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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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제로 언어치료사(언어재활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난적이 없다.
주위에 말이 늦되거나 더듬는 증상이 있는 아이들이 언어치료를 받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아이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나에게 다소 생경한 직업인 언어치료사로 18년간 일해온 저자의 글을 보며 단순한 직업인으로서 기록일 뿐 아니라 인간을 보는 따뜻한 눈을 가진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자가 2007년 가을부터 2022년 겨울까지 만난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표현하는데 불편함을 가진 아이들이다.
연령도 만2세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거의 성인의 가까운 나이의 대상자도 있고 수업 기간도 짧게는 몇개월로 끝나거나 몇 년씩 계속 되는 경우도 있다.
수업이 종료되는 이유도 이사를 가는 경우를 비롯해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끝나는 경우도 있고 대상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가 만나 기록한 25명은 다양한 장애의 갖은 아이들로 다른 환경과 전혀 다른 가족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있다.
어떤 아이는 어머니 혼자 자녀를 키우고 있고 또 어떤 아이는 할머니가 주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돌보기도 한다.
또 다문화가정의 아이도 있고 엄마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다운증후군,자폐성 장애,중증 뇌병변, 염색체 질환 등 선천적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아이들의 첫인상부터 수업과정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수업이 종료될때의 소회를 적고 있다.
마지막은 언어치료를 받은 대상자에게 전하는 편지를 붙여 직업인으로서의 저자의 사명감은 물론 어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마음을 적고 있어 크게 마음을 울린다.
저자가 사회복지시설에 속한 언어치료사라 대상자들이 실제로 복지혜택의 일환으로 언어치료를 받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종결되는 경우가 있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과연 연령제한이 필요할까라는 생각든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나는 늦돼서 말이 늦은 아이들은 봤어도 장애때문에 언어장애가 동반되는 아이를 주위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지인의 아이뿐 아니라 길을 걷다가 혹은 물건을 사러 들어간 가게 안에서도 그들을 본 적이 없다.
분명 존재하지만 꽁꽁 숨겨둔 것처럼 만날 수 없는 아이들과 숨길 수 밖에 없는 부모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누군가 큰소리를 내거나 어눌한 말로 의사표현의 한다면 그들을 돌아보지않을 자신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나는 분명 그 소란을 불편해하거나 동정심이나 연민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볼 것이다.
그런 눈빛이 그들을 일정 공간에 가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불편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당장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왜 그들이 떳떳하게 사회에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됐다.

‘연민을 거두어야 할 순간’의 신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읽으며 우리나라의 선별복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고르느라 드는 비용과 지원을 받는 사람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만들어지고 그 수고를 다해 차등지원하는 금액의 차이는 몇 만원에 그친다는 사실을 읽으며 과연 무엇이 옳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신이에게 보낸 편지로 내 마음을 전해 본다.

📚네가 엄마,아빠라는 말을 못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너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고 그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일이다.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바뀌는 것이 없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기.지나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고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 그러니 자부심을 갖기. 바로 너와 네 어머니에게 배운 것들이다.(p176~177)

🎁한겨레출판 하니포터6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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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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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랫동안 생계형 번역가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첫에세이다.”
(책 날개에서)

