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 지 삼 년에  
뒷산의 약초뿌리 모두 캐어 드렸지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아침이면 찾아와 울고 가던 까치야      
나 떠나도 찾아와서 우리 부모 위로하렴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앞서가는 누렁아 왜 따라나서는 거냐      
돌아가 우리 부모 보살펴 드리렴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좋은 약 구하여서 내 다시 올 때까지
집 앞의 느티나무 그 빛을 변치 마라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작사,곡 김민기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2526693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서울은 욕망의 표상도 입신출세를 향한 돌파구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태어났고 사는 곳, 고향이라기보다 동네로 한정되는 나를 둘러싼 환경의 큰 이름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누군가에게, 줄줄이 딸린 동생들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농사에 매달리는 부모를 위해 좋건 싫건 입성해 살아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도 일곱 살까지 살림을 돌보며 나를 키워준 이른바 '식모' 언니가 있었다.

 2002년의 가을 혹은 겨울이었을 것이다. 마치 구전가요처럼 무의식 속에 침잠해 있던 노래가 낯선 얼굴의 이방인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브라운관 속, 방글라데시에서 온 삐뿌씨는 이 노래를 참 구성지게 잘도 불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없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다. 그리고 그 '서울'에서는 살 수가 없어 아우성을 친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조용한 선율에 실린 가사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수사일 뿐, 이따금 누군가의 삶에서는 차마 꿈도 꿀 수 없는 게 되어버린다. 

 오늘은 내가 일하는 단체의 송년회 날이었다. 11월 1일부터 이 곳에서, 나는 벌써 꽤 많은 이주노동자를 만났다.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 계기는 93년 가을에 본 한 편의 연극이었지만, 이후에 '느낌표'를 통해 좀은 선정적으로 그리고 대상화와 타자화의 방식으로 강렬하게 각인된 탓에 나는 지금의 일을 오래 마음에 두고 마침내 선택했다. 미디어나 지면을 통해 전해진 그들의 현실은 온통 한국인으로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어느새 그들은 내게 약하고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로 내면화되어 버렸다. 봅시도 그들을 만나 친절을 베풀고 돕고 싶었지만, 내 사는 주변 어디에서도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부천의 도당동 그 중에서도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 살아가는 강남시장 인근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는, 이제 수시로 그들을 만나고 때로 너무 많은 그들에 둘러싸인다. 물론 일방적인 대상화와 타자화를 통해 내면화된 이미지는, 온전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새로운 올가미를 둘러씌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하며, 한편 그들 모두가 '서울로 가는 길'을 부르던 삐뿌씨로 이미지화된 선량하고 약하고 눈물나는 존재는 아니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결국 사람의 일은 대체로 상호작용이며, 그야말로 사람 나름이라는 안이하고 뻔한 결론이 이미 내려져있는 것도 같다.

 송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부천역에 내려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 외국인을 마주쳤다. 시내버스 터미널을 배회하던 그는 어설픈 한국말로 행선지를 대며 버스번호를 물었다.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진 부천역의 복잡한 버스 시스템은 외국인은 물론 내게도 꽤 헷갈리고 번거로운 것이다. 차마 혼자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전철 역사를 넘고 지하도를 건너가야 나오는 정류장을 일러주느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그는, 미처 예기치 못한 친절(?)을 만난 탓인지 눈을 빛내면서 좋은 사람이라며 커피, 시간, 돈 따위의 단어를 주워삼켰다.

