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클의 사회 - 문화교양 7
기 드보르 지음, 이경숙 옮김 / 현실문화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라고 규정하게 된 것은 기 드보르의 이 책이 알려지게 된 이후이다. 해마다 여름방학 시즌이면 개봉되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러 가며 다음 해에 이어질 속편을 공상하며 기대하는 태도가 하나의 일반적 문화로 보편화된 사회, 그 사회가 '스펙터클의 사회'일 수도 있다.

현대사회는 대중문화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포획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고 할 때 '이미지'는 드보르의 '스펙터클'과 동궤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미지가 아니라 스펙터클이라는 용어를 써서 저자가 가시화하고자 한 것은 좀더 특징적이며 역사적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스펙터클은 '삶에 대한 시각적 부정'이자 '지배 경제의 이미지'이다. 진정한 삶의 체험 대신 시각적 이미지로서 체험을 대신하는 현대적 삶은 그에게 있어 진정성이 상실된 삶이다. 현대인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속에 등장하는 기사를 통해서만 자신을 구성하는 현실을 매개된 방식으로 접할 뿐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은 벤야민이 신문을 예로 들어 경험의 쇠퇴와 체험의 증가로 설명한 것과 비슷하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이 가져온 이미지들에 삶이 속박됨으로써, 현대인의 삶에서 시간이나 역사와 같은 역동적 요소는 거세되고 삶은 정태적이며 속박적으로 변한다. 스펙터클이 쏟아 놓는 이미지들은 현대인을 가두는 거대한 감옥이며, 스펙터클은 그 화려한 이미지를 통해 현존 체제를 정당화하는 독백만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자신의 삶이 계급적 분리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이처럼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사회는 실제나 삶이 아니라 환상이나 외양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저자는 스펙터클을 종교가 결정적으로 쇠퇴한 이후 현대인을 보편적으로 사로잡은 종교적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 관계의 분리와 소외가 교묘하게 접착된 환상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소비를 통해 이 환상을 꿈꾼다.

드보르의 이 책은 1960년대에 나온 책이다. 68혁명 이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물질적 번영이 영속화될 듯한 답답함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드보르는 무정부주의의 일종인 상황주의자로서 혁명적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의 혁명은 체 게바라식의 혁명은 아니었다. 일상적 삶속에서의 혁명이 그의 목표였다. 삶의 진정성을 박탈하는 스펙터클의 지배를 분쇄하고 역사와 시간의 숨결이 도도히 맥동치는 삶을 꿈꾸었다. 그는 삶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이었고, 혁명에 대해 너무 간절했다. 그의 혁명 선언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이후 서구 유럽 68세대들의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68세대의 혁명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부르주아적 일상에 갇힌 자신의 삶을 혁명하라는 것 아니던가. 드보르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지만 이 책으로 그는 유명해졌고 그 탓인지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끝맺고 만다. 그의 삶은 그가 믿는 만큼 비타협적이었다. 삶이 갖가지 타협들의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 한 상황주의자의 죽음은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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