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점 반 - 20주년 기념 개정판 우리시 그림책 3
이영경 그림, 윤석중 글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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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넉 점 반>은 ’나리 나리 개나리’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 고향 땅’ 등으로 유명한 윤석중 선생님의 시에 ‘아씨방 일곱 동무’를 쓰고 그린 이영경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시그림책입니다.
이번에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넉 점 반’이 2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새옷을 입고 출간되었습니다.
책 사이즈가 살짝 커지고 표지 그림이 무심하게 여린호박을 따는 아기 모습에서 개미를 구경하는 아기가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었네요.

아기가 엄마 심부름으로 구복 상회 영감님께 시간을 물어보러 갑니다.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아기는 혹시 시간을 잊어버릴까 “넉 점 반 넉 점 반” 소리내 말해 봅니다.
물 먹는 닭도 한참 서서 구경하고 개미 거둥도 한참 앉아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다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노래 부르다 해가 꼴딱 져 돌아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그림책이 처음 출간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좋은 그림책의 생명력은 언제나 길고 강인합니다.
20년 전 이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면 깔끔하게 새단장한 개정판은 세월이 지난 탓인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향의 골목길을 사무치게 그립게 합니다.

방안에서도 손님이 오는 지 볼 수 있는 유리를 끼운 창호지 바른 문과 벽에 걸린 사진들, 그리고 꽃이 한 가득 그려진 둥근 양은 밥상에 꽃무늬 벽지까지 어느새 어린 시절 할머니방으로 데려다줍니다.
마을에 하나뿐인 가게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만물상입니다.
주전부리는 물론 파란색 비닐 우산, 원기소 광고, 미원 등 가게 안에 물건들 모두 눈에 익습니다.

아기를 따라 마을을 걸어봅니다.
물 먹는 닭도 보고 아기와 함께 앉아 개미도 구경합니다.
잠자리를 따라가다보니 논길을 지나 수수도 도라지꽃도 분꽃도 흐드러지게 핀 곳까지 따라왔습니다.
이리 해찰하고 온 마을을 돌아다녔으니 집에 오니 해가 꼴딱 져 버렸습니다.

아기는 늦게 왔다고 혼내지 못할만큼 귀여운 모습입니다.
넉 점 반에 나가 다 저녁에 돌아와도 아이는 심부름을 끝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합니다.
윤석중 선생님의 시만 읽어도 좋지만 이영경 선생님의 그림과 만나면서 아기가 보는 풍경을 독자도 함께 볼 수 있게 됩니다.
20년 뒤에도 여전히 사랑받은 것 같은 그림책은 잊고 있던 그리운 시절로 데려다주네요.
시계따위 없어도 별 상관없던 시절, 언니가 있고 오빠가 있고 나의 젊은 엄마가 존재했던 그곳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본 도서는 창비그림책에서 진행한 20주년 개정판 서평단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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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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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경력이 적힌 띠지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연물’은 군마 현경 수사1과 가쓰라 경부의 활약이 돋보이는 5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가쓰라 경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소설은 그의 개인사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달콤한 빵과 카페오레로 끼니를 때우며 서류를 작성하고, 수사 상황을 보고하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일을 처리하면서 짧은 틈새 시간에 또 곰곰이 생각했다.’ (p185)

<낭떠러지 밑> 친구 다섯 명이 함께 온 스키장에서 코스를 벗어나 스노보드를 타러 간 친구 네 명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수색을 시작한 경찰은 낭떠러지 밑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지만 한 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고 다른 한 명은 병원으로 옮겨진다.
조사 결과 사망자는 흉기에 의해 살해 당했지만 어디에서도 흉기는 찾을 수 없고 나머지 두 명의 친구도 행방이 묘연하다.

<졸음> 경찰이 감시하던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가 몬 차량이 새벽 시간에 교통 사고를 일으킨다.
뒤를 쫓던 경찰은 신호에 걸려 사고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다수에 목격자를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목격자들은 입을 맞춘듯 하나같이 용의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다.

