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혐오자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4
에드 맥베인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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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무수히 많다.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헐리우드 영화 초기 필름느와르라는 하나의 독특한 장르로 양식화되었고, 이후 끊임없이 재현의 소재가 되어왔다. 법의 정의로운 집행자를 지향하는 경찰 사회의 명분과는 달리 사람들은 경찰 사회가 그다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실정법들이 권력자들에 의해 쉽게 짓밟히는 경우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욕망은 점증하지만 그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신문 지문을 통해 해외 토픽으로 종종 보도되는 증오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다. 특정한 계층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를 동기로 한 이 증오범죄는 현대 사회 그 자체를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 그 어떤 범죄보다도 사람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리기 쉽다. 87분서라는 가상의 경찰 조직의 형사들이 차례로 죽어나가지만, 경찰은 이 범죄가 형사를 상대로 한 증오 범죄라고 믿을 뿐, 범행의 동기나 범인의 신원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작품 중반 이후 범인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등장함으로써 곧 범죄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되지만, 주인공 캐레라 형사는 갈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사건에 힘겨워한다. 이런 상황은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 함께 더욱 곤혹스런 느낌을 준다. 더위에 어쩔줄 몰라 하듯 캐레라는 사건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결국 범죄의 전모는 밝혀지지만 그 해결의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고 돌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전까지의 팽팽한 긴장, 미궁 속의 헤매는 듯한 느낌이 이 소설의 묘미라면 결말부의 해결 방식은 다소 안이하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이전에 제시되었더라면 느닷없다는 느낌은 덜 했을 것같다. 이런 약점을 제외한다면 이 소설은 경찰이 범죄를 대하는 방식이나 범인 유추 과정에서의 과학적 추리 등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소설이나 필름느와르는 미국의 전형적인 대중 장르이다. 미국 외에는 이런 장르가 전형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장르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 미국적인 특수성이 놓여 있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욕망의 강도는 더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욕망의 충족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처럼 욕망과 그 실현 사이의 갭이 큰 사회에서 욕망은 범죄를 낳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형된다. 그 욕망의 심연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서사가 바로 경찰소설이 근거하고 있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비교할 때 우리 소설에서 경찰이나 범죄를 다루는 경우가 없다. 영화에서는 간간이 이런 작품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냈다는 인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공의 적>이 흉내 차원이라면 <복수는 나의 것>은 이 흉내 차원을 넘어 한국적 현실에 좀 더 다가간 측면이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경찰혐오자>는 형사를 감정과 생활이 있는 한 명의 현대인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투적인 경찰 영화의 전형화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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