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채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도쿄에 살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던 서른다섯의 게이코는 함께 살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보낸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비정규직 우편배달부로 일하게 된다.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자 ‘데라토미노 가즈히코’와 어른의 사랑을 한다.다소 밋밋한 표지 속 소설은 표지만큼이나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남녀의 사랑을 홋카이도 시골 마을의 계절 변화 속에 녹여낸다.호젓한 강이 흐르는 마을을 돌며 마을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배달하고 일요일이면 가즈히코와 함께하는 게이코의 일상이 느리게 흘러간다.마을의 전기를 공급하는 작은 수력 발전소를 지키는 남자는 생활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음을 통해 마음을 전하며 세상을 등진 듯 살고 있다.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는 남자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지만 채근해 묻지 않고 그저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기다린다.노인들이 많이 사는 작은 마을의 우편 배달부가 겪을 만한 에피소드와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와의 노을에 관한 이야기는 꽤 오래 뇌리에 남는다.불같은 사랑이 끝나고 상처 입는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다소 싱거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세심한 문장은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한 자리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전기를 만드는 수력 발전기처럼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남자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 오지만 여자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다.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놀라운 힘과 남자를 안정적으로 머물게 했지만 결코 자유롭게 해 주지 못했던 ‘가라앉는 프랜시스‘를 보며 붙잡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여름이면 생각나는 <#여름은오래그곳에남아> 만큼이나 낙엽이 지고 눈이 쌓이는 계절과 태풍이 불어오는 계절에는 이 소설이 떠오를 것 같다.잔잔한 수채화 같은 마을 풍경과 그 안에서 자라나는 사랑이 서로 닮은 듯 다른 듯 큰 변화가 없기에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자연주의 문학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에밀 졸라의 단편은 고전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재미있다.<독한 사랑>에 수록된 10편의 콩트와 누벨은 150여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현실의 삶의 고단함과 부조리를 느끼게 한다.자신을 팔다시피 한 가난한 남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 어떤 것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당혹함과 낭패를 그린 <낭타>는 사랑의 정념을 숨김없이 그리고 있다.우리 안이 있던 맹수가 탈출 후 인간들의 잔인함을 목도한 이야기 <우리를 탈출한 맹수들>은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한 인간의 잔혹함을 돌아보게 한다.표제작 <독한 사랑>은 에밀 졸라가 쓴 최초의 장편 소설 <테레즈 라캥>의 모티브가 된 소설로 남편을 죽인 정부와 간통녀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결혼했다는 상상으로 시작한 이야기다.<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죄의식 때문에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진부하기까지 한 소설은 여전히 여러 형태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것을 보며 이것이 고전이 힘이 아닌가 싶다.어리숙한 젊은 시골 귀족을 절망에 빠트리는 <네죵 부인>과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지만 나태의 늪에 빠져 끝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화가의 이야기 <수르디 부인>은 여러모로 뛰어나지만, 항상 남편의 뒤에 서 있어야 하는 부인들의 사연으로 그 시대 여성의 지위를 짐작게 한다.수록작은 그 시대를 살았던 여러 계층 인간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더 놀라운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이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광고의 피해자>를 읽으며 집안을 둘러보게 되고 나란히 실린 <후작 부인의 어깨>와 <가난한 소녀들은 무슨 꿈을 꿀까>는 지금 어딘가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슬프기까지 하다.졸라가 소설을 쓴 시대와는 다르게 소설을 읽는 지금은 표면적으로는 계급이 사라진 시대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하고 세상은 부당하고 부조리하게 굴러가고 있다.<결혼의 방식: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과 <죽음의 방식: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민>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계층 간 서로 달랐던 결혼과 죽음의 방식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지위고하와 빈부귀천에 따라 전혀 다른 결혼과 죽음을 맞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인류가 과연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시대를 뛰어넘어 사회의 문지를 고민해 보게 하는 까닭에 우리는 에밀 졸라를 읽어야 하고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망했다. 실수로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미워하는 누군가를 토마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마윤이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드는 장면을 애증의 관계인 유미도에게 들키고 만다.하등에 쓸모없는 능력을 유미도는 부러워하며 자신의 과외 선생님을 토마토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초등학교 5학년 때 남동생과 자신을 차별하는 할머니를 토마토로 만들면서 그 능력을 알게 된 도마윤은 혹시나 다른 사람을 토마토로 만들까 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았다.그런데 자신이 숨기고 있던 마음을 박은해가 알아채 버린 것이다.조예은 작가 특유의 기발한 설정과 청소년기에 느끼는 친구를 향한 시기와 질투 뒤에 숨겨진 동경과 부러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펼쳐간다. 어린 시절을 이미 지나온 어른들이 잊고 있던 아이들의 고민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하다.나와 다른 누군가를 한없이 부러워하다 종내에는 미워하기도 하는 마음이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애증 관계가 이해된다.그래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 관계를 풀었으니 영영 멀어지는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소설의 첫 만남-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인 시리즈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간간이 삽입된 그림이 있어 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로 충분할 것 같다.
