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초 신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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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동물들이 아이들에게 전부가 되기도 한다.

봄이면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에게 온 정성을 쏟기도 하고 시장에서 사온 나물속의 달팽이까지도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강아지 로쿠베가 깊고 컴컴한 구덩이에 빠졌다.

손전등을 가져와 비춰주기도 하고 바보라고 흉보다가도 “로쿠베, 힘내!”를 외치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자신들의 힘으로 구해내기가 어려워 집에 없는 아빠들을 대신에 엄마들을 불러오지만 엄마들도 선뜻 나서지 않고 아이들이 구덩이 속에 내려가는 것도 말리며 집으로 가버린다.

비겁하게.........

아이들은 노래도 불러주고 비눗방울도 불어 주지만 로쿠베는 꿈쩍도 안하고 한가하게 골프채를 흔들며 지나가던 아저씨는 “개라서 다행이지, 사람이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라는 말만 남기도 자리를 뜨고 만다.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던 아이들은 로쿠베의 여자 친구 쿠키를 바구니에 담아 구덩이에 내려 보내고 무사히 구출하게 된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그 뒤 여운은 길고 오래도록 남았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비겁한 어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여 아이들과 읽으며 구출된 로쿠베를 보며 마냥 기뻐하는 아이들 기분에 맞춰 방방 뛸 수만은 없었다.

어려움에 빠진 대상을 보면 마음 아프다는 핑계로 고개를 돌리고 못 본척했던 어른이었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일요일 아침 일찍 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남편을 깨우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시댁인 담양으로 출발했다.

나른한 봄 햇살에 들판엔 아지랑이가 아롱거리고 저절로 봄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그런 날씨였다.

아직 연둣빛 물이 아직 오르지 않았지만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나름의 운치를 내고 있었고 큰 나무 꼭대기에 자리 잡은 까치집은 훨씬 눈에 잘 띄었다.

2차로인 도로엔 봄나들이라도 나왔는지 꽤 많은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분위기에 취해 얼마나 갔을 까 뒷자리에 아이들은 아빠를 소리쳐 불렀고 우리는 깜짝 놀라 맞은 편 도로가로 눈길을 주었다.

거기엔 작은 새 두 마리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속도를 줄이고 자세히 보니 아마 한 마리가 날개를 다친 듯 파닥이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연신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뒤차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에 우리차도 다시 속력을 냈고 아이들은 그대로 보고만 지나치는 아빠에게 “아빠는 비겁해”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아이들에 반응에 난감해했고 ‘로쿠베’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었던 난 가슴이 뜨끔해졌다.

물론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아빠를 원망했고 남편은 아마 친구가 도와줘서 잘 날아갔을 거라고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본 작은 새 한 마리는 죽어있었고, 아이들에게는 한참을 지나서 날아갔나 보다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새를 처음 본 바로 그 순간 잠깐 차를 멈추고 길을 건너 새를 살폈더라면 한 생명을 구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이나 나나 찜찜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건 어른에게는 고민꺼리를 안겨준다.

내가 과연 잘 도와줄 수 있을까?

얼마큼 도와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까?

내 형편에 얼마나 오랫동안 도울 수 있을까?

돈과 시간이 없어서 또 도울 방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이웃들에 얼굴이 아른거렸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시민들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개의 공이 바닥에 쏟아버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실험자에게 처음에 쭈뼛거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누군가 공을 줍기 시작하자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 공을 주워주는 모습이었다.

사실 남을 돕는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개의 용기는 힘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안 되겠네“라는 엄마들에 말에 포기를 하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귀여운 로쿠베와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작은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점점 퇴색버린 나에게 진정한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를 귀히 여기는 마음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이 책을 읽어주면서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다. 찾아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그림책이 아닌 동화책으로 출간되었던 작품이었다.

예전에 한번 읽어보고 아이들에게 별 인기가 없어 책꽂이 신세를 지고 있는 책인데 이 책은 아이들 반응이 사뭇 다르다.

일학년인 둘째는 특히 친구들 이야기라고 좋아하고 그림도 쓱쓱 편하게 그려져 좋다.

그림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같은 이야기에 아이들의 반응이 다른 걸보며 역시 그림책의 위대함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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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록콩 2006-03-28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탱큐^^

아영엄마 2006-03-28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추천했어요. ^^
 
히포크라테스 의술을 과학으로 만들다 과학자 인터뷰 8
루카 노벨리 지음, 김은정 옮김, 서홍관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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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살았던 위인을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 까?