 버스 타고 가려면 시간이 늦었다고 일축했음에도 그는 불쾌할 정도로 집요하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유앤미 어쩌고 폰 넘버 어쩌고 하는 덕에 순간 무척 곤혹스러워져서 냉랭하게 다시 거절을 했지만, 처음 부천에서 일하냐는 내 물음에 회사체인지 어쩌고 했던 말이 떠올라 명함을 주고서 커피 말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쥐어줬다. 불과 십여 분, 처음보다 한결 냉정해진 나의 태도에도 아랑곳 없이 그는 명함을 꼭 쥐고 웃었다. 일러준 대로 버스 정류장을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서려니 어쩐지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천에 처음 와서 길거리에서 이주노동자들 마주치면 나는 항상 표정관리에 신경을 썼다. 워낙 드러운 인상이라 쉽지는 않지만 혹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식적인 웃음이나마 보내려고 노력하며,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차가운 시선을 만회해보려는 딴에는 유치한 안간힘이었다. 주제 넘고 웃기지만, 대체로 소외감과 고통에 시달릴 그들에게 눈빛으로나마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은 주접질이기도 했다. 언젠가 페이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버마분에게 우스개처럼 이야기했다가, 부천역 앞에서 그러면 외국인들이 만만하게 보고 오해한다며 그러지 말라는 말에 무안해졌을 따름이지만 말이다.

 일상적으로 만나기 힘든 친절 앞에서 커피 시간 돈 따위를 입에 올리며 연락처를 물어온 파키스탄 노동자에게 갑자기 냉랭해진 것은 어쩌면 문득 그 생각이 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었다는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이방인인 그에게, 나는 처음 만난 친절한 한국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역시 사무실에서 만나 사연을 알고 친해진 낯익은 이주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은 '서울로 떠나온' 사람일텐데, 나는 왜 그렇게 쓸데없이 냉정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딴 마음을 품었을 리는 없건만, 괜히 미안하고 머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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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4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2-26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방어 본능이기도 하겠고, 또 어쩌면 제 쪽에서 일방적으로 재단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말씀대로 평범한 인간으로, 제가 보고 싶은 그림 속에 그들의 이미지를 구겨넣지 않아야 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 같구요.
양희은 아줌마는 미디어를 통해서 동세대의 페르소나를 알뜰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도 같아요. 좀 부담스럽죠? ㅎㅎ

바람구두님, 오... 설마 그런가요? 그런 얘기, 인상 좋은 사람에게서도 듣고 싶어요.^^;;;

waits 2006-12-2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렇게 되나요~ㅎㅎ 인상도 잊어버렸나봐요, 뵌 지가 하도 오래라. ^^;;

waits 2006-12-2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미안씩이나요. 저도 학교 거의 못 간답니다. 언젠가는 만나려니...^^
 

 


 

Yesterday
I had a wonderful time
It passed away
And left a blue heart of mine
It's pretty rare
That it's comin' all over me
Like walkin' on air
Walkin' on air

From a river deep
On a mountain high
Like a sunray
Through a cloudy sky
I slip away
And It's comin' all over me
Like walkin' on air
Walkin' on air
 
Keep walkin' on air
Save your despair
Walkin' around
Ain't touching the ground
Don't care to much
Cause livin' is there
For walkin' on air

Hey blue moon
Why don't you let me be
I don't know why
You keep on haunting me
I wouldn't care
Should I never feel blue again
Better walkin' on air, walkin' on air
 
Keep walkin' on air
Save your despair
Walkin' around
Ain't touching the ground
Don't care to much
Cause livin' is there
For walkin' on air
 
 
 
opus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1762337

 

 뭘 하다 시작했더라. 암튼 포스터 정리를 했다. 대여섯 개의 포스터 보관통에 담긴 걸 다 꺼내고, 몇 년이나 둘둘 말려 있어 잘 펴지지도 않는 것들을 팔이 아프도록 반대로 말아 다시 펴 보고, 곱게 반으로 접혀 있던 것들을 펼쳐 숨 쉬게 해주고. 기억에 엄마집에도 꽤 놔두고 온 것 같은데, 이걸 다 언제까지 가지고 다닐 거냐 싶어 정리를 시작했다. 그래봐야 소장목록에서 제외된 건, '로드쇼'와 '키노'산 브로마이드들 중 영 관심없는 것들 십여 장 뿐이었지만.

 미색 종이에 인쇄된 90년대 초반 학전소극장의 공연 포스터들, '키노'에서 다달이 선물로 줬던 얇은 대형 영화 포스터들, 동숭씨네마텍이 생기면서 백두대간에서 나눠줬던 '희생'이니 '천국보다 낯선'이니 하는 영화 포스터들 그리고 소중히 모셔왔던 아저씨의 공연 포스터들.

