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은 한겨레출판과 리디가 공동 기획한 장르 소설 시리즈입니다.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꿉니다. 이야기의 불빛이 켜지면 새로운 세계에 도착합니다.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경주의 목소리에 반해 그 목소리로 부를 노래를 만들고 싶어 밴드까지 결성했던 선형은 이제는 공시생이다.9급 교육행정 국가직 최종 면접을 마친 저녁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특별히 왕래가 없던 삼촌이 선형에게 오래된 건물을 물려 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선형이 삼촌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간 건물의 지하에서 뜻밖의 존재와 마주친다.사랑했던 이가 어느 순간 진짜 본인의 찌질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절망은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선형은 공시생이 되면서 꿈을 버렸지만 ‘파니’를 만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어쩜 선형은 경주라는 꿈에서 파니라는 꿈으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문득 꿈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같은 뜻이구나 싶다.조예은 작가의 이야기는 여름에 읽어야 더 좋은 것 같다.일찍 시작한 올 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을 만큼 오싹한 이야기는 괴이하지만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괴이하다.소설을 읽는 내내 바다의 물비린 내와 함께 찰박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호러 공포 소설이라니 읽기 전 살인마나 유령이나 괴물을 기대하며 읽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하지만 다섯 편의 소설을 읽다보면 직접적인 피비린내 나는 죽음이 따라 오는 공포가 아닌 주인공이 경험한 상황에서 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담고 있어 더 큰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성주단지> 속 여성은 데이트 폭력을 피해 아무도 모르는 도시로 피신해 고택에 머물게 된다.그 곳에서 경험한 기이한 일이 조상들이 집집마다 모셔둔 성주단지를 허투루 여기지 않은 이유인 것만 같다.<야자 중 xx 금지>는 학교 괴담으로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야 마는 여고생들이 경험하는 공포이다.아이들이 만난 계절에 맞지 않는 교복을 입고 있었던 존재는 누구였고 왜 그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는 지 궁금해진다.옹녀의 시점에서 변강쇠 이야기를 새롭게 쓴 <낭인전>은 팔자가 기구해 남편을 여럿 얻은 옹녀가 늑대인간이지만 더 없이 착하고 다정한 변강쇠를 만나 순탄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닌 장승의 등장으로 기대했던 평화가 깨진다.신분이 엄격했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풀각시> 속 주인공이 자신에게 못된 짓을 한 양반 자제에게 행하는 복수는 할머니의 이야기와 이어져 더 큰 힘을 발한다.천주교 박해가 한창인 시대가 배경인 <교우촌>은 자신의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를 통해 비밀을 전하고 극강의 공포스러운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소설집 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실려있는 다섯 개의 이야기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대부분의 그녀들은 피해자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 피해를 인정 받지 못한다.‘성주단지’ 속 엄마는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미치지 않았냐고 되묻기도 하고 ’낭인전‘속 옹녀는 남편이 연달아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마을에서 쫓겨난다.만약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미쳤냐고가 아닌 잘한 결정이라고 말하고 아내를 연거푸 잃은 남자에게는 세상에 여자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가 생각해 본다.이야기 속 여자들은 그 누구보다 용감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는 모습이다.현대의 이야기보다 옛 이야기가 더 맛깔스러운 작가로 ’김이삭‘을 기억할 것 같다.“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귀신은 사람을 죽일 수 없거든요.전 귀신은 무섭지 않아오. 사람이 무섭죠.” (p39)<도서는 래빗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아 읽고 자유롭게 느낌을 적었습니다.>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 세 번째가 출간된다.첫 번째 <아무도 모를 것이다>속 이야기들은 작가가 쓰는 소설의 근간을 알 수 있는 열 편의 이야기로 채워졌고 두 번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흔드는 환상 괴담’ 열 편이 들어있다.세 번째 단편집 <작은 종말> 역시 열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으로 우선 세 편의 이야기가 실린 가제본을 읽어보았다.단편 ’지향‘은 국내 작가들이 쓴 퀴어문학 시리즈 큐큐쿼어단편선에 발표된 소설로 ’나‘와 같이 데모하는 사이인 ‘강’의 죽음 뒤 그를 기억하며 쓴 이야기다.’무르무란‘은 글로 기록되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로 여자와 남자를 특별하게 구분 짓거나 역할을 나누지 않는 모습이다.그저 아이를 품은 엄마는 선조의 선조의 선조들이 바위 벽에 그림을 새긴 뜻을 이어 그림을 새길 뿐이다.마지막 ’개벽‘은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했다고 말하는 사이비에 속아 숯과 소금으로 자신을 돌보려 했던 남자의 이야기다.맛보기로 읽은 세 편의 이야기 중 현재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룬 ’지향’과 ‘개벽’이 인상적이다.‘개벽’은 이미 출간된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마음이 짠하다.아내와 사별하고 결혼한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방법은 건강하게 살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이비에 의탁하는 노인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기에 더 잔인하고 슬프다.