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전집 1 - 시
정지용 지음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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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향수>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지용의 시전집이 오랜만에 새로운 장정으로 나왔다. 하드 커버에다가 지용의 옛시집에서 떠온 듯 사슴 그림이 들어간 깔끔한 장정은 지용의 시세계를 잘 보여준다. 그 누구도 따르기 힘든 한국어의 말 맛을 살리되, 엄격한 절제의 미를 갖춘 지용 시는 근대 한국시인 그 누구도 모방하기 힘든 유니크한 맛을 가지고 있다.

일제 말기 '신체제 건설',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내세운 일제 치하에서 시인으로서 생존마저 엄혹하게 짓눌리던 시절 지용은 전국 각지를 떠돌며 반도의 산을 주유하며 시인으로서 간신히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시들은 지용의 초기작들과는 달리 장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의 선명하고 절제된 회화풍의 시나 천주교 신자로서 추구한 신앙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 시들에는 일제 치하의 불온한 공기가 느껴지고, 그 속에서 간신히 버텨 내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결국 일제 말기 몇 편의 시들 속에서 시국과의 불안한 타협과 저항을 암시하는 시들을 썼지만, 그것은 아마도 시인으로서의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용의 대표시 <향수>가 20년대 초의 작품임을 감안할 때, 지용의 시적 감수성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발전했다고 생각된다. 이상화를 비롯한 몇몇 낭만주의 시인들, 그리고 김소월만으로 기억되는 그 당시 지용의 시가 가진 선구적인 감수성은 근대 문학사에서 선명한 자취라고 생각된다. 불행히도 6.25를 경과하면서 지용의 시들은 사라졌지만, 그 이전까지의 시들만으로도 지용은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을 명편을 선사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용의 시를 찾는 것은 거기서 한국어에 대한 선명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인으로서 엄혹한 현실과의 긴장감 속에서 시를 지어내던 그 정신의 흔적을 따라가고픈 갈증 때문이기도 하리라고 생각된다. 지용 시는 소담하고 정갈하며 단아한 감수성의 보고처럼 느껴진다. 과장하고 자학하고 낭비벽에 절은 정신에 지용 시는 치료제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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