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와 문화이론 - 문화교양 2
존 스토리 지음, 박모 옮김 / 현실문화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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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중문화라고 지칭되는 영역은 자본주의 도래와 더불어 광범위하게 확산한 복제 기술의 발명으로 생성된 공간이다. 발터 벤야민은 그의 유명한 논문에서 그와 같은 변화가 불러일으키는 감수성의 혁명적 변화에 대해서 잠시 기술한 바 있는데, 그는 특히 영화를 이와 같은 변화의 시금석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유한 일회적 경험으로서의 예술(고급 문화)의 아우라(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진 텅 빈 공간을 언제 어디서라도 반복될 수 있는 경험(동질적이며 비독창적인)의 질료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변화는 자본주의의 복제 기술에 본질적인 것으로, 아도르노 같은 비관적 대중문화론자는 미국의 대중문화 텍스트와 마주하면서 격렬한 절망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90년대 들어 마르크시즘이 파놓은 땅에 포스트 마르크시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마르크시즘 등 새로운 관점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드러난 가장 뚜렷한 변화 양상 중 하나가 대중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다. 이전까지 훌륭한 문학, 음악, 회화 작품들의 독무대였던 문화는 급속히 해체되고, 오락물이나 단순한 취향에 지나지 않았던 영역들이 문화라는 외피를 획득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는 마르크시즘 이후 사회를 지배하던 강력한 지적, 도덕적 정당성이 무규범적으로 해체되는 국면에서 빚어진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고급 문화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해석과 비평의 절대성을 강조하던 흐름들은 힘을 잃고, 자본주의적 대량 생산물로서의 문화 상품의 미학과 소비적 생산성을 강조하는 대중문화 연구와 비평이 본격화되었다. 이런 상황은 고급 문화의 미학을 옹호하던 계층에게는 재앙일 수밖에 없었다. 그 계층 속에 상당수의 마르크스주의자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은 대중문화가 기존의 문화 관념을 완전히 재편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영화, 팝음악, 텔레비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을 아도르노처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대중을 무력화시키는 즉, 자본의 의도나 목적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공간이라고 파악하는 관점도 일면적이지만, 그 반대로 대중문화를 소비 주체의 의미 생산성이 정도 이상으로 실현되는 능동적인 공간으로만 보는 문화적 포플리즘적 관점도 일면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90년대 초기에 만연했던 아도르노식 관점이 지금은 결정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대중이 모든 옳고/그름, 좋고/나쁨 등을 판단하는 유일한 규준처럼 보는 관점이 차츰 사회 전반에 착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중 미학의 확산은 기존의 고급문화론이 일방적으로 배제했던 공간에 대한 정당한 의미 부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자칫 대중의 쾌락에 대한 해석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실제에 대한 영향에 무관심한 비정치성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문화연구와 비평에 있어서 딱히 특정한 관점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편향으로 나아갈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럴 때 문화연구와 비평은, 특히 대중문화 연구와 비평은 소비자의 쾌락에 대한 일방적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아니라 기존의 고급문화론과 자본주의 체제 둘 모두를 타겟으로 삼는 방법론적 긴장 속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은 지금까지 문화연구라는 공간을 형성해 온 다양한 관점들과 실천들을 개괄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영국적 토양에서 비롯된 실천과 관점들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바, 이는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온상 미국의 영국 침공 사태를 무력하게 관망하거나 호기심과 기대 어린 눈초리로 바라봐야 했던 영국적 사정이 이 책의 저변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과 겹쳐 읽을 수밖에 없도록 우리를유도한다. 그리고 몇 년 전 독서계에 하나의 지적 열풍으로 다가온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포함한 풍속사, 문화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점증하는 관심의 원천이 이 책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관점을 제기하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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