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6
박애경 지음 / 책세상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 박애경씨는 국문학자인데, 대중음악에 대한 식견은 전문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연대 출신으로 신촌의 언더그라운 문화를 생활 수준에서 체험했다는 사실은 일 개인의 취미나 관심이 그 사람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한다. 현역 국문학자로서 음악 비평 활동을 전문가 수준으로 하는 박애경씨를 대하고 있으니 과 선배 한 분이 생각난다. 나보다 십여 년 윗 학번인 그 사람은 비평과는 거리가 멀었던 대중음악계에서 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직접 만나서 얘기해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의 행적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치고는 꽤나 튀는 행보였다.
9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한 나에게 음악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순적인 존재였다. 어떤 모임에서도 민중가요는 절대시되었고 대중가요는 쉽게 불려지지 않았다. 뒤풀이 자리에서 대중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대중가요에 대한 취향은 검열의 공포로 일그러지곤 했다. 대학문화가 좀 더 개방적이고 순화되었을 때 록의 열풍이 몰아쳤고 미디어와 언론은 록의 저항성을 화두로 삼아 말의 성찬을 벌였다. 록이 과도하게 소비된다는 인상마저 주었는데, 록의 열기가 빠져나간 자리는 펑크와 힙합이 점령했다.
90년대 대중문화의 첨병처럼 여겨진 대중음악에 대한 열기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편이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면 대형 기획사들이 만들어낸 기획상품같은 음악들이 대중이 요구하는 음악적 활기를 불어넣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제일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고만고만한 10대 그룹 스타 중심의 대중음악은 음악을 향유할 잠재적인 광범위한 소비자들로부터 그 자신을 고립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탓에 지금 대중음악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폭락 시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대중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중음악 장 폭락의 맥락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면 대중음악은 대중문화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여하튼 들을만한 대중음악의 빈곤에 허덕이면서도 사람들은 음악을 버리지 않는데, 그것은 음악이 단자로 고립된 개인들의 소통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롭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불안할 때 음악은 나의 문지방을 넘는 친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요/대중음악, 가수/뮤지션, 상품/예술의 경계선상에 존재하는 음악의 지형을 저자의 전공인 고전문학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말미에 추천 음반과 사이트까지 소개해놓고 있다. 음악은 그냥 듣는 것이지 비평이나 지식은 불필요하다는 편견이 완강한 게 사실이지만, 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컨텍스트에 대한 식견에 기초할 때 한층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여러 모로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