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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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 세 번째가 출간된다.
첫 번째 <아무도 모를 것이다>속 이야기들은 작가가 쓰는 소설의 근간을 알 수 있는 열 편의 이야기로 채워졌고 두 번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흔드는 환상 괴담’ 열 편이 들어있다.

세 번째 단편집 <작은 종말> 역시 열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으로 우선 세 편의 이야기가 실린 가제본을 읽어보았다.
단편 ’지향‘은 국내 작가들이 쓴 퀴어문학 시리즈 큐큐쿼어단편선에 발표된 소설로 ’나‘와 같이 데모하는 사이인 ‘강’의 죽음 뒤 그를 기억하며 쓴 이야기다.

’무르무란‘은 글로 기록되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로 여자와 남자를 특별하게 구분 짓거나 역할을 나누지 않는 모습이다.
그저 아이를 품은 엄마는 선조의 선조의 선조들이 바위 벽에 그림을 새긴 뜻을 이어 그림을 새길 뿐이다.
마지막 ’개벽‘은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했다고 말하는 사이비에 속아 숯과 소금으로 자신을 돌보려 했던 남자의 이야기다.

맛보기로 읽은 세 편의 이야기 중 현재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룬 ’지향’과 ‘개벽’이 인상적이다.
‘개벽’은 이미 출간된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마음이 짠하다.
아내와 사별하고 결혼한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방법은 건강하게 살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이비에 의탁하는 노인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기에 더 잔인하고 슬프다.

‘지향’을 읽는 내내 우리가 규정 짓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의 언어 습관 중 ‘다름’과 ‘틀림’을 혼동해서 쓰는 것처럼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틀리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 지 곱씹어 보게 된다.
본 책에 실린 나머지 이야기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 할 지 궁금해진다.

<본 서평은 퍼플레인 출판사의 가제본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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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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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이 2020년에 출간됐으니 그 후속작인 <녹나무의 여신>은 4년 만에 나온 이야기다.
’녹나무의 파수꾼‘에서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어머니와 살던 주인공 나오이 레이토가 어머니가 사망하고 다닌던 회사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해고 당하자 밤에 몰래 회사 물건을 훔치다 잡혀 재판에 넘겨진다.

다행히 위기의 순간에 어머니의 이복 언니인 ‘야나기사와 치우네‘의 도움으로 무사히 석방되지만 치우네는 레이토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월향신사에 있는 녹나무의 파수꾼을 제안한다.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파수꾼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일에 믿음이나 긍지가 없던 레이토는 녹나무를 찾아와 의식을 치루는 사람들을 통해 점차 변화해 간다.

신비한 녹나무의 두 번째 이야기 속 레이토는 주변을 살피고 찾아오는 손님을 적극적으로 응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파수꾼이 돼 있다.
어느 날 월향신사에 여고생 유키나가 찾아와 자신이 만든 시집을 팔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마지못해 시집을 두고 가라고 하지만 참배객들은 도통 시집에는 관심이 없고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집을 몰라 가져가려는 고사쿠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며칠 후 그가 다른 사람 집을 침입해 주인을 다치게 하고 돈까지 훔쳐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발생한다.
한편 레이토는 경도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치우네와 함께 간 인지증 카페인 주민회관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자고 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아이 모토야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음력 초하루 무렵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기념하고 보름 무렵 혈육이 기념을 수념하는 녹나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고사쿠와 유키나와의 비밀 역시 녹나무에서 행한 의식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유키나와 그림책을 함께 만드는 모토야도 녹나무에게 올린 염원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게 된다.

강도범으로 몰린 고사쿠도 인지장애를 앓는 치우네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유키나도 자고 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모토야도 묵묵히 녹나무를 지키는 레이토도 다른이의 부러움을 살만한 삶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돌보거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아무리 행복한 기억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모토야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유키나가 함께 만든 그림책을 통해 과거에 얽매여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다가오는 미래가 불안해 현재까지 불행하게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라.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풍족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으냐. 병들어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으냐. 먹을 것이 있고 잠잘 곳이 있고 꿈꿀 수 있지 않으냐.” (p354)

분명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너무나 가슴 절절해 한참을 울먹이게 되는 이야기다.
추리, 미스터리 소설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소설 역시 잘 쓰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된다.


<본 도서는 출판사 소미미디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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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롭고 간절한 위픽
은모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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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우리가 사는 삶은 별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아침이면 일어나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서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간혹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전부다.

작가의 이야기는 이런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춘천으로의 여행 이야기다.
오랜만에 만난 민주와 은하의 여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택시 기사가 추천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춘천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잠깐 기억하며 다음날을 맞는다.

