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은 일본소설 중 재미와 상관없이 가장 불쾌했던 소설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다.좀 과장에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라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었던 책이기도 하다.그런데 ‘살육에 이르는 병’이후 가장 충격적인 결말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 번역되었다.초등학교 5학년인 도모키는 평범한 가정의 외아들이다.그리고 도모키에게는 고스모라는 친구가 있는데 엄마는 경찰인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가고 그 폭력은 고스란히 고스모와 두 살 아래 동생 가이아에게 행해진다.여름방학이 시작된 어느 날 도모키를 찾아온 고스모는 아버지의 컴퓨터를 고장냈는데 아버지가 알면 자신들을 죽일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데 도와달라고 한다.친구라고는 도모키뿐인 고스모를 외면할 수 없어 고스모의 집에 함께 가게 되고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동생 가이아의 시체를 마당에 묻으려는 아버지와 마추친 둘은 고스모 엄마가 있다는 도쿄로 도망치게 된다.그리고 그 뒤를 ‘악마 같은’이 아닌 토할 것 같은 ‘진짜 악마’ 아버지가 뒤쫒는다.소설의 가독성은 두 말할 필요없이 좋다.‘여름방학을 맞이한 두 소년이 엄마를 찾아 가출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모험을 끝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이야기에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존재이자 동생을 죽인 살인자 아버지가 뒤를 쫒는다.’는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소설은 잔혹극이 된다.재미는 있지만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는 고스모의 사정이 너무 마음 아프고 자신을 고스모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 생각하고 끝까지 함께 하는 도모키를 보며 내용은 물론 주인공 두 소년의 어린 나이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경찰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잘 표현돼 더더욱 불편했던 것 같다.사건의 진실은 밝혀지지만 절대 해피앤딩이 아닌 이야기를 읽고 기분이 꿀꿀한 경험을 다시하게 된다.
처음 알게 된 작가, 한겨레출판의 턴 시리즈 두번 째 이야기라 그냥 집어든 책이야.표지의 오싹함보다는 “식물, 상점”이라는 왠지 말랑하고 직관적인 제목에 끌렸고 다 읽고 나서는 표지의 섬뜩함이 확실히 보이네.도심에서 떨어져 있고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곳에 유희는 “식물, 상점”이라는 식물 가게를 열어.다행히 SNS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고 손님이 꽤 많이 찾아오는 유명한 장소가 되지.그런데 유희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자 손님들이 은밀한 부탁을 하기 시작해.나는 사적 보복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나쁜 사람을 법으로 확실히 응징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되려 본인이 범죄자가 되버리는 선택이니 이해는 하지만 찬성할 수는 없어.그래도 소설을 읽는 동안은 속은 시원했어.소설 속에는 우리가 tv 뉴스에서 수없이 봐 오던 나쁜 놈들이 등장하거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동물을 학대하고 신고한 사람을 스토킹하는 놈, 사귀는 여자친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는 놈, 직장 내 갑질을 포함 성희롱하는 놈들까지.피해자는 죽을 것처럼 무서워서 신고 했는데 이런 놈들은 금방 풀려나 피해자를 더 괴롭히는 경우도 많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잖아. 그래서 픽션인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완성될 수 없는 이야기라 읽을 때 쾌감같은 게 생겼어.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아니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읽었어.그리고 진짜 나쁜 놈들을 흔적없이 처리해 주는 일을 막 응원하게 됐지 뭐야.거기다 유희를 의심하고 뒤를 캐는 형사가 나오거든 나는 이상하게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는 이야기는 막 무섭고 그래서 읽다가 커피도 마셨고 빨래도 돌렸고 막 이것저것 집안 일도 하다가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다 덮기를 반복했어.그만큼 시원하고 재미있었다는 이야기야.뉴스를 보다가 정말 죽이고 싶을만큼 못된 놈들이 법망을 빠져나와 세상을 활개치고 다닐 때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 책으로 잠시나마 위안을 받아보길 바라.조예은 작가님의 “입속 지느러미”도 특이하고 재미있었는데 이 책도 꽤나 재미있어서 턴 시리즈 나올때 마다 읽을 것 같아.물론 강민영 작가님도 기억해 둘거야.
