 것? 여하튼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일본 군국주의 시절 중국의 경우는 여하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뿐더러 애써 알려는 사람도 드물다.

중국의 대표적 영화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강문이 주연하고, 감독한 '귀신이 온다'는 일본 군국주의 말기 중국 한 촌락민들의 경험을 중국적인 해학과 능청의 어법으로, 그렇다고 이 영화의 톤마저 가볍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해안가 마을에 사는 농부 다산에게 어느 날 밤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누군가가 일본군 포로를 담은 자루 두 개를 던진다. 그날부터 다산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 병영 마을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동거를 시작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군 포로와 어렵사리 교신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해프닝은 중국인들 특유의 수다러움, 능청과 버물어져 짙은 순박미를 느끼게 하고, 그런 에피소드들만으로도 흥미롭다.

일본의 반식민지 '2류 신민'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일본군 포로들은 꽤 골치 아픈 존재다. 결국 중국인과 포로 사이에는 모종의 계약이 성립되고, 그 계약이 원만한 성사되어 마지막에는 한바탕 축제까지 벌어지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중국 촌락은 불바다가 되고, 다산과 그의 처만 다행히 참화를 면하지만, 다산의 그 복수심만큼은 지독해서 포로가 되어버린 일본군들을 도륙하고, 그 대가로 일본 포로의 칼날 앞에서 목을 떨군다.

목에서 떨어진 다산의 얼굴은 다소 생뚱맞게 눈을 껌뻑거리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그 껌뻑거림은 마치 '역사의 황당함이여!'라고 외치는 듯하다.

플롯만 추리고 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들은 비극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톤은 중국인들의 유머, 능청, 순박의 정경들로 인해 겹 톤으로 중화되고, 전체적으로는 유쾌와 비탄, 가벼움과 무거움이 주기적으로 교차하는 묘한 느낌을 준다. 결국 이 영화는 역사와 영화의 스테레오타입적인 만남을 거부하는 색다른 영화가 되어버린 셈인데, 난 이런 게 맞다고 생각한다. 'right'이라기보다는 'fit' 정도의 감각.

'귀신이 온다'는 흥미로운 중국 영화다. 그 흥미로움은 단지 한일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기억의 정치'가 좀 더 폭넓은 시야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결국 '기억'이 문제가 되는 셈인데, 생각해보니 20세기는 이미 단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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