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을 때 읽어봐
위기철 지음, 엘레나 셀리바노 그림 / 청년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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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칼바람 같은 슬픔이 몰아쳐 우리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하지.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슬픔은 없으니, 그 속에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마.

얼어붙은 마음은 이내 풀리고, 슬픔이 너를 자라게 할 거야“

책의 뒤표지 글을 읽으며 시는 전에 읽던 느낌과 전혀 다른 시로 다가왔다.

위기철 이야기동시집으로 나온 <신발 속에 사는 악어>중에 나오는 시는  잉잉 우는 아이에게 읽어주면 슬그머니 울음을 그치게 했다면  새로운 그림과 만나면서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가 되었다.

동시집 속의 시가 우리 옛이야기 느낌이라면 러시아의 작가의 그림과 만나면서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듯하다.

짧은 시가 그림과 만나 새로운 책으로 탄생된 경우에는 시만을 읽었을 때와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그림은 짧은 시가 품고 있지 못한 시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어떤 독자는 시를 읽으며 느끼는 감정을 획일화 시킨다고도 하지만 왠지 어렵고 쉬 읽혀지지 않는 동시를 그림과 함께 접하는 방법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경우 시는 재미없어서 잘 안 읽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 데 그림이 더해진 시를 통해 시 읽기에 새로운 시도도 괜찮을 것 같다.

특히나 알고 있던 시라면 더더욱 편하게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진주 같은 눈물을 달고 품안 가득 여러 색깔의 꽃을 한 아름 안고 있는 고운 얼굴의 아가씨가 바로 울 때면 꿀물이 나오는 아가씨다.

세상을 살아가며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기는 아기 때뿐이다.

말을 못하니 배고파도 울고 아파도 울고 불편해도 울지만 어느 누구도 운다고 놀리거나 나무라지 않는 다.

자라면서 서럽고 아파 울고 싶을 때 울면 분명 울보라고 놀림을 받거나 그만 울라는 소리를 듣는다.

더더군다나 어른이 된 후에는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짠 눈물이 아닌 달콤한 꿀물이 나오는 걱정거리 하나 없을 것 같은 작은 아가씨가 나른하고 포근한 봄 들판에 앉아 울고 있을 땐 나비와 꿀벌이 날아들고 커다란 곰이 달려들어 핥기도 한다.

어찌어찌해서 울보 아가씨는 잘생긴 총각과 결혼을 하지만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엉엉 운다.

하지만 그 울보 아가씨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진정한 어른으로 자라있다.


아들 둘을 낳고 어딜 가나 어른 취급을 받는 요즈음에도 나는 자주 운다.

영화나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와도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운다.

가끔은 엄마랑 전화를 하다가도 이유 없이 코가 맹맹해지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슬퍼서도 기뻐서도 흐르는 게 눈물인데 꿀물이 나오는 울보 아가씨가 작은 소녀에서 아가씨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이야기가 고은 그림 속에 펼쳐진다.

나비와 꿀벌이 날아다니는 들판에서의 울음은 단순한 투정 같은 눈물이다.

걱정도 없고 괴로움도 없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는 울음은 환하기까지 하다.

자라면서는 마음껏 우는 게 자유롭지 못하기에 울고 있는 아가씨에게는 곰처럼 무서운 질책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울고 있는 모습까지 아름다워 보인다. 

결혼을 하고서도 울 일은 널려있지만 항상 곁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이가 있기에 행복해 지는 것이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환하고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세상사 울 일도 많지만 울 때마다 누군가 내 곁에 있었던 것 같다.

어려서는 부모가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눈물의 이유가  부모일 때도 있었고, 친구,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눈물들은 나를 자라게 했고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려 우는 아이들을 보며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흘리는 눈물 중 지금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꿀물이 아닐까한다.

때로는 나비처럼 부드럽게 때로는 벌처럼 똑 쏘게 나도 우리 부모가 나에게 그랬듯이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내 아이들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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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예절 배우기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2
조안나 코울 지음, 이복희 옮김, 재러드 더글라스 리 그림 / 시공주니어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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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 책꽂이에 책들은 다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첫애를 임신하고 구입했던 전집들과 큰애 두 번째 생일에 선물했던 도깨비이야기며 도서관에서 몇 번씩 빌려보고도 구입했던 책들까지 지금도 그런 책들을 읽다보면 서점에 들려 책을 찾고 즐거워했던 일이며 읽어 주었을 때의 반응까지 새록새록 다시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차옵니다.