<목숨 빚> 유명한 산책로에서 짐승에 의해 훼손된 신체의 일부가 발견되고 경찰의 수색을 통해 대부분의 시신을 찾게 된다.
치과 흔적으로 신원은 밝혀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피해자가 6년 전 등산 중 목숨을 구해준 남자에게 꽤 많은 돈을 차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경찰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해 조사를 시작하지만 가쓰라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연물> 늦은 밤 주택가에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을 시작한다. 발생했던 불은 항상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 작은 불인데다 경찰이 수사를 개시하자 화재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인가> 한적한 교외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인질 사건이 발생하고 범죄 전력이 있는 아버지가 아들과 레스토랑의 직원을 인질로 잡고 있다.
거기다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는 듯 한데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다.

다섯 편의 소설 모두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 소설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가쓰야의 활약이 탐정이 범인을 잡는 과정과 비슷함을 느끼게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건 관련자의 증언을 듣고 동료 경찰들과 공조하지만 마지막 사건 해결은 마치 미스터리 소설의 범인 찾기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가쓰라 스스로 직감을 ‘차곡차곡 쌓인 관찰력이 경고를 보내는 신호’(p220)라고 생각하는 만큼 그는 동료 경찰들의 조사 내용을 세세히 듣고 자신의 직감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생각을 정리한 뒤 사건을 해결해 낸다.
특별히 부하 직원들에게 자상하지도 않고 상사들과도 썩 사이가 좋은 것 같지 않은 독물장군 스타일이지만 수사 능력은 탁월하고 사건을 해결하고도 그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분명 사망자가 나오고 범인을 쫓는 경찰소설이지만 가쓰라의 수사 과정은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걷는 산책만큼이나 평온해 보인다.
특별한 것 없는 작은 화재사고는 물론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사연을 찾아내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쓰지않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어떤 명탐정보다도 멋지다.
소설은 역시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라는 문구가 빛나는 이야기들이다.
후속작이 나올 예정인 것 같은데 벌써부터 가쓰라의 활약을 기대하게 된다.


<본 도서는 리드비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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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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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메두사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 돌로 변하게 하는 괴력을 가진 괴물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그지만 제우스와 인간인 다나에의 사이 태어난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리고 아테네 여신의 방패에 걸리는 신세가 된다.

 

제시 버튼의 메두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 메두사의 입장에서 페르세우스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아테네 여신의 노여움으로 뱀의 머리카락을 갖게 되는 형벌을 받은 메두사는 두 언니와 외딴 섬에서 철저히 고립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섬에 페르세우스가 도착한다.

4년 만에 인간을 만난 메두사는 모습을 숨긴 채 마음을 터놓게 되고 자신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낸다.

페르세우스 역시 어머니가 겪고 있는 부당한 이야기를 털어 놓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메두사를 찾아 모험 중이라고 말한다.

 

신화 속 악한인 메두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소설은 강자에게 유린된 어린 여성이 내뱉는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름다움이 약점이 되는 이야기는 신화 속 여성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잘못을 저지를 강자보다는 피해를 입은 약자에게 손가락질 하는 세상이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가슴이 아프다.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읽는 내내 메두사와 페르세우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었다.

힘 있는 그림과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메두사의 고민이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은 생각했던 결말과 전혀 달랐지만 그래서 좋았고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예쁜 여자라는 말보다 잘생긴 남자라는 말을 듣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 여자한테 아름답다는 말이 따라붙으면, 그게 곧 그 애의 본질이 되거든. 그 애가 가진 다른 모든 가능성을 덮어버려. 남자는 그 사실이 모든 가능성을 덮어버리진 않잖아."
- P85

"그럼 낚시를 그만뒀어야지."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둬야 해? 포세이돈이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나를 쫓아다니지 말았어야지!"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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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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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 아홉 번째 이야기다.
스웨덴 최남단의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여성이 실종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자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 책임자 마르틴 베크와 동료인 콜베리가 사건 해결을 위해 마을에 도착한다.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베크는 구년 전 미국에서 여행 온 로재나라는 여성을 살해한 범인인 폴케 벵트손이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후 실종자의 이웃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론은 벵트손을 취재하기 시작하고 윗선에서는 체포 압박을 가하지만 베크는 신중하게 행동한다.

