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전집 5 - 소설, 희곡, 수필
김기림 지음 / 심설당 / 1988년 6월
평점 :
절판


적어도 한국 문학에서 모더니즘을 얘기한다면 김기림을 제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리얼리즘의 영토를 벗어나 모더니즘을 논의하던 10여년 전 풍경을 되돌이켜볼 때, 김기림 붐이라고 할 정도로 김기림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임에 틀림없다. 거기서부터 한국문학의 모더니즘 논의는 출발했고 김기림으로부터 분화되어 다양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

그는 이론과 과학의 지반이 척박한 식민지 조선 땅에 단순한 심정과 감성의 시가 아닌 과학과 이론의 지반을 가진 문학을 논의한 선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문학의 근대성을 사유한 최초의 인물이면서도 그의 근대성은 근대 문명에 대한 단순한 향수에 기반한 표피적인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었다. 그 이후 다양한 학계에서 근대성이 운위되면서 논의의 폭과 깊이가 어느 모로 보아 심화되었다고는 하나 적어도 문학에 있어 김기림은 문제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수많은 모더니스트의 감성의 원초적인 형태를 배태하고 있는 원뿌리로서 김기림은 주목을 요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김기림은 더 이상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북한 출신의 수많은 문학인들이 그렇듯 그는 차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남한 출신의 변변치 않은 문학인조차 끊임없이 후광을 씌우며 부각시키는 요즘의 세태와 비교해보면 부당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김소월처럼 북한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과 평가를 얻고 있는 문학인과도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김기림은 6.25당시 반동분자라는 명목으로 납북되었고, 그 이후 북한 문학사 그 어디에도 김기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절친한 문우 이상이 동경 하숙방에서 불시에 싸늘한 시체로 돌변했을 때 이상을 시대를 잘 못 타고난 불운한 천재라고 묘사했듯이 김기림 그 역시 시대와 끝내 화합할 수 없는 시대의 이방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림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창작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왕성한 창작물을 내놓았다.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그는 정말 많은 글을 써냈다. 잡문일 수도, 습작물일 수도 있지만 지금 놀라운 것은 그가 그처럼 왕성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내적 동력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이다. 글이란 글 쓰는 이의 자의식과 연계짓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하찮은 글 속에서도 우리는 작가를 움직이는 미세한 감정과 의지같은 것을 발견해낼 수 있는 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기림이 그에 못지 않은 소설, 희곡, 수필을 써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자못 시사적이다. 물론 소설과 희곡은 습작물의 성향이 짙으므로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그의 수필은 문제적이다. 그는 대도시로 변모해가는 서울의 풍경을 책과 영화를 통해 길러낸 감수성으로 향수한다. 그에게 있어 대도시는 비판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향수의 영역이라는 성격이 짙고, 거기에 비판적 감수성을 드러낸다 할지라도 그것은 향수를 해칠 정도로 확대되지 않는다.

따라서 김기림은 근대화된 도시를 바라보는 고독한 산책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층을 뚫고 깊은 곳에 탐지침을 내리지 못하는 표층의 유랑자에 머문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 자신의 얕음만을 문제삼을 수는 없을 듯하다. 그보다 좀 더 깊은 곳을 본 이가 있다면 이상 정도라고 할 것이다. 시간의 갭을 괄호쳐 놓고 본다면 지금 우리의 감수성과 김기림의 감수성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치며 보게 되는 거리 풍경들에 적당히 유혹당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취하며 바라보는 태도, 즉 유혹과 거리의 태도는 대도시의 보편화된 감수성일 것이다. 김기림의 수필들은 그처럼 유혹과 거리의 긴장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그가 놓인 위치와 우리의 위치가 의외로 멀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 감수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서울 재발견의 경험이자 자신을 바라보는 또다른 경험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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