 오랜만에 아저씨 공연 포스터들을 찬찬히 봤다. 92년부터 98년까지는 스스로가 기특해질 만큼 빠짐없이 완전 민트한 상태로 보존이 되어있다. 어렸을 땐 대학로 돌아다니다 포스터 붙이는 아저씨들 만나면 몇 장 달래서 얻어오거나 공연 끝나고 나눠주는 걸 받아와 고이 모셔두곤 했었다. 그땐 포스터 한 장 벽에 붙어있는 것도 '큰' 홍보라 여기고 아무리 갖고 싶어도 절때 떼어오지 않았다. 99년 이후, '나와 같다면'으로 뜬 이후의 공연 포스터들은 대체로 벽에 여러 장 붙어 있을 때 한두 장 뜯어온 것들인데, 비록 멀어진 다음이지만 소장의 함의에 비해 상태 너무 불량하다. 그리고 사진 속 주인공도 예전보다 너무 화려하고 다른 사람처럼 낯설다.

 포스터들을 잔뜩 늘어놓고 혼자서 추억을 곱씹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조악스럽기 그지없는 94년의 쌀개방반대 학내 콘서트 포스터. 새내기때 처음 갔던 모 대학 집회, 화장실에 가느라 들른 학생관 건물에 붙어 있던 걸 선배가 떼어줬던 기억이 났다. 아저씨와 쌀개방반대, 좀 이상했지만... 역시 아저씨는 내 갈 길을 예비하시는군 은근 반가웠던 기억, 그리고 당시 아무도 모르는 가수였던 그가 선배와 동기들 사이에서 갑자기 왕훌륭한 가수로 각인됐던 기억.




 96년 2월 마당세실 공연의 포스터 중 하나에는 아저씨 싸인이 있었다. 아무리 무명이지만, 그렇게 공연 많이 하는 가순데 가끔은 '팬'한테 싸인도 해주고 싶지 않을까 싶어... 이따금 받은 싸인들이 꽤 있다. 수첩에 받은 건 잘 간직하고 있지만, 포스터는 잊고 있었는데 짙은 연두색 바탕 포스터에 초록색 펜으로 희미하게 남은 아저씨의 글씨를 보니 갑자기 울컥 반가웠다. 그땐 내가 데모를 꽤 열심히 하던 때, 가끔 마주치면 어줍잖게 팔뚝질 시늉을 하며 "데모 잘 하냐~" 놀리곤 했었는데 '...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너대로 나대로 함께. 장훈아저씨 96.2.7'라고 쓰여있는 아저씨 글씨를 보니 격세지감이 모락모락. 뒤늦게 발견한 흔적이 너무 희미하여, 애용하는 투명 시트지를 붙여놨다. 사라지지 말아라... 

 생각해보니 전국구 스타가 되어버린 아저씨와의 교감(?)의 기억도 아련하다. 그러다 생각난 게 지난 겨울 어느 날 공부방에서의 황홀한 아침. 무슨 바람인지 싸이에 둥지를 튼 아저씨의 미니홈피는 대호황, 오로지 '장훈오빠'를 향해 질주하는 수많은 마음들에 (생각보다? 목 맨 사람이 많다..;;) 새삼스레 착오적 거리감을 느끼던 나날이었다. 차마 뭐라고 남기기는 멋적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늘 궁금은 하여 자주 접속을 했는데, 접속할 때마다 나름 선곡해서 바꿔주는 음악을 듣고 있자니 또 예전 생각이 뭉게뭉게. 변변한 히트곡이 없던 예전 공연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들 'lullabye', 'walking on air', 'goodbye to romance', 'che sera', 'what's up' 그리고 aerosmith와 john lennon의 노래들...

