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인물도>라는 소제목이 붙은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우리나라 전래동화 속 인물들이 동화 속에서는 차마 하지 못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입니다.별주부전 속 토끼는 처음부터 용궁의 금은보화를 가져올 요량이었고별주부는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도 신하 된 도리로 토끼를 찾아 나섰지요.용왕은 별주부를 가장 믿을 만한 신하로 생각하고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답니다.아버지 없이 서럽게 자라 온 팥쥐가 왜 그토록 콩쥐를 싫어했는지콩쥐는 진짜로 팥쥐와 새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는지그리고 진짜 누가 콩쥐가 해야 할 일을 도와줬는지 속마음을 통해 알 수 있어요.세상에는 철저한 악인도 그렇다고 무조건 선인도 없습니다.지금까지 알고 있는 전래동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정형화된 선인과 악인으로 나눠져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결말을 맺습니다.우리는 한 번도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더군다나 그 사람이 악인이라면 진짜 악행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이유라도 들어줄 마음 따위는 없이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친숙한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진짜 속마음을 듣게 되고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됩니다.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동화 속 인물의 특징을 잘 살린 얼굴 그림과 핑계로 들리기도 하는 속마음을 읽는 즐거움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화로도 최고입니다.
5~6월에 피는 “모란”은 꽃이 크고 화려해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리며 화조도에 가장 많이 그려진 꽃이랍니다.<모란의 친구 누구?>는 모란과 다양한 동물들이 그려진 민화를 모아 거기에 맞게 글을 쓴 그림책입니다.수록된 모란도는 ‘가회민화박물관‘에서 소장한 작품들로 화려한 모란은 물론 ’나비, 토끼, 강아지, 사슴‘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들이 함께 등장합니다.모란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뜻하고 대부분 두 마리가 함께 그려진 동물들은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고 합니다.모란의 친구 누구?파랑새파랑새는 왜 모란의 친구?“빨갛고 커다랗고 향기도 좋지.그 속엔 우리의 먹이들도 많이 숨어 있다고,모란이 있으면, 우리 부부는 신이 나지”모란의 친구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그림 속 동물들이 답을 하는 형식입니다.입에 착 붙는 글은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만들어 오신 이호백 작가의 글로 다음 장에서는 어떤 동물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옛날에는 궁궐은 물론 민간에서도 혼례식과 같은 길상 의례 때 사용하던 병풍에 많이 그려진 꽃이 모란이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에 가야지만 볼 수 있는 화려한 모란이 그려진 민화를 두고두고 가까이 볼 수 있어 더없이 소중한 그림책입니다.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었지만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이라는 다소 말랑한 제목과 표지에 혹해 고른 책이다.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은 먼 미래의 지구인의 삶을 다룬 sf소설과 그로데스크 한 이야기들,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소설 8편이 실려있다.솔직히 ‘동양식 정원‘과 ’중국식 테이블’은 꿈인지 실제 경험인지 모호하기도 하고 이야기 중간 화자가 바뀌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없이 진행된 탓에 제대로 읽고 있나 반문하며 읽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반에 느껴지는 기괴함이나 섬뜩함만은 어떤 괴기소설보다 공포스러워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죽은 뒤 썩지 않는 인간의 몸은 산업 쓰레기로 분류되고(어스), 많은 사람들의 몸이 기계로 대처되는 시대에 인간의 유해는 우주로 쏘아 올려진다.(무덤 속으로)인류가 컴퓨터에 다운로드되어 버린 시대에 육체가 없는 인간은 인공지능인 안젤리카에 의해 휴먼 슈트에 영혼을 주입하게 된다.(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미래를 그린 소설들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확실해서인지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막막하고 희망 없는 황폐해진 지구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육체가 없는 데이터 상태이지만 끝없이 연인을 찾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 사랑이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멸망의 순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강‘ 작가의 신작 산문집입니다.아주 얇고 작은 책은 속도를 조절하며 읽어야 할 만큼 짧은 글이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비롯해 미발표 시와 산문, 정원일기가 수록돼 있습니다.작가님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미 강연문을 들었지만 텍스트로 만나는 문장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작가님이 쓰신 소설 이야기와 특히 광주에 대해 쓴 <소년이 온다>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마음을 울립니다.‘출간 후에‘의 글 속에 “않아도 된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일들이 소설을 쓰는 내내 작가님이 했던 일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북향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거울로 햇빛을 모으는 모습과 벌레의 침입을 받은 꽃나무를 지키는 모습은 소설 속 주인공들을 지키려는 마음과 닿은 듯하기도 합니다.작가님이 찍으셨다는 군데군데 빛이 아롱거리는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봅니다.거울로 모은 작은 빛이 나무를 키우는 것이 한 자 한자 써 내려간 글이 소설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듯합니다.후루룩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소중한 글들이라 찬찬히 적어보고 싶어 집니다.
<빛소굴 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작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바퀴벌레 논쟁을 일으킨 소설 <변신>의 원작자인 카프카는 그의 소설은 읽지 않았어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름은 알고 있는 작가다.’20세기 가장 문제적 작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카프카의 미완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성>이다.토지 측량사 K가 백작의 부름으로 성에 가기 위해 마을에 도착한 것은 많은 눈으로 마을이 파묻힌 늦은 저녁이었다.마을은 성의 소유로 백작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머무를 수 없는 곳으로 여관에 머무르는 K에게 마을 사람들은 조롱과 야유는 물론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대한다.K는 마을에 머물며 성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성은 형체도 보이지 않고 스스로 K의 조수라고 말하는 남자들에게서는 방해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그러던 중 마을 여관 주점의 점원인 프리다와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고 학교 관리로 근무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성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소설을 읽으며 내내 K가 가려고 했던 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된다.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성은 마치 인간이 꿈꾸는 성공이나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진다.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의 방해는 인생에서 부딪히게 되는 실패와 절망으로 읽힌다.한편 성의 관료인 클람의 심부름꾼인 바르나바스 가족의 이야기와 K가 여관에서 ‘에어랑어’를 만나기 위한 오랜 기다림은 성이 권위적인 관료사회를 의미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직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대단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관료들의 모습은 마치 일처리에 속도를 내지 않는 공무원 사회를 보는 듯하다. K는 측량사이지만 측량에 관한 업무는 해보지 못한 채 소설은 중단된다.측량사지만 관련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계를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실패한 사랑과 성에 도달하려 부단히 노력하는 K의 성 아래 마을에서의 생활이 쓰디쓴 인생을 압축해 놓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