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어 가면서 내내 작가의 기억력에 감탄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세대 경험을 가진 작가는 유년 시절 초등학교 풍경을 마치 그 시절을 선명하게 추체험할 수 있는 그만의 보물 곽을 가진 것처럼 세세하고 정밀하게 그려낸다. 나에겐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그 기억의 세밀함은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내내 감탄하게 만들었고, 작가의 창작 방법이란 게 있다면 그것의 비밀을 한번쯤 캐어묻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의 주인공 한동구는 분명 남자아이이며, 작가의 실제 나이보다 2살 정도 연상이다. 보통 신인 작가는 자기와 동일한 주인공을 내세우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자기와 나이와 성이 다른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다. 비록 나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작품의 진실성에 해가 되지 않지만 성별 차이를 작품의 큰 얼개로 가져올 때 자칫 잘못하면 작품의 진실성에 큰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화자로 내세우는 남자 아이 한동구는 80년 전후를 경과해 낸 초등학교 학생의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것이 이 작가에 대하여 감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이다. 작가의 가계도 상 동구와 유사한 인물이 존재하고 그와 지근거리어서 그와 같이 생활했던 것인지, 아니면 동구 속에 작가의 캐릭터가 녹아 들어갈 정도로 작가의 유년 시절의 캐릭터가 남자 아이스러웠는지, 그것도 아니면 작가가 작품의 후기에서 밝혀 놓은 것처럼 작가의 삶에 충격으로 다가온 소년들에 대한 관찰과 반성과 상상의 산물인지 정확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이 작품의 매력은 그 특유의 유쾌함이다. 작가는 하나의 상황을 묘사할 때 동구의 시선을 취하기는 하지만 이때 묘사의 주체는 정확히 작가 자신이다. 그러므로 동구와 동구가 바라보는 것 사이에서 작가는 그 어수룩함, 그 순진함이 가장 잘 보이도록 동구가 보되 보지 못하는 것들의 구체적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유쾌함은 묻어 난다. 그런 서술에 매료되어 읽으면서 내내 키득키득거렸다.

이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의 제목을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정확한 제목은 <나......의 아름다운......정원 >이다. 이 제목 안의 말줄임표의 기능을 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줄임표는 화자 동구의 머뭇거림의 표시이다. 갖은 고통만을 뒤로 한 채 서울을 떠나기로 한 동구에게 있어 인왕산 자락의 서울살이가 의미 있다면 그것은 동네 어귀의 3층으로 된 부잣집 정원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동구는 가끔씩 그 정원을 방문함으로써 번잡스런 삶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 정원은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딱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정원 한 곁에는 흔히 보는 잡스런 나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정원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이유가 따로 있다. 이 정원은 이제 서울살이를 청산하는 동구에게 있어 세월이 흐르면 항상 유년 시절 인왕산 자락의 서울살이를 상징하는 기호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 정원은 항상 시끄럽고 소란스럽기만 한, 그리고 끝내는 마음 아픈 상실들의 기억들에서 도피하려는 유년의 상처받은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딱히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정원이다. 이 머뭇거림의 태도는 흔히 성장 소설의 표준적인 세계에 대한 작가의 거리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든 또 다른 생각은 이 작품을 영상으로 옮겨도 좋겠다는 것이다. TV 미니시리즈 판으로 만든다면 크게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특히 동구의 캐릭터는 그 순진무구함으로 인해 시청자의 호응을 끌기에 충분하며, 박영은 선생, 주리 삼촌, 할머니 같은 뚜렷한 캐릭터들이 재미있게 부각될 것같기도 하다. 그리고 80년 전후의 급격한 시대 상황을 그리 무겁지 않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새롭게 다가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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