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 혹은 아메리카 - 한국형 블록버스터
김소영 기획 / 현실문화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라는 책이 나왔다. 둘이 잘 살라고 남녀를 축복해주는 말이 주례사일텐데, 주례사는 점쟁이의 말처럼 듣기는 좋지만 따지고 들면 들으나 마나한 얘기일 뿐이다. 그걸 굳이 듣는 이유는 들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 걸 두고 말의 마력이라고 하는 걸까. 여하튼 이 책은 식장의 주례사처럼 되어버린 문학비평가들의 비평 관행을 개개 비평가들을 각개 격파하고 있는데, 예전 문학권력 논쟁처럼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곧 읽어볼 참이다.

문학마저 사정이 이런데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총화라고 하는 영화비평도 이런 비판에서 무관하다고 발뺌하기는 힘들 것같다. 다만 영화비평은 문학비평에 비해 동업자 의식이 강하고 비평이 취약하기 때문에 이런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뿐이다. 내가 정기 구독하는 모 시사주간지의 영화평을 보면 그 영화가 어떻다는 건지 비평가의 논점이 정확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막 개봉한 영화의 앞길을 막아서는 훼방꾼 역할을 하기 싫은 탓인지는 몰라도 영화얘기를 하다가 비평가 자신의 사적인 얘기가 끼여들면서 글의 논점이 흐려지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런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내가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한국 영화를 좀 더 깊이 읽어내고자 하는 축들에게 한국영화론으로 접근할 만한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저널리즘에 몸담고 있는 비평가가 아니라면 대부분 학교에 적을 둔 비평가들일텐데, 활동 인구에 비해 성과물로 내놓는 건 매우 빈약하다. 몇몇 보이는 책들도 대체로 여성학자들의 책이다.(남성학자(좀 이상한데...)들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활발히 연구 업적을 내놓고 있는 사람들 중 단연 그 앞자리는 김소영 교수가 차지하고 있다. 저서의 수도 많을뿐더러 한국영화 역사의 계보를 세우는 작업에 있어 가장 열성적인 것같다. 다만 그녀의 문장이 매끄러운 언어가 아니라 번역식의 순화되지 못한 언어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여하튼 한국영화론은 없다라고 생각하던 중 김소영 교수가 기획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아틀란티스 혹은 아메리카>를 접하게 되었다. 하나의 에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이력과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은 놀랍다. 필자 중에는 영화기획사 출신도 있고 외국인도 끼여 있는데, 영화기획사에 이런 글을 써낼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다.

이 책은 <용가리>, <쉬리>를 원점으로 한국영화계에 불어닥친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략을 점검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이제 흔한 일상어가 되다시피 했다. 블록버스터의 외양을 닮되 거기에 한국적인 뭔가를 덧붙여 세계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이 전략을 이 책의 필자들은 이 전략이 한국적인 것으로 끌어오는 민족주의적 상상력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접근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이 공히 탈민식민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이 필자들이 느슨한 하나의 에콜임을 반증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접근의 필연성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략이 취하는 전형적인 탈식민주의적 기획에서 비롯된다. 기본적으로 접근 방법이 유사하기 때문에 간혹 겹치는 얘기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개별 필자마다 자기만의 성찰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루한 편은 아니다.

영화를 그냥 보는 게 좋은 사람도 있고, 단순한 보기가 아닌 깊이 꼼꼼히 시간을 들여 읽어내기가 좋은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취향과 관심과 목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시하지 않는 관용이 필요할뿐이다. 나는 읽어내는 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영화를 읽어내는 것과 문학을 읽어내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만큼 보기와 읽(어내)기의 무게가 다른 경우도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는 보기보다 읽어내기가 훨씬 고통스런 작업이다. 특히 요즘의 한국영화들은 더 그런데, 그건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깔고 있는 한국적인 것이 보수적인 상상력에서 기인하는 것들이고, 이것에 비판의 매스를 한층 치밀하게 가져다 댈수록 비평과 관객의 괴리는 한층 깊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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