그 시대를 둘러보고 위인의 입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직접 듣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런 꿈같은 상상이 현실이 된 책이 바로 주니어김영사의 “과학자 인터뷰” 시리즈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쉽게 풀어써서, 재미있게 과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학자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놀라운 발견을 해 내고,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겪었던 일들과 오늘날에 끼친 영행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라는 시리즈소개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나 다윈, 갈릴레오 등을 만날 수 있다.


8번째 권으로 나온 히포크라테스 이야기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의학의 아버지”이자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주인공이다.

2천 5백 년 전의 고대 그리스의 의사인 히포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그의 어린시절을 비롯해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병이 걸리고 치유되는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에 의술을 미신이나 마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과학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그가 지금까지 진정한 명의로 추앙받는 이유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헌신적인 진료 자세와 환자의 지위고하나 재산이 있고 없음을 차별하지 않는 인술을 베풀었기 때문인 것이다.


위인전을 재미없어 하는 이유는 읽은 대상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서술되는 인물의 연대기을 풀어놓은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위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새로운 형식의 글과 더불어 신비한 약초들과 생태학 등 일상생활에 숨어 있는 유익한 정보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기에 덤으로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한 “의학 지망생을 위한 58가지 이야기”의 비밀 사전도 볼 만하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 중 몇몇은 자라서 진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부디 지금 읽은 “히포크라테스 의술을 과학으로 만들다”를 기억해내고 참 의사가 되기 바랄 뿐이다.

뭐 의사가 안 되더라도 인류를 사랑했던 그를 기억한다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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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 만세! 더불어 사는 지구 5
실비 지라르데 지음, 퓌그 로사도 그림, 이효숙 옮김, 강지원 감수 / 초록개구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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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알려주는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단 친절함이 넘치는 책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긴 하지만 설명하기 쉽지 않은 개념들을 재미있는 우화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으로 쉽고도 재미있게 설명해줍니다.

두 아이를 옆에 끼고 앉아 책 읽어주는 순간이 전쟁 같은 우리 집에 잠깐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시간이라 이 아름다운 지구에 함께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체를 위해 건배하는 검은빛과 흰빛의 곰 두 마리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보았지요.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와 국제연합이 만든 어린이 권리 헌장과 어린이 권리를 위한 단체들의 소개로 이루어진 책은 번역물임에도 불구하고 머리 노랗고 코 큰 제인이나 피터의 등장이 아닌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물들이 주인공이라 아이는 별 어려움 없이 내용을 받아들이더군요.


처음은 귀여운 병아리들을 통해 태어나 처음 만나는 사회인 가족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 태어나 처음 만나는 사회인 가족의 여러 형태와 사는 모습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더라도 아이가 태어나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을 통해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것을 아이 또한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서커스단의 코끼리와 생쥐이야기에서는 가족이 아닌 더 큰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예절과 서로 도우며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지요.

꿀꺽괴물들은 나무를 씹어서 걸쭉하게 만들어 내뱉었어요. 꿀꺽 괴물들은 그것으로 종이를 만들었어요.를 읽어 나갈 때의 꿀꺽괴물의 정체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 모습임을 알고 아이는 놀라는 듯했습니다.

숲을 삼키고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고 탐욕에 의해 점점 사라지는 생물들 이야기에서는 한숨을 폭 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어린 꿀꺽괴물들이 함께 나무를 심고, 숲을 깨끗이 치우고, 쓰레기를 주워 종류별로 모으고, 몸도 씻고 이빨도 닦는 모습을 보며 안도했지요.

이 책에서 가장 친절한 부분은 바로 원숭이들의 나라인 “우스꽝”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어려운 개념들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대통령을 뽑는 과정, 국무총리, 장관이 하는 일과 헌법이 필요한 이유와 행정 구역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다소 어려운 단어들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풀이해 주어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내용들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주었지요.

인간이면 누구든지 누려야할 권리를 정리한 ‘세계 인권 헌장’을 읽으며 지구촌 어딘가에서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학대 받고 심지어는 죽임까지 당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목소리를 맞춰 어린이 권리 헌장을 읽으면서는 어른인 내가 과연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눈 돌려 살폈던가하는 반성이 일기도 해 아이나 저나 숙연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길지 않은 내용의 그림책을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읽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책 내용에 귀 기우렸고 마주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질문과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조잘거렸습니다.

특히나 현대에 나타난 여러 형태의 가족이야기와 꿀꺽괴물편에서는 주변의 친구나 경험한 것들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더군요.

아빠, 엄마, 아이들로 이루어진 보편적인 가족이 아닌 한 부모가족이나 입양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다시 뒤돌아 봤던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가 더불어 사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저에게도 분리수거 철저, 세제 조그만 쓰기 등을 다짐 하게 했고요.

물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지구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여럿 꼽기도 했습니다.

