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실수로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미워하는 누군가를 토마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마윤이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드는 장면을 애증의 관계인 유미도에게 들키고 만다.하등에 쓸모없는 능력을 유미도는 부러워하며 자신의 과외 선생님을 토마토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초등학교 5학년 때 남동생과 자신을 차별하는 할머니를 토마토로 만들면서 그 능력을 알게 된 도마윤은 혹시나 다른 사람을 토마토로 만들까 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았다.그런데 자신이 숨기고 있던 마음을 박은해가 알아채 버린 것이다.조예은 작가 특유의 기발한 설정과 청소년기에 느끼는 친구를 향한 시기와 질투 뒤에 숨겨진 동경과 부러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펼쳐간다. 어린 시절을 이미 지나온 어른들이 잊고 있던 아이들의 고민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하다.나와 다른 누군가를 한없이 부러워하다 종내에는 미워하기도 하는 마음이 꼭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애증 관계가 이해된다.그래도 아이들은 스스로 그 관계를 풀었으니 영영 멀어지는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소설의 첫 만남-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인 시리즈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간간이 삽입된 그림이 있어 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로 충분할 것 같다.
조예은 작가의 신작 소설집 <치즈 이야기>는 입맛을 쓰게 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듯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2022년에서 2024년에 발표된 단편을 모은 단편집 속에는 7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나는 이미 3편의 소설을 다른 지면을 통해 읽었으니 나름 부지런히 조예은 작가를 찾아 읽었다고 할만하다.“자고로 음식은 나눌수록 더 맛있어지는 법이죠. 이 황홀한 맛을 저 혼자만 알기 아까워 당신을 불렀답니다.”(33쪽)표제작 <치즈 이야기>는 아주 밝은 톤으로 그 참혹함과 끔찍함을 나긋나긋하게 독자에게 속삭인다.어린 시절 함께 살던 엄마에게 방치돼 죽을 고민를 넘기고 어른이 된 아이는 십오 년 후 전신마비인 엄마를 자신이 어린 시절 갇혀 지낸 방에 방치한다.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보증금 돌려받기>는 실제로 어디선가 진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공포스럽다.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안하무인 집주인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세입자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이다.7편의 소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현실이라고 하기엔 환상적인 이야기와 먼 미래와 우주에서 펼쳐지는 sf소설까지 읽으며 역시 ‘조예은’답다고 되뇌게 된다.<치즈 이야기>로 작가를 각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안락의 섬>으로 작가 특유의 공포는 놓치지 않으면서 삶의 따듯한 희망을 던져준다.지금까지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여름에 읽었다.출간 시기가 여름이어서인지 아니면 여름이면 생각나는 작가인지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더운 여름, 읽기에 딱 좋다.아! 그나저나 아마도 얼마간은 치즈는 멀리할 듯하다.
새벽 2시 고급 주택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사망자는 집주인인 현역 도의원과 전직 배우인 부인임이 밝혀진다.화재는 사고가 아닌 인위적 화재로 보이고 아내가 거실에서 남편을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으로 추정된다.수사가 진행되면서 강제 동반자살인 줄 알았던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특별 수사본부가 설치된다.피해자의 인간관계를 조사하는 참고인 조사반에 포함된 고다이 쓰토무는 생활안전과의 야마오와 한 조가 돼 수사를 시작한다.#가공범 이 고다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면, #백조와박쥐 는 그를 세상에 탄생시키기 위한 인큐베이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옮긴이의 글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시리즈가 탄생했다.<가공범> 속 형사는 사건의 참고인 조사반에 소속돼 피해자의 주변인들을 만나 피해자에 대해 질문하고 청취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어떤 사소한 이야기도 절대 흘려듣지 않는 성실한 고다이의 모습은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고요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사건을 파고들수록 40여 년 전의 어떤 사건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채고 그 사건에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마음을 쓰는 고다이의 모습이 인간적이다.달리는 형사보다는 찬찬히 걸으며 살피는 형사 느낌의 고다이는 무엇이든 다 아는 명탐정이 아닌 발로 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작가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닮은 고다이가 다음 사건에는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