“괴물 예절 배우기”는 2004년 7월 2일에 도서관에 다녀오던 길에 구입한 책입니다.(기억력이 좋아 날짜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책 속지에 그렇게 적어 놓았네요.^^*)

처음 이 책을 읽은 건 버스를 여러 정거장씩 타고 다녔던 도서관에서였지요.

대출 기간을 연장해서 2주를 보고도 반납하고 나오는 길에 다시 빌려가자고 떼를 써서 근처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입니다.

출판사의 코너를 한참을 찾고도 못 찾아 서점주인과 함께 책꽂이를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낸  정말 얇고 작은 책이지요.

1학년이던 큰 애보다 6살이던 둘째가 더 좋아해서 한동안 유치원 가방에  넣어 다녔고 잠자리 책의 일번이기도 했습니다.


로지는 작지만 날카로운 갈퀴 모양의 발톱에, 캄캄한 밤에도 번쩍번쩍 빛나는 초록색 눈까지 갖춘 작지만 흠잡을 때 없는 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괴물들의 예절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 로지는 괴물 사회에서는 걱정꺼리였대요.

괴물들은 친구와 싸우며 장난감을 망가뜨려야하고 거칠게 으르릉거리며 전화를 받아야만 한답니다.

그리고 바위를 우두둑우두둑 씹어대며 자신의 과격함을 과시해야하고요.

하지만, 하지만 로지는 그런 괴물들의 예절과는 거리가 먼 괴물이랍니다.

로지는 누구하고나 사이좋게 지내고,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바위를 먹은 뒤에는 꼭 양치질도 하지요.

그런 로지가 걱정인 엄마아빠는 친구 프루넬라를 과외 선생으로 부쳐 주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로지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남들이 얼마나 불행한지 깨달았어요.

자신에게 실망한 로지는 프루넬라와 집에 오게 되고 그 사이 수도관이 터져 집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고 배관공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배관공이 으르릉거리는 괴물들의 전화에 대꾸하겠어요?

다행히 괴물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상냥한 로지의 전화에 배관공이 찾아와 무사히 수리를 끝낸다는 이야기예요.


이 책은 우리가 잘 아는 “신기한 스쿨버스”의 작가인 ‘조안나 코울’의 이야기입니다.

재미난 이야기에 재미난 그림..정말 금상첨화죠.

그림만 보는 걸로도 즐거워지는 책입니다.

괴물들의 예절을 잘 차리는 괴물들의 표정과 그와 대조적인 괴물사회에선 예의라고는 없는 로지의 표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우리 아이들은 로지의 괴물표정을 따라하곤 하지요.

예절이라는 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거잖아요.

그냥 나만 좋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면 자신은 신나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그 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어요?

아이와 책을 읽으며 한 번도 너는 사람이니깐 프루넬라처럼 강아지를 발로 차면 안 되고, 식사할 때도 게걸스럽게 먹어서는 안 되고, 소파에서 뛰어서도 안 되고, 양탄자에 꽃이 꽂힌 꽃병을 쏟아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저 아이 스스로  누가 진짜 인간들의 세상에서 예절 바른 아이인지 스스로 알기에 따로 애써 설명하지 않았답니다.

사실 예절은 누가 시켜서, 또 공부나 운동처럼  열심히 익혀서도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잖아요.

우리 집 아이들의 예절은 아직은 괴물들의 예절에 가깝습니다.

학교 도서실에서도 까불고, 늦은 밤에도 아래층을 깜박 잊고 뛰기도 하고 가끔은 양치질하는 걸 빼먹고 그냥 자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게 오른 건지 아는 아이들이기에  초록색 어린이 괴물이 아닌 사람들의 예절을 지키며 그것이 다른 사람들까지 편하고 행복하다는 걸 알고 실행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믿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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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2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랑이 2006-01-1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이 책 재미있었어
훌륭 오래오래최고!

