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 한길컬처북스 23
바트 무어-길버트 지음, 이경원 옮김 / 한길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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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탈식민주의 비평과 이론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로부터 정치적 해방을 달성한 국가의 지식인이나 미국의 학계 내 이민 지식인들에 의해 형성되어왔다. 서구에 의해 타자로 규정되어 정체성의 혼란을 막심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나 카리브해 흑인들의 자기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서구의 지배적 담론 규칙을 부정하며 서구의 지배 서사의 권력성을 비판하는 탈식민주의 담론은 어느새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하나의 담론 현상으로 정착되었다. 90년대 초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틀로 제기되어온 탈식민주의 담론은 그 지향이나 의도, 그리고 여타 담론과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측면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계급 편향으로 설정되어 온 기존의 담론 구역내에 다양한 규정 인자들이 순식간에 틀입함으로써 새로운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 식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민족주의 편향으로 해석해온 근현대사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광범위한 학적 관심을 유발했다는 점, 그리고 비단 역사나 문학이라는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 학제적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물론 9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근대성 담론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맥락과 연계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식민주의의 문제의식을 대중들이 선명하게 포착하기에는 우리의 지식 구조는 매우 지체적이어서 탈식민주의의 정점에 놓인 사이드의 저서를 제외하고는 그 이전의 탈식민주의 비평 담론이나 이후의 스피박이나 바바의 저서들은 원서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사정의 전후에는 흑인의 글쓰기에 대한 편견이나 해체주의 이후 서구 담론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나, 탈식민주의를 유행을 타는 인기있는 고급담론쯤으로 치부하고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이해하려는 현 시점의 풍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같다. 물론 하나의 유행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해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면 담론의 국적을 따지면서 배척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개론의 이점이라면 무엇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물망을 풀어줄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며, 갈피를 잡지 못한 등산객에게 숲의 지형도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탈식민주의에 대한 개론서인 이 책은 이런 개론의 가치를 충분히 보증한다는 느낌을 준다. 탈식민주의는 단일한 지향과 방법론을 가진 단일 이론이 아니라 입장에 따라 다양한 방법론과 지향을 가진 복합적 산물임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읽는 이의 관심사에 따라 향후 더 궁구해볼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번역서답지 않게 우리 말의 어법을 비교적 훌륭히 살려낸 번역이야말로 이 책이 무난히 읽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원저자의 균형감 있고, 때로는 신랄한 비평적 언급도 읽는 이의 감식안을 계발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물론 개론에는 개론 나름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개론을 읽고 만족하는 일은 우습다. 차후 다양한 탈식민주의 관련 서적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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