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최은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름 그림책을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 내가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좋은 책을 만나 볼 욕심으로 고른 책이기에 솔직히 차례를 보고 적지 않은 실망을 했다.

이미 집에 있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이 대부분이라 새로운 책을 만나지도 못할 것 같고, 지금도 꾸준히 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데 뭐 특별하게 건질게 있으랴하는 건방진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시 앞으로 넘어가 여는 글을 읽으며 글을 쓰신 분이 현직 초등학교 교사라는 사실과 반 아이들에게 직접 그림책을 읽어준 내용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국어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해 보려는 욕심으로 시작하셨다는 솔직한 말씀 뒤에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쏟아내는 마음속 이야기를 집어내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 기대감이 생겼다.


학원은 이곳저곳 안 보내도 책만큼은 신경 써서 읽힌다는 것 하나로 좋은 엄마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살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의 그림책 보여주기는 큰 충격이었다.

밤이면 두 아들 녀석 양옆에 눕히고 불편한 자세지만 행복하게 읽었는데 내가 했던 여러 행동들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지 반성하게 했다.

각자 한두 권씩 빼오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눈은 더 말똥말똥해지고 손은 자꾸 그림을 짚어가고 입은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대면 참지 못하고 책을 덮곤 했었다.

아이들은 근질거리는 손과 입을 가만두고 제 어미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잠이 드는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흡족해 했던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천천히 읽더라도 아이들이 그림을 보게 가만두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스물 몇 명 되는 아이들을 가까이 앉히고 봄부터 시작해 겨울까지의 한 학년 동안 그때그때 상황과 아이들의 변화에 따라 책을 고르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그리고 내가 아이들에게 수없이 읽어주면서도 놓쳤던 중요한 그림 속  숨은 그림과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이의 말을 믿지 못하는 나를 꾸짖는 책인 “지각대장 존”은 이미 우리 아이들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지만 아들들이 차마 나에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러하셨듯이 스스로에게 “나는 다시는 아이들 말을 의심하거나 내 눈높이로 아이들 마음을 재지 않겠습니다”라고 소리 내 읽어보게 했다.

그리고 무섭고 두려워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싶지 않았던 <가족 앨범>과 <슬픈 란돌린>을 읽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올해 일학년이 된 둘째는 큰 애보다 항상 아기 같아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선생님이 좋은 분일까 불안하기도 했다.

3월 내내 “우리들은 1학년” 책만 가지고 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은 책꽂이를 뒤져 책 한권을 빼들고 나와서는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이라고 자랑을 했다.

<나도 이제 1학년(시공주니어)>라는 책이었다.

아이들에게 꼭 맞는 책을 골라 읽어주신 선생님이라면 입학식 때 먼발치에서 뵌 모습에 대한 기억과 함께 알 수 없는 믿음이 밀려 왔다.

4월이 되었어도 선생님은 가끔이지만 그림책을 읽어주시고 집에서 읽은 책제목과 느낀 점을 한줄 씩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신다.

우리 아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이 눈에 그려져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붙잡고 맨 먼저 묻어보는 건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 둘째가 진정으로 복 받은 아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밤도 잠들기 전 들고 온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느라 보통 때의 잠드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많았다.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끊을 수가 없어 가만히 들어주다보니 어느 새 글자가 아닌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많이 읽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아이를 힘들게 했던 엄마가 아닌 천천히 마음으로 읽는 법을 배운 엄마로 책읽기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행복해 졌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oninara 2006-04-1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문기사에서 봤어요. 저도 아이들 책 안읽어주는데..다시 읽어줘야겠어요^^
 
지하철을 타고서 지원이와 병관이 1
고대영 지음, 김영진 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매는 노란 은행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좋은 가을날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 댁에 갑니다.

“야! 같이 가. 엄마가 누나 말 잘 들으라고 했잖아!” 누나 지원인 처음부터  동생인 병관이에게 엄마처럼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네요.

엄마 없이 단둘이 처음 타보는 지하철인데 시작부터 오늘 여정이 험난할 것 같지요?

강아지도 구경하고, 기다란 계단을 내려와 표를 끊고 개찰구를 빠져 나갑니다.