저자는 나도 읽은 적이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로마신화’ 번역가로 유명한 고 이윤기 선생의 따님으로 자신의 삶을 돌보는 물건들의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3부로 이루어진 에세이는 1부에서 ‘내가 돌보는 물건,나를 돌보는 물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책과 책장에 관한 일화에 등장하는 1톤이 넘는 책장의 크기를 상상해 보며 부담스럽기도 하겠다 싶다가도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수 없다.
오랜시간을 함께 한 할아버지가 사주신 바이올린과 수고로움 뒤에 얻은 웨딩드레스 이야기는 물건에 깃든 추억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침대 밑:불안을 파는 산업을 읽으며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 판정을 받고 비싼 인모 가발을 산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2부의 ‘충동이 없으면 지불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물건을 버릴 때의 원칙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 일단 물건으로 공간이 너무 꽉 차지 않도록 자주 버린다. 다만 버릴 때 앞으로 내가 이 물건을 쓸 것인지는 묻지 않고, 그동안 내가 썼는지를 묻는다.옷이라면 앞으로 (그러니까 살 빼고 난 다음,아니 살이 빠진 다음에)입을 것인지가 아니라 그동안 입었는지를묻는다.주방 기구나 그릇이라면 그동안 밥을 짓고 먹는 데,차를 끓이고 마시는 데 사용했는가. 앞으로 나를 기쁘게 할 물건인가 묻기보다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는가 묻는 것이다. (p106)

물건이라는 건 꼭 필요한 사람,필요한 자리에 있을때 그 존재를 증명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얻으며 작가의 물건 고르는 안목과 더불어 버리는 지혜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리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우리를 구원한 존재’라는 말에 크게 동의하며 높이 쌓인 책탑에 관대한 눈길을 줘 본다.

마지막 3부 ‘살기 위해 사고,사기 위해 산다.’의 산수유나무 관련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된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자리에 다섯 그루의 작은 산수유를 심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살 때까지 끙끙 앓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무리 사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와 함께 도저히 물건을 사러 나갈 시간이 자유롭지 않다보니 그 증상은 차츰 가라앉았고 지금은 나이를 먹다보니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게 돼버렸다.
단 한 가지 도저히 포기 못하는 물건이 있으니 바로 책이다.
저자가 아버지 책과 책장에서 느끼는 마음을 자식에게 부담으로 남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직은 덜어내기가 쉽지않다.
어쩌면 책에 대한 욕심까지 사라진다면 그때는 인생의 끝자락일 것이라는 생각도 드니 영원히 버리지못할 욕심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작은 금액으로 큰 행복을 얻으니 가족들이 참아주는 수 밖에.


🎁한겨레출판의 하니포터6기로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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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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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된 시대에 가장 쓰기 어려운 분야의 추리소설이 ‘클로즈드서클’을 이용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클로즈드서클’이란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장소를 뜻하는 용어로 “방주”야 말로 완벽한 ‘클로즈드서클’을 실현한 소설이다.

대학 동아리 친구 여섯명과 나(슈이치)의 사촌형 쇼타로는 친구 유야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 건축물을 찾아 나선다.
지하 건축물을 찾았을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하룻밤 그 곳에서 묵을 수 밖에 없게 된다.
3층으로 된 방주 형태의 건물은 여러 개의 방과 편의시설을 갖춘 오랜 된 건물로 그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다.

전파가 잡히지 않는 지하라 전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친구들은 길을 잃은 가족을 방주로 데려오게 되고 모두 10명이 그 곳에 머물게 된다.
지하 3층은 이미 수몰된 상태라 각자 머물고 싶은 1층의 방에 자리를 깔지만 새벽녘에 큰 진동의 지진으로 놀라 잠을 깨게 된다.
지진으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뿐인 입구를 막게 되고 물은 점점 차오르고 그들은 완벽한 밀실이 된 방주에 갇히게 된다.

전화도 사용할 수 없고 외부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출입구와 비상구를 비추는 오래된 cctv뿐이다.
그들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떨어뜨리는 닻감개를 돌리는 방법뿐이지만 닻감개를 돌리는 한 명은 그 곳에 남아야 한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한 명은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은 범인을 찾아 범인에게 닻감개를 올리게 할 계획을 세운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물과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방주 안은 공포와 불신으로 가득하다.
‘클로즈드서클물’이 성공하려면 등장인물중 돌출행동을 하는 이가 등장하고 살인이 일어나는 중에도 그들은 절대 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공간을 고수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
‘방주’ 역시 그 공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일견 이해할 수 있는 행동들이라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된다.