 떼 속에 끼는 걸 죽어라 싫어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떼 속이라 티도 안 날 것이다 싶어 방명록에 뭐라뭐라 아침이 되면 부치지 못할 편지스런 주절거림을 남겨버렸다. 아마 예전 아저씨가 알려주고 불러줬던 노래들 생각이 사무치게 강렬했던 새벽의 마음을 그대로. 그러고선 잊어버리고 출근해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던 중, 아저씨 홈피에서 울려나온 'walking on air'의 전주. 뭐 착각은 하라고 있는 거니까. 갑자기 주변 공기가 달라지는 알싸한 황홀함이 어찌나 격하게 올라오던지, 눈물 날 뻔했다. 나름 노래의 힘이기도 하지만, 추억과 착각의 마술이... 다시 들어도 살짝 감동!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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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2-0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이랑 저랑 둘 다 착각 아닌 걸로 합의 볼까요?
아저씬 '너무 소리칠 때' 주금 아프고 멋있는데~
'mother' 후렴구와 더불어 같이 배를 움켜쥐며 들었던 노래. ^^

rainy 2006-12-0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공연에서 '이제야' 한번 듣고 싶어요. 티도 안 날 테지만 떼 속에 끼어서라도 한번 요청해 볼까요? 정말. 주금 아프고 멋진데^^

waits 2006-12-0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제야' ^^ 요즘 mp3로 자주 듣는데...
'충돌2'때 한두 번 말고는 못 들은 것 같아요. 그러구서 언젠가 공연 때 무슨 노래 불러줄까 그러셔서 그야말로 떼 속에 끼어서 '이제야' 그랬었는데, 누구 죽일 일 있냐는 허탈한 대답으로 넘어갔던 기억이.ㅎㅎ
그 노래, 참 높긴 높아요~

에로이카 2006-12-0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또 웬 오퍼스 하면서 나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아저씨 얘기였군요.. ㅋㅋ.. 중학교 때 오퍼스 라이브 앨범 참 좋아했답니다... 그 아저씨 좋은 노래 많이들 갖다 불렀네요.. (왠지 괜히 비아냥대는 댓글 같은데... 그럴 의도는 절대 아님.. 그냥 그렇다구요..^^)

waits 2006-12-05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제 발 저리신 거죠? --++(째려보고 싶은데, 그림이 안 나오는;;)
아무리 ( )에 부연을 달아도 비아냥의 아우라가 행간을 떠도는 걸요~
그러나 아저씨의 탁월한 선곡 능력에 감탄하신 줄로 알고 ^^
그러고보니 'live is life'도 'crazy world'도 가끔 부르셨었네요.
아저씨는 어찌나 노래도 잘 고르고 게다가 잘 부르시는지. ㅎㅎ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십이월의 사랑 노래

서늘한 눈꽃송이        
내 이마에 내려앉네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먼 길을     
헤매어야 하는지  
서늘한 손길처럼  
내 이마에 눈꽃송이  

모든 것이 사라져도        
흘러가고 흩어져도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기억들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순간들  
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 속에 남은 노래

 

작시,곡 한강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1634730

 

 가끔씩, 주제도 모르고 예쁘고 따스하게 노래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일 없는 양 무심하게 노래를 읊조리다 보면, 평온한 슬픔을 담은 고요한 마음의 소유자가 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는 일의 쓸쓸함 따위는 일찌감치 알아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알고 있는 것과 덮쳐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일깨워주듯 난데없이 눈물이 복받치기라도 하면... 이따금 대신 울어주는 사람 같은 마음이 되어 멋적게 노래를 마감한다. 깨끗하게 울고 싶은 날, 거리에서 흘리는 그 많은 사람들의 눈물에 미안하지 않게 착하게 울고 싶은 날. 하지만 가슴 속에 노래를 남기고 이렇게 고요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12월이다, 힘든 사람들 그래도 조금은 따스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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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12-01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것 없이 12월이네요. 노래만큼이나 따뜻하고 예쁜 보드라운 나어릴때님의 마음결... ㅎㅎㅎ... 따뜻한 12월 되삼..

waits 2006-12-0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것 없이? 설마요! 세상 너무 어수선하고, 저는 딴 세계에 사는 것 같아요.
노래가 위로가 되는 것도 사치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저도 따스한 12월 인사를~^^

2006-12-03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2-0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별 것도 아닌데 너무 호들갑을 떤 듯한 느낌도...^^;;
 

 