초록콩 2006-01-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랑이...진짜 이 책 명종이가 많이 좋아했는 데...지금은 시들해졌다.그치.근데 다시 읽어주니깐 재미있다고 얼굴 표정 흉내면서 귀여운 짓 하더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신문이 보이고 뉴스가 들리는 재미있는 이야기 2
양대승 지음, 조정근 그림, 정기문 감수 / 가나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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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신문이나 뉴스를 보다 “왜,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을 해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이 눈높이에 맞춰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략 난감해 통박을 주거나 얼버무리기가 다반사인데 [신문이 보이고 뉴스가 들리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는 참 쉽고도 재미있다.

부모가 먼저 읽고 아이에 질문에 대답해 주기도 편하고 아이 혼자 읽더라도 부모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책을 살펴보자면 활자가 크고 삽화가 많고 만화도 나와 있어 지루하지 않다.

처음부터 차분하게 읽어도 재미있고 뉴스에서 나오는 말을 이해하지 어려울때 살작 커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또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이슈를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일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사에서 현대사까지 한결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다.

월요일부터 시작해 일요일까지로 이어지는 뉴스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뉴스에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까지 설명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월요일 NEWS편에는 ‘독도. 고구려 특집’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되는 데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를 설명하는 걸로 시작해서 독도가 언제부터 우리나라 땅이었는지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 진행 중인 독도 분쟁과 우리의 대응책까지 통합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지금은 사라져버렸지만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1974년 ‘필립 쁘띠’라는 프랑스인이 400미터 상공에서 줄타기를 했다는 실화를 다룬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보물창고)’라는 그림책을 아이와 읽을 때의 이야기다.

왜 쌍둥이 빌딩이 폭발했냐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아이의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졌지만 적당하게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에 쉽게 설명해줄만한 자료를 찾아 헤맸던 기억이 있다.

9.11테러를 보는 눈이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한사람만의 광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갈등과 미국과 중동의 정치적 갈등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어 한쪽으로 치우쳐 해석한 뉴스가 아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뉴스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보너스처럼 나오는 쉬어가는 코너도 머리도 식히고 지식도 함께 쌓을 수 있어 좋다.

아이가 뉴스를 보며 “재미있어요?”라고 물을 때 옆에 앉혀 놓고 조근 조근 설명하며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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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아이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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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해 결혼을 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자식이다.

별 다른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 우리 부부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모든 시계가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임신입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좋아하던 커피도 멀리해야 했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자유롭지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밥을 먹다가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달려가야 했고, 자다가도 울음소리에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둘째를 낳았던 것 아이가 있어 얻은 게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생명이 있다는 게 무거운 짐이 되기도 했지만 웃는 것, 화내는 것, 우는 것 모두가 아이로부터 시작되니 아이는 나에게 세상의 전부고 작은 우주였다.


여기 한 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해 결혼을 하고 생활에 모든 것은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하고 아이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아이는 오지 않고 세상은 빛을 잃어간다.

부부는 아이가 아주 먼 곳에 사는 다른 가족의 품에 태어났다는 걸 알고  여왕님의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찾아간다.

가시투성이 고슴도치 아이는 엄마 아빠의 집으로 오지만 여전히 가시를 세우며 마음을 열지 못한다.

아이는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낳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는 물음에 “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단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너를 낳을 수 없었어.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엄마 대신 다른 엄마가 너를 낳아 주셨단다. 덕분에 네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거야. 아가야.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라는 답은 눈물이 핑 돌게 한다.


몇 해 전 사촌 오빠가 집안 어른들 앞에서 입양이야기를 꺼냈을 때 다 거두어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씀과 제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젊은 것들이 무슨 입양이냐고 모두들 반대했었다.

그때 오빠는 예쁜 딸 하나가 있었고 집안 어른들은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나온 말이라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빠네의 굳은 신념은 누구에 말도 끼어들 틈이 없었고 잘 생긴 아들을 데려왔었다.

가족이 모이면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고 웃었지만 맨 먼저 묻는 안부가 아들 안부였고 딸애와는 다른 눈빛으로 보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빠는 가족 모임에 한두 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아이가 말을 알아들을 무렵에는 거의 만나질 못했다.

내 아이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잘못된 아이라는 편견 때문에 우리가 무수한 고슴도치 아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내 아이들만으로도 인생이 벅차 다른 아이를 입양하는 일은 꿈도 꿔 본적 없다.