경찰 소설의 모범이라고 불리는 ’마르틴 베크‘시리즈 일곱 번째 이야기다.새벽 2시가 넘은 시각, 전직 경찰서장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졸음을 이겨가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 마르틴 베크는 살해당한 사람이 뉘만임을 알게 된다.뉘만은 오랜 기간 투병 중이었지만 가정에서는 좋은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으며 자존감이 강한 경찰이었다.하지만 조사를 할수록 그의 악행이 하나하나 밝혀지는데 오랜 기간 악독한 경찰이었고 많은 민원이 제기됐음에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는 사실이다.경찰의 사법 옴부즈맨에 뉘만의 대한 수많은 고발건이 접수되지만 매번 관련없다거나 기억하지 못하거나 정당하게 처리했다는 식으로 결론 내려지게 된다.그 중 아내를 잃고 오랜기간 민원을 제기했던 전직 경찰인 에릭손의 진정 역시 묵살됐음을 알게 된다.사건의 진실은 짧은 시간에 밝혀지고 범인의 정체도 금방 밝혀지지만 범인은 경찰을 타킷으로 한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며 막장으로 몰리게 된다.소설은 누가 범인임을 밝혀가는 과정은 물론 범인과 대치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흥미를 배가시킨다.소설은 ‘경찰 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시리즈지만 과감하게 경찰의 비리를 낱낱이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이 시리즈가 쓰여진지 50년이 넘었고 스웨덴이라는 먼 나라의 소설이지만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않았다는 느낌을 지을수가 없다.그때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이어지고 있고 잘못된 수사를 절대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좋은 경찰이란 범인을 때려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소설을 읽는 내내 오랜 시간 악조건 속에서 초과 근무하는 경찰에 빙의된 듯 하품을 여러 번 째지게 했다.<본 도서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정주행 이벤트에 당첨돼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60세에 은퇴 후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 작가의 데뷔작이다.제목에 들어간 생소한 단어인 ‘귀축(鬼畜)‘은 아귀와 축생을 이르는 말로 너무나 야만적이고 잔인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아빠는 엄마가 죽였습니다.언니도 엄마가 죽였습니다.오빠는 엄마와 죽었습니다.엄마는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 집 귀축은 엄마였습니다.엄마와 오빠가 늦은 밤, 드라이브 중 바다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보험금을 수령을 위해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딸 유키나가 사립탐정 사카키바라에게 사고 조사를 의뢰한다.탐정은 가족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며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먼저 읽은 <기만의 살의>는 편지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였다면 <귀축의 집>은 탐정이 사건의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해 가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방식이다.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이야미스‘가 가미된 본격 미스터리라는 옮긴이의 말을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가족의 의미와 그리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은 인간은 본디 악의 존재인지 악으로 길러지는 지 고민하게 된다.이미 벌어진 일을 인터뷰를 통해 복선을 깔고 마지막 회수하는 방법이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킨다.연달아 읽은 작가의 소설 중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가 더 매콤하고 재미나다.
권혁일 작가의 <첫사랑의 침공>은 제목 그대로 세상의 여러 가지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네 편이 들어있는 단폅집입니다.표제작인 ’첫사랑의 침공‘은 6년 전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말하고 사라진 첫사랑 누나의 종족이 지구를 침공해 오자 예비군인 ’나‘는 누나가 타고온 외계선에 가까이 가기 위해 GP근무를 자원하게 됩니다.’세상 모든 노랑‘은 노란 색을 볼 수 없는 ‘영‘은 오랜 꿈이었던 화가를 포기하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합니다.졸업을 앞두고 노란색을 테마로 한 졸업 작품을 남겨야 하는 영 앞에 노란색의 신, ‘랑’이 나타나고 랑의 손을 잡는 순간 세상의 노란색을 볼 수 있게 됩니다.’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은 여섯 살에 아빠와 헤어져 보육원에서 지내게 된 ’서현‘은 열 살부터 생일날이면 광화문에서 아빠를 기다립니다.그리고 스무 살 생일에 지구를 멸망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게 되고 진짜 서현은 지구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됩니다.’하와이안 오징어 볶음‘은 북한 갑첩인 ’민정‘은 6년 동안의 위장 결혼을 청산하고 도망치려는 순간 남편인 ’정훈‘은 사정도 모르고 민정을 따라 나섭니다.배신한 민정을 쫓는 북한군 요원과 속도 모르고 따라 나서는 정훈은 자꾸만 민정의 발목을 잡습니다.“소설을 쓸 때, 허구인 척하면서 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소설은 외계인이 등장하고 노란색의 신, 간첩이 주인공이지만 어떤 첫사랑 이야기보다 사실적입니다.처음이라 서툴렀고 처음이라 다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들이 소설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미쳐 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첫사랑의 침공)과 사계절을 함께 보내며 즐겁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행복을 빌어줘야 했던 첫사랑(세상의 모든 노랑)과 종족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지만 무수한 시간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우리(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그리고 외계인이나 신보다도 더 어렵고 먼 존재인 북한 간첩과의 사랑(하와이안 오징어 볶음)까지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첫사랑을 담고 있습니다.저에게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련하기도 하지만 서투름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단어입니다.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할 거고 조금은 너그럽게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네요.너무나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 다시 못 올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이야기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안전가옥 골라먹는 로맨스 서평단에 선정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