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재미있다! 우리 고전 12
정지아 글, 정성화 그림 / 창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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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춘향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건 판소리로 였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한명의 창자와 북을 치는 고수가 TV화면에 등장해 울기도 웃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하고 가만히 들어 보면 재미도 있어 그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흔하게 들을 수 있던 판소리는 차츰 명절에나 하는 특별 방송으로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그조차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중에서

가장 재미가 있었던 건 흥보가와 춘향가였다.

놀부가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다 차지하고는 동생 흥부를 쫓아냈는데 그 동생이 강남 갔던 제비에게 박 씨를 선물 받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화초장하나를 빼앗아오면서 부르던 소리는 지금도 슬며시 웃음을 나오게 한다.

하지만 그 재미있는 흥보가보다 더 재미있던 건 춘향전이었다.

남원 사는 퇴기 월매 딸 춘향과 사또의 자제인 이몽룡과의 사랑이야기는 절절하고도 안타까웠었다.

옥에 갇힌 춘향이 한양 간 이도령을 그리며 부르는 <쑥대머리>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쑥대머리 구신 형용, 적막옥방으 찬 자리요,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받으니,

    부모봉양,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구슬픈 가락에 춘향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어린 마음에도 짠함에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재미있다! 우리 고전>의 열두 번째 이야기인 ‘춘향전’은 어린이들에게 고전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조약한 애니메이션풍의 그림책으로 만났던 이야기를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그림과 판소리를 듣는 것 같은 대사위주의 문장도 재미있다.

어린이가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해학이나 비유가 과감하게 생략되어 아쉽기도 하지만 곳곳에서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들이 나와 눈길을 끈다.

특히 매 맞는 장면에서는 춘향의 입을 빌어 그 시대 여성들이 지켜야할 도리가 나열돼 있어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많이 소설로 쓰였고,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졌던 건 춘향전일 것이다.

춘향 역을 맡았던 배우는 최고 여배우가 되기도 했고, 근래에는 <쾌걸 춘향>이라는 적극적이고 당찬 현대적인 춘향이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조선 숙종 이후에 씌어진 고전소설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은 춘향전만의 특별한 재미와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작품속의 수없이 등장하는 테마가 사랑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이야기에 질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사랑에 큰 시련이 닥치고 주인공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랑이야말로 심금을 울려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춘향전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저 어린 춘향과 몽룡의 행복한 연애 담으로 끝나는 이야기였다면 이야기의 생명력은 지금처럼 길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다른 남자의 부인까지도 탐할 수 있는 무소불의의 권력을 쥐고 있는 탐관오리의 전형인 변사또를 혼쭐내는 것 또한 신분사회에서 억눌려 살았던 민중에게는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면서 새로 살이 붙고 조상의 염원까지 포함되어 있는 고전 읽기야말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조상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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