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지배 동문선 현대신서 67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김용숙 옮김 / 동문선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남성 지배라는 테마는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꾸준히 문제 제기되어 온 사회학적 테마이다. 현실 사회의 질서가 남성 중심적으로 재편되어 있다는 명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굳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이제는 진부한 느낌마저 드는 영역에, 남성 사회학자가 개입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부르디외라는 저명한 사회학자의 이런 개입은 그 자신의 진보성을 충분히 신뢰하는 독자 측의 입장으로 봐도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지배 질서에 대한 인식은 적어도 지배 질서 내에 존재하는 입장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숲 한 가운데에서 숲 전체를 조감할 수 없다는 사실, 어느 특정 시대 안에서는 그 시대의 특성을 제대로 포착하기 힘들다는 사실과도 비슷한 논리다. 그렇게 볼 때 남성 지배라는 테마는 적어도 지배 질서 내의 수혜자(비록 그 정도가 약하겠지만)인 남성이 개입하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한 그 무엇임이 틀림없다.

부르디외는 이 책에서 남성 지배라는 테마를 카빌 사회의 제식(ritual) 전통을 근거로 해서 한 사회의 상징적 질서 내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이 어떻게 상징적 위임을 떠맡으면서 배제되는지를 추적한다. 특히 성별에 따른 노동의 구분과 의미 부여의 전통은 비단 특정 시대의 특정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 보편성을 갖는 상징 질서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성별에 따른 위임과 배제의 원칙이 한 사회의 제식 활동을 통해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는 부르디외의 이런 주장은 최소한 그 어느 곳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제사 의식만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제사 노동에서 명백히 구분되고 있다. 남성은 지방을 쓰고 여성은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남성은 세살 짜리 손자조차 제사 의식에 참여하지만 여성은 한 집안의 대모라 할지라도 제사 의식에서 명백히 배제된다. 이런 현상은 그 속에서 남성 지배라는 상징적 위임과 배제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재생산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에 관해서 페미니즘이 제기해야 할 문제는 제사 노동, 즉 음식 장만이라는 수준에서 제사라는 의식의 상징적 폭력을 인식하며 제사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제사 폐기 주장은 엄청난 반발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데, 이것은 어찌 보면 궁극적인 대립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리라.

이처럼 성별 위계를 강화하는 상징적 위임과 재배치는 제식 문화를 통해 완강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언어를 통해서도 강화되고 있다. 특히 '여성적'이라는 형용사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수단이다. 이 말에는 다양한 상징적 폭력이 개입해 들어간다. 여성은 사회 속의 지위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여성적'이라는 형용사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굳이 자세히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제식 전통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성 지배의 패러다임은 우리 모두가 경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고용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의 수치적 평등을 통해서 이뤄질 수는 없다. 수치적 평등은 하나의 전술적인 주장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상징 질서이며, 그것을 떠받치는 상징 언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