출판사의 “스포 절대 금지!” 문구가 어떤 의미인지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해하게 된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여러 번 썼다 지우게 된다.
‘클로즈드서클’물에 등장하는 많은 클리셰를 만날 수 있지만 뻔하지 않은 전개와 뒷통수를 때리는 마지막 결말은 미친 반전을 선사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작가가 1993년 생, 젊은 작가라는 사실이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더더욱 기대된다.


🎁블루홀식스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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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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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이 번역 소개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짜 신작을 만나는 게 쉽지않은데 ‘희망의 끈’은 재출간되거나 예전에 출간된 작품을 번역한 것이 아닌 진짜 최신작이다.
그것도 10권으로 완결된 줄 알았던 가가형사 시리즈의 가가 형사가 다시 등장하는 이야기다.
가가 형사의 사촌 동생인 마쓰미야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가가 형사는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적재적소에 등장해 사건해결에 도움을 준다.

카페 여주인 하나즈카 야요이가 살해되고 경찰은 주변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혼 한 지 10년이 지난 전 남편 와타누키 테츠히코와 부인과는 사별 후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단골 손님 시오미 유키노부가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된다.

전 남편은 이미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자와 살고 있고 이혼 후 10년 만에 야요이가 먼저 연락을 해 와 살해되기 얼마 전에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단골인 시오미는 지진으로 남매를 잃고 어렵게 얻은 딸과 살고 있지만 아내가 병으로 죽고 나서는 딸과 데면데면 지내고 있다.

소설은 카페 여주인 살인 사건과 마쓰미야 형사의 개인사가 함께 등장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손에 키워진 미쓰미야에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과 자신에게 이복 누나가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은 엄마와 이복 누나가 전해주는 유언장까지 마쓰미야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작가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살인 사건의 범인 잡기보다 그 이면의 사연에 집중된 이야기를 많이 만나봤을 것이다.
‘희망의 끈’ 역시 범인의 존재보다 그 뒤에 사연이 더 가슴을 울린다.
불임과 난임 그리고 임신중단까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당사자인 여성들의 고통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나저나 죽는 순간이 다가오자 유언장으로 모든 죄를 스스로 사하려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또한 작가가 꿈꾸는 로망이 아닌가 싶어 뒷맛이 쓰다.
새로운 마쓰미야 시리즈로 계속될지 아님 한 권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읽은 작가 특유의 가족 이야기 더하기 살인 사건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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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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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온 세상을 여행하던 남자 실비오는 유산을 탕진하고 이제는 늙고 가난한 홀아비로 고향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사촌인 엘렌 부부와 그의 가족들은 큰딸인 콜레트의 결혼을 알리기 위해 실비오를 찾아오고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는 부모를 본보기로 삼으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결혼 후 자식까지 낳고 잘 사는가 싶던 콜레트의 남편이 익숙한 다리에서 떨어져 익사하게 되고 감춰 왔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페이지터너라는 시리즈에 걸맞게 재미있다.

불행한 노년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인가 싶더니 살인 사건과 출생의 비밀까지 등장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감정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추악한 욕망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감정일 수도 있으니 타인의 사랑에 대해 어떤 충고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사랑의 옳고 그름은 따질 수 없지만 다른 이의 가슴에 고통을 안긴다면 그것을 응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고 있다.

실비오만 현자처럼 사랑을 잊은 듯 살아왔지만 그 역시 책임이 따르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젊은 날의 뜨거운 피를 주체할 수 없었을 뿐 책임지지 않는 사랑은 더 큰 불행을 낳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릴 적 감히 사랑이라 생각하며 행했던 일들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그 사랑이 옳았고 그런 사랑의 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니 다른 이를 울리는 사랑이 아니라면 마음껏 사랑하라고 하고 싶다.

뜨거운 피는 언젠가 식는 것 그때 재앙으로 되돌아오지 않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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