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설을 읽고 글을 쓸 때는 스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도마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 후 사형 선고를 받고 여순감옥에서 형이 집행돼 순국한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다.김훈 작가를 통해 만난 안중근 의사는 작가 특유의 건조한 글이 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이토와 안중근의 여정이 번갈아 나오는 소설은 누구의 입장에도 서지 않고 사실만을 서술하고 있다.대한의 안중근과 일본의 대신 이토이야기는 영웅 안중근의 활약을 기대해서인지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전개에 당황스럽기도 하다.보통의 현존했던 인물들 이야기는 확인할 수 없는 주인공의 마음 속 생각까지 작가의 글을 통해 짐작해 들을 수 있지만 ‘하얼빈’의 안중근은 사실만을 적고 있다.독자에게 작가의 생각을 은근히 알리지도 알고 모든 걸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문장에 부사가 없다는 건 감정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임을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느낀다.그 끝을 알면서도 옷을 사입고 이발을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담담하기에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짧은 문답으로 진행된 신문과정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 더 가슴 아프다.담배팔이 우덕순과의 거사 계획을 하면서도 중언부언하지 않아 더 결기를 느낄 수 있다.300페이지 남짓한 소설을 참 어렵게도 읽었다.문장만으로는 눈물을 흘릴 대목이 아닌데도 그 날의 상황과 의사의 결기있는 마음이 느껴지고 남겨진 가족 생각에 자꾸만 눈이 흐려졌다.형제와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들의 삶이 어땠을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냉정함에 스스로 부끄러워 진다.마지막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으며 심란하고 뻐근한 마음을 달래본다.📮적의 법정에서 안중근은 아무런 정치적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했다. 안중근은 다만 살인의 죄명으로 처형당했지만, 그가 신앙하는 평화와 정의의 신이 그의 영혼을 안아서 거두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기도한다. ‘동양평화’를 절규하는 그의 총성은 지금의 동양에서 더욱 절박하게 울린다. 안중근은 서른 한살로 죽었다.
지금도 즐겨부르는 ‘나리 나리 개나리’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고향 땅’등의 작품을 쓰신 윤석중 선생의 시에 이영경 작가의 그림이 함께 하는 우리시그림책이다.똑단발의 아기가 엄마 심부름으로 가겟집에 시간을 물으러 간다.가겟집 영감님은 “넉 점 반이다” 알려준다.아기는 온갖 해찰을 부리면서도 “넉 점 반 , 넉 점 반”을 외운다.물 먹는 닭도 구경하고 개미도 살피고 잠자리를 따라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노래도 부른다. 그러다 해가 꼴딱 져 돌아와서 천연덕스레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한다.세상에 이런 귀여운 아기가 있나?엄마는 이렇게 멀게 있는 가게에 시간을 물으러 심부름 보냈나 살펴보니 바로 도랑만 건너면 가겟집이다.시도 시지만 그림만으로 이야기 한 보따리 만들 수 있을만큼 재미나다.아기를 따라 가다보면 가게 앞의 옛날 아이스께끼 통에 아버지가 타시던 짐바리 자전거, 그리고 자랑스레 걸려있는 졸업 사진과 원기소 광고지,비닐우산등 추억 속의 물건들이 가득한 가게 안은 물론 담벼락에 핀 접시꽃,봉숭아,키 작은 채송화와 분꽃은 어느새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짧은 동시가 좋은 그림을 만나면 어떤 감동을 주는 지 알려주는 정답지 같은 그림책이다.시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여주는 그림책이라 더 곱고 곱다.🌼🌸🌺🌻넉점반 윤석중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넉 점 반이다.”“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한참 서서 구경하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넉 점 반 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넉 점 반넉 점 반.”아기는 오다가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엄마시방 넉 점 반이래.”