<본 도서는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소명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열어 통치하기 시작하여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주기까지의 시대(1603~1867년)“-(다음 어학사전에서)를 말한다.법과 질서에 근거한 평화를 사람들이 받아들였고, 대중문화가 발달해 오락용 읽을거리를 비롯해 여러 출판물이 성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그렇지만 사회적으로는 철저한 신분제도가 지켜졌기에 막부의 지배를 받던 서민들에게는 복종과 억압이 가해졌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유교적 도덕이 강조되던 시기였다.<에도괴담걸작선>은 에도시대의 억울한 죽음을 맞은 이들의 목소리를 단순한 심심풀이 괴담이 아닌 시대를 대변한 민중의 이야기로 풀어 간다.모두 다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진 괴담집은 사회적 약자였던 여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남자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이 잘 드러난 ‘무서운 것은 여자의 질투’에 관한 괴담으로 시작해 신분제도가 있던 시대의 억울하게 죽은 약자들의 분노를 그린 ‘연쇄되는 불행‘으로 이어진다.다음으로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슬픈 사랑 이야기‘ , 그리고 괴이와 인간이 만나는 여러 장소에 얽힌 이야기인 ’인간이 이계와 만날 때‘ 그리고 귀신의 복수담을 엮은 ‘인과응보’로 끝을 맺는다.에도시대의 이야기야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소설로 이미 접해왔지만, 짧은 이야기가 전하는 명료함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죽어서까지 아이를 지키는 어미의 사랑을 그린 ‘무덤 속 어미와 자식’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잘린 머리와 여행한 남자’의 괴담은 어떤 게 진짜 사랑인지 저절로 느끼게 한다.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이 무서웠던 건 귀신이 나와 혼을 쏙 빼놓는 공포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어느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구체적인 지명과 남아있는 유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소개된 에도시대의 괴담 역시 괴담의 중심이 된 가문이 멸문했다는 이야기와 괴이한 일이 벌어졌던 실제 지명이 나와 괴담인 줄 알면서도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역대 최고로 덥다는 여름밤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해 줬던 괴담은 사악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충격요법으로 읽는다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거기다 괴담을 그린 그림이 중간중간 소개돼 상상이 아닌 더 큰 공포를, 그림을 통해 실현해 주고 있어 실감 나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도서는 문학동네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모의 외동딸인 모나는 어떤 징조도 없이 세상이 63분 동안 온통 까매지는 경험을 한다.놀란 부모는 병원에서 갖가지 검사를 하지만 눈의 뚜렷한 이상을 찾을 수 없자 의사는 정신적인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정신과 상담을 권한다.소식을 듣고 달려온 할아버지는 바쁜 부모를 대신에 매주 수요일 오후에 모나를 데리고 정신과 정기 진료를 받으러 다니겠다고 선언한다.그러나 할아버지는 매주 수요일이면 부모에게 비밀로 하고 모나를 데리고 병원 대신 미술관으로 향한다.소설은 병원 대신 파리의 3대 미술관인 루브르, 오르세, 보부르를 매주 수요일마다 가는 할아버지와 모나의 이야기다.일 년 동안 세 곳의 미술관에 전시된 52개 작품을 함께 감상하며 작품에 대한 설명은 물론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리고 화풍 등을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소설은 아버지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알게 된 아이의 불안과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학교생활, 친구들과의 우정과 갈등을 미술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있다.특히 그림을 통해 얻은 경이로운 감동은 아이 마음속 숨겨져 있던 의문과 슬픔을 드러내게 하는 계기가 돼 모나가 겪는 실명 위기의 뿌리를 찾게 된다.모나가 충분히 그림을 보고 난 후 할아버지는 유능한 도슨트가 돼 작가를 설명하고 그림에 숨어 있는 의미를 자세히 설명한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나는 더 오랫동안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작품을 통해 느낀 점을 할아버지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모나가 성장해 가는 과정과 할머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예술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돼 두 갈래로 진행된 이야기는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모나의 눈”은 한 아이의 성장을 따라가는 소설로도 감동적이지만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예술서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다.미술사학자인 작가의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은 모나의 이야기와 미술관 여행을 쭈욱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모나와 할아버지처럼 하루에 한 작품씩 정해 오랫동안 작품을 감상하고 할아버지의 설명을 읽으면 전시실에 함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