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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의 질문 ㅣ 푸른도서관 10
손연자 지음 / 푸른책들 / 2005년 8월
평점 :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의 굴욕적인 삶에서 벗어나 해방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증오하지도 않는 나라 일본이지만 독도영유권 분쟁과 역사 왜곡 이야기가 나오고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지는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또 다른 나라에는 져도 용서가 되지만 일본과 하는 축구만큼은 누가 뭐라고 해도 꼭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앉아 듣던 이야기 속의 일본사람들은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고 무서운 놈들이었다.
‘그놈들이 나중에는 숟가락 젓가락은 물론이고 마당에 묶어 둔 개까지 공출해 가던 놈들’이라는 말로 끝을 맺곤 하시던 이야기가 내 핏줄 어딘가를 타고 흐르다 결정적 순간이면 나타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고약한 나라가 돼버린 듯하다.
오래된 이야기, 이제는 잊고 싶은 굴욕적인 역사,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수 없는 과거라는 말로 덮어둘 수만은 없는 사실들이 더 가슴 아프게 한다.
작가는 9편의 단편을 통해 우리에게 옛이야기가 되어 버린 슬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꽃잎으로 쓴 편지]는 일제가 내선일체라는 미명 아래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
그 시대를 살던 승우는 소학교교실에서 행해졌던 잔인한 놀이 때문에 여린 손에 피멍이 들다.
하지만 아무리 모진 겨울일지라도 뿌리만 얼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잎이 돋고 꽃이 피운다는 진리처럼 우리의 소중한 글을 잊지 않기 위해 엄마와 꽃글을 쓴다.
[방구 아저씨]는 가족을 잃고 혼자 사는 착하디착한 목수 방구 아저씨는 고생만하다 죽은 아내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인 괴목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다가 일본 순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조선인의 죽음 앞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며 힘없는 백성들의 서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꽃을 먹는 아이들]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들이 작당하여 습격 한다’ 거나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타고 다닌다’는 괴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일본인들이 구성한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작의 아들]는 친일파 귀족의 아들인 가즈오는 자신의 앞에서는 친절하던 일본인친구들이 뒤에서는 조센징이라고 업신여긴다는 사실과 자신을 때리는 일본 아주머니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잠들어라 새야]는 열두살 은옥이가 여자 근로 정신대에 끌려가 공장을 거쳐 일본군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농락당하는 슬픈 이야기가 그려진다.
평소 군대 위안부 할머니들이 내는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던 내가 한 연예인의 상업적 누드 사건은 그저 흥미진진한 연예뉴스로만 읽었던 기억에 새삼스럽게 부러워졌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서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동주시인이 투옥되어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일본인의 생체실험대상이 되어 죽어가는 이야기가 시와 함께 담담하게 그려진다.
[긴 하루]는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해방이 되고 악명 높은 데라우치 선생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아버지를 죄인으로 만들 수 없어 순이는 선생을 숨겨주게 된다. 선생은 순이에게 용서를 빌지만 그것은 진정한 반성이 아닌 단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흙으로 빚은 고향]은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사치코가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한국인 김행자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여겨야 만이 남들도 귀한 대접을 해준다는 당연하지만 실천하기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쉽고도 어려운 해답을 알려준다.
[마사코의 질문]은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된 히로시마의 평화 기념공원을 간 일본인 소녀가 스스로 피해자라고 강조하는 할머니와의 대화 속에 일본인 스스로의 죄를 묻고 있다.
일제의 만행들이 삼일절과 광복절 특별 방송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옛이야기가 돼버린 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럽지도 않은 슬픈 시대의 이야기는 덮어두자고 한다.
국민이 원하는 일제 청산은 친일파를 다 까발리고 그 자손들을 벌주자는 게 아닐 것이다.
조상들이 행했던 일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했던 행동일 수도 있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발 벗고 일제에 협조했을 수도 있다.
어찌됐던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관심도 이목도 끌지 못하지만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이면 벌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 가득한 10여년의 세월을 바라보며 그분들이 바라는 게 금전적 보상이 아닌 진정한 뉘우침과 책임 있는 사람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이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역사는 흘러가버린 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제대로 잘 닦아 제대로 잘 보아야 한다.
“그래도.........좋은 세상은.........꼭 온다. 봐라, 밖은 지금.........캄캄한 밤이다. 허지만...........한잠 자고 나면 .........아침이 와 있지 않던?”하고 말하던 방구 아저씨처럼 환한 아침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눈에 아른거렸다.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보물창고)>을 읽기 전 미국이 터트린 원자폭탄은 죄지은 일본에게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 피해의 잔혹함을 알기에 미국의 행동을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가해자에서 가여운 피해자의 모습만을 하고 있는 일본인은 용서할 수가 없다.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착취하고 괴롭히던 자신들의 잘못은 잊고 해방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며 겪었던 2달간의 고통을 더 크게 생각하는 야마모토 선생이 대부분의 일본인의 모습일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일제 강점기의 서러운 세월을 보내셨던 분들이 점점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당신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그 세월을 이야기해 주실 분들이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우리는 정리할 것 깨끗하게 정리해 우리가 어려워 못 푸는 문제를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남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