연예인들의 공개입양도 박수 받아 마땅한 좋은 일이지만 뒤에 뭔가가 숨은 잇속이 있을 것이라는 못된 생각도 했었다.

오랜만에 오빠와 통화를 했다.

언제나처럼 묻는 조카의 안부에 제 누나를 꼭 닮았다는 말과 아들에게 자신이 입양아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숨 섞인 이야기를 했다.

가슴으로 안은 내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입양아라는 꼬리표를 단 아이로만 비칠 것을 염려하는 오빠의 마음이 너무 절절해 가슴이 먹먹해 왔다.

내가 가진 다른 눈이 다른 가정에는 비수가 되어 꽂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책을 집어 들었다.

내 뱃속에 열 달 담아 낳은 내 자식만 소중했었다.

내 뱃속의 열 달보다 더 기다리고 준비하고 아이를 품은 입양아부모의 모습에서 존경심마저 일어났다.

그리고 시 한편을 가슴으로 읽어본다.


괜찮아

          한강 시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시도 때도 없이 울었던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화를 내던 내가 진정한 엄마가 됐던 건 ‘엄마 여기 있네, 괜찮아’라고 아이를 안았을 때였다.

처음부터 가시가 있어도 괜찮아라고 아이를 품었던 엄마에 말로 제대로 된 엄마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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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1-0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실제로 입양을 한 가족 분이 계셨군요.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그림책 보물창고 10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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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게 두렵다.

올해 야심 차게 시작한 일이 아이 학교의 ‘독서사랑회’ 모임이었다.

아이들 독서에 관심이 많은 모임의 엄마들은 나이도 비슷비슷했고, 아이들의 학년이 같은 엄마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매주 만나다시피 했던 엄마들이었지만 독서토론을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불안했고 토론회 자리에 가서는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나에게 1학기가 끝나갈 무렵 2학년 한 학급의 1시간 수업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고 난 1시간 수업을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었다.

그.런.데......그 날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난 그날 내가 들어간 아들반 아이들 앞에서 1시간 내내 버벅거리며 진땀을 흘렸다.

단지 그림책 한권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었는데....

그리고 결심했었다. 다시는, 다시는 앞에 나서지 않겠다고.


엄마를 닮아서인지 큰아이는 죽어도 나서는 걸 싫어한다.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재롱잔치에서도 신나하거나 열정적인 모습이 아닌 그저 시켜서 마지못해 따라하는 수준인 아들을 둔 엄마인지라 주인공이 되고 싶은 토미는 부러울 뿐이다.

전교생 앞에서 하는 유치부 학예회연극이 ‘피터 래빗’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토미는 제목을 듣는 순간 자신이 주인공에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한 토미는 선생님께 여러 번 지적을 받게 되고 그 벌로 대사 한마디 없는 여자 토끼 ‘맙시’역을 맡게 된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고 토미는 주인공 피터가 하는 대로 따라하기 시작한다.

모든 시선은 토미에게 쏠리고 주인공보다도 더 큰 박수를 받게 된다.

연극이 끝나고 엄마는 토미에게 ‘피터 래빗’의 주인공은 피터이지 맙시가 아니라며 선생님과 피터역을 맡은 조니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피터는 엄마 말씀대로 사과는 하지만 자신을 보며 즐거워했던 사람들과 박수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고 다시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


인생을 흔히 연극에 비유한다.

누구든 자신의 인생연극에서 엑스트라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환호와 함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고 싶어 한다.

엄마의 눈으로 읽은 토미의 이야기는 아이가 항상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나에게 한 박자 쉬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토미처럼 연극의 조연을 맡은 내 아이가 다른 배우의 박수를 다 빼앗을 만큼 무대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목에 힘이 들어가고 아이가 기특해 보이기만 할 것 같다.

그런데 토미엄마는 달랐다.

아이의 잘못이 무엇인지 집어주었고 사과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아이에게 꼭 주인공이 돼야한다는 강요가 아이에게는 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을뿐더러 조연도 나름의 위치가 있고 세상 삶들이 모두 주연으로 꽉 찰 수는 없다.

아이가 나중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고 실망하여 주저앉거나 아니면 비열한 방법으로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을 때 다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말은 토미 엄마가 토미에게 했던 이야기에 정답이 있지 않을 까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로 제대로 된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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