7년 전 여름 어느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발키리 독극물에 9명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범인은 같은 반의 친구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않았던 우에다였다.우에다는 바로 체포돼 소년원에 보내지게 되고 사건은 ‘목요일의 아이’라고 명명된다.사건 7년 후 소설의 화자인 시미즈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 하루이코를 둔 가나에와 결혼하게 된다.학교 폭력의 피해자인 하루이코는 엄마의 결혼으로 목요일의 아이 사건이 벌어졌던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시미즈는 함께 살게된 아들에게서 정체모를 공포를 느끼게 된다.소설은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나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어지는 학교 폭력과 가장 사랑하고 아껴야 할 존재인 가족에게 행해지는 폭력, 그리고 제대로 처벌 받지 않는 소년범이 그럴듯한 궤변을 진리라고 설파하는 모습까지 모든 일들이 공포스럽게 다가온다.옳지 않은 자신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고 거악이 되는 가를 보여주는 장면은 우리도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가스라이팅의 전형이라 더 무서웠다.특히나 가스라이팅 상대가 아이들일 경우 게임으로 생각하며 쉽게 다가갔다 피해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온 신경을 건드렸다.특히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시미즈를 보며 진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핏줄로 연결된 가족이라고 해도 진짜 가족이 아닐 수 있듯이 나중에 부모 자식이 된 사이라도 얼마든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해답을 얻게 된다.나는 진짜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엄마 역할을 하고 있나 생각이 깊어진다.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의 영화나 드라마,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본 독자나 시청자에게 이야기 끝을 마무리하게 하는 것은 창작자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운 것 같아서다.그리고 끝맺음을 찾아 며칠씩 씩씩거리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를 고민하는 게 영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이야기의 끝’은 작가의 전작들을 재미나게 읽었고 “추리소설의 여왕 미나토 가나에가 순한 맛으로 돌아왔다.”는 문구에 혹해 고른책이다.그러다 보니 첫번째 이야기 “하늘 저편”을 읽고 이게 뭐야 싶었다.거기다 작가의 친절한 말씀은 이게 이야기의 끝이라고 못 박는 것 같아 언제나 명료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 온 탓에 배신감마저 느꼈다.다음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단편인줄 알았다.그런데 작가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다음 이야기들은 첫번째 챕터의 단편소설이 생명력을 잃지않고 세월을 넘어 사람들의 손에 차례차례 전해지며 읽은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맞춰 결말에 도달한다는 내용이었다.암에 걸렸지만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온 여성, 꿈을 포기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 여행을 온 청년,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다른 꿈을 찾아낸 사회 초년생, 자식을 위해 살아온 인생에 절망한 라이더 아저씨, 그리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혼자라고 생각하는 중년의 커리어우먼까지 결말 없는 소설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각자의 이야기로 끝맺음을 맺는다.책을 읽는 내내 홋가이도 유명 여행지를 찾아가며 읽었다.여행지에서는 누구나 느긋해지고 열린 마음이 되어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그래서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전하는 소설을 자연스럽게 받아 읽고 자신만의 결말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하지만 나는 읽은 내내 첫번째 이야기 하늘 저편의 결말을 생각했고 마지막 반전(?)에서 그 수수께끼는 다 풀렸고 역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독자는 자신만의 결말을 만들 수 있고 마지막에는 작가의 결말까지 얻을 수 있어 처음과 다르게 참 친절한 작가라고 칭찬하게 된다.갈 곳을 잃어 헤매던 이야기는 돌고 돌아 주인을 찾아가는 기적을 만들었고 인간사 걱정없고 고민없는 이가 어디있을까하는 큰 깨달음을 얻으며 책을 덮는다.
처음 알게 된 작가다.인터넷 서점의 추천 마법사가 추천해 준 책이니 내용도 작가에 대해서도 무지한 상태로 읽었다.앞에 1929년 일제강점기 탐정이야기를 읽었으니 미군정기 이야기를 읽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책을 고르는 데 한 몫 했다.미군정기에 미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저명한 윤박 교수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다.범인은 미군으로 밝혀졌지만 미군정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까 언론은 세 명의 여성 용의자를 발표한다.잡지의 편집자 선주혜, 가장주부이지만 과거가 발목을 잡혀 윤박에게 유린당한 윤선자, 그리고 윤박의 제자이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현초의가 그들이다.종로경찰서 소속 검안의인 가성과 신문기자인 운서가 범인으로 지목된 여자들과 윤박 교수와의 관계를 캐기 시작한다.그리고 세 명의 여성들이 공교롭게도 윤박 교수가 죽던 날 그와 다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소설은 범인을 찾기 위한 조사가 아닌 누명을 쓴 세 여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변태로 보이는 가성과 운서, 그리고 현초의와 에리카의 사랑이야기를 하며 이해 받지 못하는 이들의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책을 읽으며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우리는 지금도 나와 다른 정체성이나 사상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좀 더 쉬운 방법으로 터부시하며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내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어쩌면 그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그녀들은 인텔리이든 필부든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던 남자에게 억울하게 당한다.과연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억울하지 않고 공정과 상식 속에서 살고 있는 가 머리가 아프게 고민하지 않아도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마고할미 이야기는 아이들의 그림책에서 처음 접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설화가 있구나 하며 신기해 했는데 미군정기의 마고는 답답함만을 안겨준다.용감한 여성탐정이야기일거라는 기대는 깨졌지만 소설 속 여성들과 소설 밖 여성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 소설 뒤 참고문헌의 목록을 살피며 작가님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소설을 썼는지 감히 상상을 해 보았다.작가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부족한 나의 생각을 정리한 뒤 읽은 김보경 선생의 작품해설은 내가 쓴 글을 부끄럽게 한다.하지만 작품해설을 읽으며 작가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실마리를 확실히 잡은 것 같아 감사하다.아마도 조만간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