붓을 들면 보이는 얼굴
손끝에서 맴도는 너의 눈동자   
  
노랗게 색칠을 할까
아니면 파랗게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너의 얼굴   
    

그리고 또 지우고       
또 그리고  
      
그리고 또 지우고            
또 그리고
  
  
여러 장을 넘기고 넘겨도   
  
너의 모습
보이질 않네
   
    

그리고 또 지우고       
또 그리고  
      
그리고 또 지우고            
또 그리고
  
  
여러 장을 넘기고 넘겨도   
  
너의 모습
보이질 않네
  
  

 

작사,곡 고찬용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1526405

 

 매년 늦가을이면 열리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기다림이었던 시절의 향수와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마운 사람, 고찬용이 돌아왔다. 환상적이고도 독창적인 기타 리프의 '거리풍경'이 보여준 퉁탕거리는 회색빛 우울이 어찌나 신묘하던지, 취한 듯 수줍은 그가 튕겨내는 리듬에 즐길 줄 모르는 나 역시 한참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빤짝임으로 가득했던 '낯선사람들'의 첫 음반, 하얀 바탕에 파랑 날개를 편 한 마리 새를 담은 쟈켓만큼이나 그들의 음악은 자유롭고 선명했다. "낯선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해의 고민"이며 "비닐우산", "동그라미, 세모, 네모" 그리고 발성의 기교와 연출이 어우러진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왜 늘...?"까지. 실력과 깊이를 갖춘 아마츄어리즘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과 순수함의 극치를 보여준 그 음악들, 정말정말 빤짝거렸다. 

 허은영과 이소라의 조화와 긴장, 우울하고 수줍은 '미소년' 고찬용이 풍기는 비밀스런 신비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리의 빈 곳을 메우고 보탰던 신진과 백명석의 묵묵함. 이따금 학전이나 마당세실에서 볼 수 있었던 '낯선사람들'의 무대는 참으로 짧았다. 생각해 보면 좀은 좁고 가까운 판이었던 그곳의 소문, 이소라가 나간 뒤 자리를 채운 차은주는 어쩐지 역부족이었고 "두려운 행운"과 "행복하지 않나요"를 담은 두번째 음반이 소리 없이 묻혀버린 때는 '하나음악'도 '유재하음악경연대회'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던 그때였다.

 가끔은 '그때, 거기, 그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공기와 분위기,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그럴 수 없고 아무리 아쉬워도 이미 지나버렸을 뿐인 뭐 그런 것. '낯선사람들'의 사라짐(?)을 생각하면 참 아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음울하고 스산한 변두리 외곬의 정서, 생동하지만 퇴락한 듯도 한 읆조림. 지난 후의 생각으로 '아, 그들 인천이었지.' 혼자 중얼거리게 만드는.

 그리고 바람으로만 남은 소문으로 떠돌던 음반을 가지고, 꼭 십년 만에 고찬용이 돌아왔다. 변하지 않았다는 중얼거림 같은 'after ten years absence'라는 담담한 제목을 달고. 아직 비닐을 벗기지 않은 씨디를 보며, 혼자 괜히 흡족해하는 중. 적당히 작지만 울림을 담은 소리로, '고찬용이 돌아왔다'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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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11-28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오랜만에 듣네요.. 이 노래... 고찬용... 내가 알고 있는 통기타 가수 중에서 기타를 제일 잘 쳤던... 저도 반갑네요.

waits 2006-11-2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찬용 스타일 진짜 멋지지 않나요? (실은 기타고 노래고 안중에 없는..;;) ㅎㅎ
반가워해주시니 좋은 걸요. ^^

2006-11-28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llfind 2006-11-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아마 이 앨범 사게될 것 같아요. 글 참 따뜻하고 좋네요. ^^

waits 2006-11-3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ellfind님, 아직도 씨디 비닐을 못 벗겼답니다.
아무렇게나(?) 듣고 싶지는 않은데 짬이 안 나네요.
님도 고찬용님의 음악을 기다리셨나요? 반갑습니다~^^

..님, ^^
 

 


 

새끼손가락 걸며 영원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그대를 사랑하며 잊어야하는
내 맘은 너무 아파요
    