말로만 떠드는 지구촌이 아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지구촌이야기는 내 주위의 작은 일뿐만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넓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층 어른스러운 눈빛이 된 아이는 이 얇은 그림책을 기억하며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가 아닌 세상에는 나만큼이나 소중한 다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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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읽혀주고 싶네요..
 
만화로 보는 중국 신화 9 - 마음이 착한 순
최창륵.갈휘 지음, 권영승 그림, 김택규 옮김 / 가나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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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중국 신화 9권’이 드·디·어 나왔다.

동북공정이네 뭐네 할 때면 싹 무시해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현실이기에 지피지기(知彼知己)하는 심정으로 중국의 신화를 읽기 시작했었다.

싫으나 좋으나 우리 문화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중국이기에 신화를 읽다보면 신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하지만 신화라는 게 워낙 인간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자칫하면 흥미를 잃기 십상인데 이번 편에서는 스승을 뛰어 넘는 신궁이 되고 싶은 ‘봉몽’의 이야기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의 음모에도 효성스러운 마음을 버리지 않는 ‘순’의 이야기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우리 신화 속에 등장하는 <강림도령>의 첫째 부인이 강림도령이 저승 가는 길을 도왔듯이 ‘순’의  두 부인도 ‘순’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도움을 주는 걸 보면 여성의 위대함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착한 걸 최고로 쳐주지 않는 세상이라지만 ‘순’을 보며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 다는 진리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단순한 신화의 소개에서 끝나지 않고 각 장마다 “중국 신 들여다보기”가 나와 신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고 비슷한 신들도 소개되어 신들에 대해 폭 넓게 알 수 있다.

또한 ‘신화로 배우는 중국’은 신화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들을 경험할 수도 있다.

서양의 신화는 줄줄 꿰고 있지만 동양의 신화는 우리가 속해 있는 지역이지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이번 기회에 중국 신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신화 읽기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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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재미있다! 우리 고전 12
정지아 글, 정성화 그림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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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춘향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건 판소리로 였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한명의 창자와 북을 치는 고수가 TV화면에 등장해 울기도 웃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하고 가만히 들어 보면 재미도 있어 그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흔하게 들을 수 있던 판소리는 차츰 명절에나 하는 특별 방송으로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그조차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중에서

가장 재미가 있었던 건 흥보가와 춘향가였다.

놀부가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다 차지하고는 동생 흥부를 쫓아냈는데 그 동생이 강남 갔던 제비에게 박 씨를 선물 받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화초장하나를 빼앗아오면서 부르던 소리는 지금도 슬며시 웃음을 나오게 한다.

하지만 그 재미있는 흥보가보다 더 재미있던 건 춘향전이었다.

남원 사는 퇴기 월매 딸 춘향과 사또의 자제인 이몽룡과의 사랑이야기는 절절하고도 안타까웠었다.

옥에 갇힌 춘향이 한양 간 이도령을 그리며 부르는 <쑥대머리>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쑥대머리 구신 형용, 적막옥방으 찬 자리요,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받으니,

    부모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구슬픈 가락에 춘향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어린 마음에도 짠함에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재미있다! 우리 고전>의 열두 번째 이야기인 ‘춘향전’은 어린이들에게 고전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조약한 애니메이션풍의 그림책으로 만났던 이야기를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그림과 판소리를 듣는 것 같은 대사위주의 문장도 재미있다.

어린이가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해학이나 비유가 과감하게 생략되어 아쉽기도 하지만 곳곳에서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들이 나와 눈길을 끈다.

특히 매 맞는 장면에서는 춘향의 입을 빌어 그 시대 여성들이 지켜야할 도리가 나열돼 있어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많이 소설로 쓰였고,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던 건 춘향전일 것이다.

춘향 역을 맡았던 배우는 최고 여배우가 되기도 했고, 근래에는 <쾌걸 춘향>이라는 적극적이고 당찬 현대적인 춘향이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조선 숙종 이후에 씌어진 고전소설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은 춘향전만의 특별한 재미와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작품속의 수없이 등장하는 테마가 사랑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이야기에 질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사랑에 큰 시련이 닥치고 주인공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랑이야말로 심금을 울려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춘향전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저 어린 춘향과 몽룡의 행복한 연애 담으로 끝나는 이야기였다면 이야기의 생명력은 지금처럼 길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다른 남자의 부인까지도 탐할 수 있는 무소불의의 권력을 쥐고 있는 탐관오리의 전형인 변사또를 혼쭐내는 것 또한 신분사회에서 억눌려 살았던 민중에게는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면서 새로 살이 붙고 조상의 염원까지 포함되어 있는 고전 읽기야말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조상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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