‘지향’을 읽는 내내 우리가 규정 짓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생각했다.우리의 언어 습관 중 ‘다름’과 ‘틀림’을 혼동해서 쓰는 것처럼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틀리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 지 곱씹어 보게 된다.본 책에 실린 나머지 이야기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 할 지 궁금해진다.<본 서평은 퍼플레인 출판사의 가제본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 2020년에 출간됐으니 그 후속작인 <녹나무의 여신>은 4년 만에 나온 이야기다.’녹나무의 파수꾼‘에서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어머니와 살던 주인공 나오이 레이토가 어머니가 사망하고 다닌던 회사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해고 당하자 밤에 몰래 회사 물건을 훔치다 잡혀 재판에 넘겨진다.다행히 위기의 순간에 어머니의 이복 언니인 ‘야나기사와 치우네‘의 도움으로 무사히 석방되지만 치우네는 레이토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월향신사에 있는 녹나무의 파수꾼을 제안한다.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파수꾼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일에 믿음이나 긍지가 없던 레이토는 녹나무를 찾아와 의식을 치루는 사람들을 통해 점차 변화해 간다.신비한 녹나무의 두 번째 이야기 속 레이토는 주변을 살피고 찾아오는 손님을 적극적으로 응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파수꾼이 돼 있다.어느 날 월향신사에 여고생 유키나가 찾아와 자신이 만든 시집을 팔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마지못해 시집을 두고 가라고 하지만 참배객들은 도통 시집에는 관심이 없고 무심히 지나친다.그러던 어느 날 시집을 몰라 가져가려는 고사쿠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며칠 후 그가 다른 사람 집을 침입해 주인을 다치게 하고 돈까지 훔쳐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발생한다.한편 레이토는 경도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치우네와 함께 간 인지증 카페인 주민회관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자고 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아이 모토야를 만나게 된다.이야기는 음력 초하루 무렵 전달하고 싶은 마음을 기념하고 보름 무렵 혈육이 기념을 수념하는 녹나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고사쿠와 유키나와의 비밀 역시 녹나무에서 행한 의식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유키나와 그림책을 함께 만드는 모토야도 녹나무에게 올린 염원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게 된다.강도범으로 몰린 고사쿠도 인지장애를 앓는 치우네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유키나도 자고 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모토야도 묵묵히 녹나무를 지키는 레이토도 다른이의 부러움을 살만한 삶은 아니다.하지만 그들은 ‘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돌보거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그리고 아무리 행복한 기억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모토야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유키나가 함께 만든 그림책을 통해 과거에 얽매여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다가오는 미래가 불안해 현재까지 불행하게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라.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풍족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으냐. 병들어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으냐. 먹을 것이 있고 잠잘 곳이 있고 꿈꿀 수 있지 않으냐.” (p354)분명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상황이 너무나 가슴 절절해 한참을 울먹이게 되는 이야기다.추리, 미스터리 소설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소설 역시 잘 쓰는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된다.<본 도서는 출판사 소미미디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보통의 우리가 사는 삶은 별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다.아침이면 일어나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서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간혹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전부다.작가의 이야기는 이런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춘천으로의 여행 이야기다.오랜만에 만난 민주와 은하의 여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택시 기사가 추천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춘천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잠깐 기억하며 다음날을 맞는다.아침에 일어나 자고 있는 친구가 깰까 조심스럽게 커피를 사러 나가 조금 멀리 산책을 하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그리고 둘은 헐거운 듯한 약속을 한다.“별일 없이 잘 있는지, 이제 서로 자주 좀 들여다보고 살자.”특별할 것 없고 시시하게까지 보이는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우리가 겪었던 10월의 어느 날 이야기와 겹치며 가슴 아프게 전해진다.누구나 안전한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이어가는 게 특별한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