그대 떠나는 뒷모습에       
내 눈물 떨쿠어주리  
가는 걸음에    
내 눈물 떨쿠어주리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세월이 흘러가서  
백발이 되어버리고   
  
얼굴엔 주름 지어
내 사랑 식어버려도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작사,곡 김현식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0421408

 

 사실 김현식 아저씨 노래는 mp3에 항상 몇 곡씩 채워놓고 늘 듣는다. 솔직히 난 '사랑했어요'나 '비처럼 음악처럼'에는 별로 feel이 없었고, 이따금 심야방송에서 들려주던 '눈 내리던 겨울 밤'이나 '당신의 모습', '떠나가 버렸네'를 참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미성으로 부른 '그대와 나', '나는 바람' 같은 초기의 노래들. 그의 노래를 동시대의 청자로 듣기 시작한 게 90년 '넋두리' 부터니까, 그러고보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교회를 다니다 그만 둔 지 얼마 안 됐던 때, 5집의 '할렐루야'를 듣고 그 분방한 샤우팅에 은혜 받아 다시 나가봐? 갈등하기도 했었고 주로는 '재회'를 열심히 따라불렀었다. '거울이 되어'를 만든 이원재,가 그 이원재 아저씨인가 많이 궁금했고, 정작 '넋두리'는 누구나 이야기하듯 어떤 예감만 같아서 잘 못 들었던 것 같다.

 11월 초, 돌아가시기 전의 마지막 방송이었다던가 하며 안정훈이 진행하던 프로그램 이야기가 회자됐었다. 12월 음악잡지들도 일제히 김현식 아저씨의 삶과 음악, 죽음을 특집으로 다뤘다. 그 속에서, 그가 4집의 실패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었다는 걸 보고 반성하듯 4집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생전에 낸 음반 모두 좋지만, 4집은 듣다보면 정말 '대중적인' 노래들로 채워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후의 아우라이건 무엇이건, 그만의 색깔도 당연히 각인되어있다. '사랑할 수 없어'와 '언제나 그대 내곁에', '우리 처음 만난 날', '한밤 중에' 같은 노래들은, 이문세 변진섭 류의 발라드가 유행하던 그 시절에 어찌 주목받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의 애틋한 연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무슨 노래를 올릴까 선곡의 고민(?)이 깊었다. '재회'와 '사랑할 수 없어',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하다가 낮에 들었던 '추억만들기'의 담담함이 좋아서 올렸다. '추억만들기'는 그리고, 아저씨가 초기의 공연에서 참 많이 불렀던 노래다.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던 시절, 코드 진행이 비슷하다며 'goodbye to romance'와 이어 부르던 이 노래는 굉장한 대곡의 느낌이었다. 'goodbye to romance' 간주의 일렉 디스토션이 예~전에 유행하던 씨엠송의 '입맛 찾았네'와 비슷하다는 실없는 농담에 이어진 노래는 그렇지만, 너무 슬프고 애틋했다. 두 노래의 후렴 가사를 자기 맘대로 바꿔가며 절규(!)하던 모습, 후주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기타 리프에 열중하던 모습은 참 눈물 겹도록 아름다웠다.

 샘터 파랑새 극장 맞은 편에 작은 까페들이 아직 건재하던 시절, '슈만과 클라라'니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같은 간판들 사이에 '추억만들기'가 있었던 것 같다. 소문인지 뭔지 모르지만 이 노래랑 관련이 있다고 듣고 괜히 들어가 커피를 마시곤 했던 기억도. 월이 흘러가서 백발이 되어버리고 얼굴엔 주름 지어 내 사랑 식어버려도... 한참 먼 일 같지만, 세월 흐르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름대로 좀 살다 보니,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가 아주 슬프지만도 않다. 망각도 없이 누군가 부재한다는 슬픔에 들끓듯 시달리는 건 아마 추억이 아닐런지도. 거기 그렇게 누워 있다 생각하고 돌아서려니 사실 발걸음이 안 떨어지기도 했지만, 언젠가 나도 갈 길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또 편안해진다. 담담하게 추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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