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김민수 지음 / 생각의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이상 문학만큼 다방면의 학자들이 들러붙어서 분석과 해석의 칼날을 곧추세운 한국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는 그만큼 이상 문학의 세계가 열린 체계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민수 교수는 디자인 전공자로서 이상의 초기 시를 화두로 삼아 한 권의 책을 써냈다. 기실 전체 여섯 장 중에서 두 장만이 이상 문학에 할당된 것이지만, 나머지 장들도 그 두 장에서 펼치는 논의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역할을 하느니 만큼 연결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민수 교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상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김민수 교수의 이상 연구는 하등 문제가 될 거리가 없다. 오히려 제한된 경계를 넘어 학제적 연구의 시각에서 이상을 연구했다는 것은 이상 문학을 문학의 관점에서만 연구하던 이들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고, 새로운 방면에서 연구의 틀을 마련할 수 있는 상상력의 자극제 구실을 하였기 때문이다.

김민수 교수의 논의 내용 중에는 다소 과하다 싶은 부분도 없지는 않다. 디지털 가상 공간과 멀티미디어라는 90년대적 분위기를 투영해 이상 문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고, 치밀한 논증을 넘어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상 신화를 또 다른 견지에서 구축한다는 우려를 주기도 한다. 이러한 무리수는 방외인적인 시각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의 일종으로 보고 넘겨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디자인 전공 학자라고 섣불리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그의 인문학적, 예술론적, 과학적 지식은 엄격한 학제적 틀 속에 갇혀버린 대학의 지식 구조 속에서는 신선한 기운임에 틀림없다. 그가 미대 내에서 배척받은 것은 정실과 학연에 얽매이지 않는 정직성과 그가 보여준 새로운 학풍에 대한 기존 학자들의 모종의 기득권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인문학의 위기, 문자 매체의 위기를 화두로 삼고 있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반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를 암시해 주는 책이다. 급격한 위기감과 상실감을 깔린 '위기'에 대한 불안 심리는 넓은 맥락에서 보면 결코 어떤 것이 급격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완전히 새것이 대체하는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김민수 교수는 주장한다. 단지 익숙한 것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것을 바라볼 틀을 갖지 못한 시각의 불안이 위기의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무학점 강의를 몇 년 간 계속하면서도 역사속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신념처럼 되뇌고 있을 그의 건승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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