벵트손의 조사가 시작되고 사건의 증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때 빈집털이범과 경찰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경찰과 범인이 한 명씩 사망하고 범인 중 한 명은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콜베리는 도망친 범인을 잡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복귀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 그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 그려진다.
실종된 여성의 전남편과 이웃의 성범죄자가 의심스럽지만 사체는 물론 증거 또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로재나 살인 사건의 범인이 출소 후 정착한 마을에서는 그를 특별히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와 달걀을 그에게서 구입하고 규칙적인 조용히 생활하고 있는 그였지만 사건이 일어나자 언론은 득달같이 달려 들어 그를 취재하고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기도 전부터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 취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성 살인 사건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경찰 살해 사건을 조사하다 엉뚱한 곳에서 여성 살인사건의 증거를 찾게 된다.

강력사건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않는 시골 마을의 경찰 뇌이드의 평화로운 생활과 대조되는 대도시 경찰의 이야기는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복지 국가로 불리는 스웨덴 젊은이들의 어두운 일상과 형기를 마친 범죄자를 대하는 사법당국의 모습은 현재에도 일어나는 일이라 소설이 50년 전 쓰여졌다는 게 무색해진다.

거기다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능한 경찰 수뇌부의 좌충우돌은 웃고 넘길 수만은 없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범인이 밝혀지고도 시원하지 못한 결론과 베크에게 가장 힘이 됐던 동료 콜베리의 결정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리즈만큼 아쉽다.


<도서는 마르틴 베크 정주행 이벤트에 당첨되어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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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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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식탁에도 세계의 다양한 음식이 오르고 거기에 사용하는 향신료도 원하면 언제든지 손쉽게 구해 사용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오백 여년전에는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아무도 가 본적 없는 동양을 향해 목숨을 건 대항해의 시대가 있었다.

신항로 개척을 위해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바닷길을 개척한 대항해시대의 발생 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향신료 전쟁>에서는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는 향신료를 찾아 떠나는 대모험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1497년 포루투칼의 바스쿠 다가마가 후추를 찾아 떠나 최초로 인도 항로를 개척한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과 그 뒤를 이은 네델란드, 영국과 프랑스로 이어진 긴 항해의 역사를 ‘30여 년 동안 전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비즈니스와 여행을 병행’ 한 필자의 글로 쉽고 현장감있게 만날 수 있다.

국왕의 후원을 받으며 시작된 다른 나라의 항해와 달리 네델란드에서는 국가가 아닌 상인과 귀족들이 주주가 되어 설립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됐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는 하멜이 바로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특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발판이 된 칼레 해전의 주역인 트레이크의 활약은 상대국 입장에서는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이었지만 본국인 영국에서는 기사 작위를 수여 받고 국민들에게는 영웅으로 칭송받았다고 하니 흥미를 넘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북방 항로 개척을 위해 추위를 이기며 항해를 떠난 던 이들의 절망과 죽음은 물론 향신료 생산지를 확대하는 데 일조한 프랑스의 ‘푸아브르’의 활약 역시 잊으면 안 될것 같다.

단순한 역사의 서술이 아닌 그 시대에 활약했던 인물들의 초상화와 지도, 그리고 자세한 뱃길을 표시한 방대한 자료 사진이 첨부되어 대항해의 여정을 따라가는 데 많른 도움을 준다.
그리고 부록인 ‘알면 알수록 더 향긋해지는 향신료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향신료 이야기라 더 흥미롭다.
부록을 읽고 이제는 더 이상 시나몬과 계피를 헷갈려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책을 읽는 내내 생김새도 언어도 전혀 다른 이방인의 출현으로 원주민들이 느꼈을 공포가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역이라는 이름을 내서웠지만 분명이 침략이었던 그들의 행위가 개척이나 모험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채 전해졌고 나 역시 별의심없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 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향신료를 두고 서구 열강이 세력을 확대해 갈때 원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이 따랐다는 사실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본 도서는 하니포터9기 활동 중 한겨레출판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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