조예은 작가의 신작 소설집 <치즈 이야기>는 입맛을 쓰게 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듯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2022년에서 2024년에 발표된 단편을 모은 단편집 속에는 7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나는 이미 3편의 소설을 다른 지면을 통해 읽었으니 나름 부지런히 조예은 작가를 찾아 읽었다고 할만하다.“자고로 음식은 나눌수록 더 맛있어지는 법이죠. 이 황홀한 맛을 저 혼자만 알기 아까워 당신을 불렀답니다.”(33쪽)표제작 <치즈 이야기>는 아주 밝은 톤으로 그 참혹함과 끔찍함을 나긋나긋하게 독자에게 속삭인다.어린 시절 함께 살던 엄마에게 방치돼 죽을 고민를 넘기고 어른이 된 아이는 십오 년 후 전신마비인 엄마를 자신이 어린 시절 갇혀 지낸 방에 방치한다.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보증금 돌려받기>는 실제로 어디선가 진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공포스럽다.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안하무인 집주인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세입자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이다.7편의 소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현실이라고 하기엔 환상적인 이야기와 먼 미래와 우주에서 펼쳐지는 sf소설까지 읽으며 역시 ‘조예은’답다고 되뇌게 된다.<치즈 이야기>로 작가를 각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안락의 섬>으로 작가 특유의 공포는 놓치지 않으면서 삶의 따듯한 희망을 던져준다.지금까지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여름에 읽었다.출간 시기가 여름이어서인지 아니면 여름이면 생각나는 작가인지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더운 여름, 읽기에 딱 좋다.아! 그나저나 아마도 얼마간은 치즈는 멀리할 듯하다.
새벽 2시 고급 주택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사망자는 집주인인 현역 도의원과 전직 배우인 부인임이 밝혀진다.화재는 사고가 아닌 인위적 화재로 보이고 아내가 거실에서 남편을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으로 추정된다.수사가 진행되면서 강제 동반자살인 줄 알았던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특별 수사본부가 설치된다.피해자의 인간관계를 조사하는 참고인 조사반에 포함된 고다이 쓰토무는 생활안전과의 야마오와 한 조가 돼 수사를 시작한다.#가공범 이 고다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면, #백조와박쥐 는 그를 세상에 탄생시키기 위한 인큐베이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옮긴이의 글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시리즈가 탄생했다.<가공범> 속 형사는 사건의 참고인 조사반에 소속돼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만나 피해자에 대해 질문하고 청취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어떤 사소한 이야기도 절대 흘려듣지 않는 성실한 고다이의 모습은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고요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사건을 파고들수록 40여 년 전의 어떤 사건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채고 그 사건에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마음을 쓰는 고다이의 모습이 인간적이다.달리는 형사보다는 찬찬히 걸으며 살피는 형사 느낌의 고다이는 무엇이든 다 아는 명탐정이 아닌 발로 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작가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닮은 고다이가 다음 사건에는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