아침에 일어나 자고 있는 친구가 깰까 조심스럽게 커피를 사러 나가 조금 멀리 산책을 하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둘은 헐거운 듯한 약속을 한다.

“별일 없이 잘 있는지, 이제 서로 자주 좀 들여다보고 살자.”

특별할 것 없고 시시하게까지 보이는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우리가 겪었던 10월의 어느 날 이야기와 겹치며 가슴 아프게 전해진다.
누구나 안전한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이어가는 게 특별한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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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리배 - 우리의 긴 이야기
이주희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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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매일 스쳐 지나는
익숙한 풍경 속에
너와 내가 만났어”

우연히 만난 “너와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요.
그럼에도 나는 매일 네 생각을 합니다.
머리를 감을 때도 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도 잠이 들 때까지 너를 생각합니다.

나는 너를 만나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하고 함께 여행을 하고 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낚시도 함께 합니다.
서로 닮은 곳 하나 없는 너와 내가 보내는 하루 하루는 둘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고 행복합니다.

“이주희 작가는 매일을 그림 한 컷으로 남기는 작업을 1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다. 『안녕, 오리배』의 출발 역시 그 기록의 일부이다. 차곡차곡 그림으로 완성한 너와 나의 하루들이 99장 모였을 때, 작가는 그림을 선별하고 배열해 보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 책 소개글 중>

오리배를 타고 있는 캐릭터는 남자가 키우고 있는 선인장과 여자가 갖고 있는 볼펜의 인형 모습입니다.
어쩜 ‘너와 나’는 캐릭터를 닮은 뾰족한 성격과 둥글둥글한 성격의 사람일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너의 뾰족함도 나의 둥글둥글함도 서로에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달라서 좋은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우리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루 하루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읽을 수록 사랑스러운 글과 볼 수록 귀여운 그림을 보다보면 지금 곁에 있는 그와의 소중했던 시간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어쩜 인생은 오리배를 타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리배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리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서는 오리배를 타고 있는 ’너와 나‘가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만 합니다.
인생은 오리배를 타는 것처럼 서로를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학동네 그림책 서포터즈 뭉끄 2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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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2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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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사랑을 받는 작가이자 대학 교수인 ‘해리 쿼버트’의 정원에서 33년 전 실종된 ‘놀라’의 유골이 해리의 대표작인 ’악의 기원’ 원고와 함께 발견되고 해리는 범인으로 지목돼 수감된다.
슬럼프에 빠져있던 제자이자 소설가인 마커스는 해리의 결백을 믿었기에 ‘오로라’를 찾아오고 강력계 형사인 ‘페리’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해리는 자신과 ‘놀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놀라가 실종된 날은 둘이서 캐나다로 떠나기로 한 날이라고 말하지만 대중들은 열다섯과 서른넷이라는 그들의 나이에 거부감을 느끼며 해리의 책은 퇴출되기 시작한다.

다행히 함께 묻힌 원고의 필적때문에 해리는 풀려나고 놀라를 좋아하던 ‘루터 칼렙’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후라 사건은 종결되고 놀라의 사건을 다룬 마커스의 신작은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놀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2권 합쳐 11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소설은 지루할 틈이 없이 전개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마커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추악한 어른들의 민낯을 보게 되는 순간 화가 치밀기도 한다.
보호받아야 할 열다섯 ‘놀라’를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누굴일까 오래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악인은 누구인가도 되짚어본다.

딸의 고통을 눈 감았던 아버지와 남의 삶을 빼앗고 돈으로 잘못을 용서받으려 한 남자, 어린 여자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남의 재능을 훔친 남자, 그리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죄를 덮은 사람, 그리고 눈 감았던 마을 사람들.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던 소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희생했고 용감했지만 죽임을 당한다.
이야기가 끝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표지의 그림 속 풍경이 한없이 슬프게 보인다.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소설은 작가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하게 할만큼 흥미롭다.
33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룬 이야기는 씨실과 날실이 잘 짜여 하나의 아름다운 천이 되는 것처럼 정교하고 촘촘하게 엮어져 있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벌이는 출판계의 이면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1권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한마디 한마디와 작은 행동들이 흩어져있지만 마지막에 하나도 빠짐없이 회수되는 것을 보며 이야기에 어떤 의문도 남지않게 된다.
올 해 읽은 소설 중 가장 긴 이야기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소설이라 많은 사람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본 도서는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책 두께에 놀라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기를 강권합니다.
추리/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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