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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김영하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그가 등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어느 계간지에 실린 단편 하나를 읽었고, 장편으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저런 곳에서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수군수군한다는 것, 그리고 tv에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극화한 프로그램을 한 편 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라디오 프로를 진행할 정도로 말재주가 꽤 있는 사내라는 것, 이런 것 등등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거나 체험한 모든 것이다. 여기에다 단편 <호출> 이후로 <포스트잇>이라는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기해 두어야 하겠다.
연배로 따질 때 그는 80년대 세대에 가깝다. 그런데 글을 읽어보면 이 사내는 90년대 중반 이후까지를 자신 속으로 포섭하는 감각을 지닌 특이한 사람이다. 감각이란 지식처럼 배워서 체득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지 않으면 몸밖으로 튕겨 끝내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까지 내쳐 버리는 인간의 이상한 능력이다. 김영하는 자신의 감각과 맞지 않는 세대를 지나 갈수록 자신과 화합되는 그런 시대를 사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건 분명히 부러운 일이다. 나는 그보다 분명 후세대이지만 김영하에 비해 세상과 부딪치는 면이 적은 것은 분명하다.
물론 작가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세상을 깊은 안목으로 보든가 아니면 오지랖 넓은 체험을 가졌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같은 것을 보되 남들과 다른 독특한 관점으로 보고 그 기발한 착상을 글로 풀어낸다든가. 그렇게 볼 때 김영하는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듯하다. 그는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하찮은 물건들에서 미묘한 상상력을 끌어내어 독자들을 도발하고 선동한다(야쿠르트나 말표구두약) 난 고뇌에 찬 지성의 거대 담론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새롭고 깊은 의미를 끌어내는 사유가 마음에 든다. 더더군다나 그가 작가라면 말이다.(거대 담론은 철학자나 사상가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김영하는 재주꾼임에 분명하다.
<포스트잇>은 지하철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읽은 책이다. 제목처럼 내용도 경쾌하고 날렵하다. 그리고 지하철 정거장 숫자에 맞춰 읽기에 제격이다.(3정거장 당 한 편!) 이 책을 통해 나는 그가 작가로서 가진 문학에 대한 애정, 그의 사생활, 일상에 대한 감각,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그의 심층들에 대해서 조금 엿본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