병관이가 표를 가지고 도망가다가는 잃어버릴 것만 같고,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지하철에서 병관이는 앞 못 보는 아저씨에게 자신의 차비를 드리기도 하는 예쁜 마음을 보여 주기도 하네요.

갈아탈 역에서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지만 바꿔 탄 지하철에서는 어느새 솔솔 잠이 들고 맙니다.

자고 있는 지원이를 아줌마가 깨워주고, 무사히 내릴 역에서 내리지만 역시나 병관이는 혼자서 쌩하니 할머니 댁으로 달려가 버립니다.   

 

신나기만 한 동생과  무사히 할머니 댁에 가야 하는 책임감에 제 나이보다 한껏 의젓한 누나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한 그림에 여러 번 웃음이 나왔습니다.

천방지축인 병관이도 환승역에서는 누나를 잃어버릴까봐 얌전하게 누나 손을 꼭 잡는 모습도 귀엽고, 지하철에서 잠깐 자는 꿈은 근사하기만 합니다.

지하철 안의 가지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구경도 즐겁기만 합니다.

내릴 역이 가까워 깨우는 누나의 조급한 마음도 모르고 병관이는 옆에 앉은 아저씨 팔에 기대여 세상모르고 자는 모습도 누나와는 대조적입니다.

거기다 얼른 깨어나지 않는 병관이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옆구리를 꼬집는 데 속도 모르는 동생은 불같이 화를 내네요.

지하철역을 빠져나온 병관이는 이제부터는 할머니 댁을 찾아갈 수 있는 모양입니다.

같이 가지는 누나 말은 무시한 채 혼자서 쌩 가더니 저 헌자 꾸역꾸역 전이며 새우튀김을 먹고 있네요.

“수고했다, 지원아, 동생 데리고 오느라고.” 엄마의 말 한마디에 이제까지 잘 참았던 속상함이 봇물처럼 터져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도록 울어버립니다.

누나 맘도 모르는 병관이를 냅다 걷어차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함께 웃게 됩니다.


우리 집 두 아들도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났어도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꼼꼼한 큰애와는 다르게 둘째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로 귀여운지 알고 누구라도 제 형 칭찬을 하면 자기도 꼭 칭찬을 들어야 하는 욕심쟁이에 고집도 쌔고 느긋하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학교 갈 때 면 빨리빨리 입에 달고 있는 엄마 속도 모르고 둘째는 밥도 천천히, 사과도 하나 더, 세수도 느릿느릿.....

할 수 없이 형이 먼저가고 나서고 서두를지를 모르지요.

학교가 끝나서 형은 오자마자 아침에 함께 등교하지 않은 동생이 지각을 했는지부터 묻지만 동생은 자구 딴소리만 해 형을 속상하게 합니다.

역시 형은 형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누나만 믿고 마음 놓고 행동하는 병관이와 혹시나 동생을 잃어버릴까 쩔쩔 매는 지원이는 우리 아이들 모습 그대로라 더 재미있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4-05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님 뭐해요?
홍진숙 지음, 김지윤 그림 / 여우고개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하는 일이 바로 책 읽어주기였습니다.

가끔은 귀찮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 못 드니 아이들이 예뻐 목 아픈 것쯤은

참고 즐거워 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작은 애를 위해 읽어주기는 하지만  예전의 열의가 잦아든 것도 같아 가끔 반성을 하게 되네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잠자리 책을 읽기시작한 건 큰애가 아주 어렸을 때였던 것 같은 데 그때는 대부분 번역물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많이 자라버렸는데 참 괜찮은 유아용 bed time book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린 “해님 뭐해요?”입니다.


몇 해 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영국의 어린이 프로가 있었죠?

바로 텔레토비라고.

그때 등장하던 아기얼굴의 해님을 떠오르게 하는 책입니다.

코발트블루의 전체적인 색상에 연두와 노랑이 섞인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는 발그레한 얼굴로 무슨 꿈을 꾸는 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해님과 반짝이는 별님 아래 잠든 오리가족의 그림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물감의 번지는 성질을 이용한 그림의 나른하고 포근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거기다 힘센 해님이 아닌 아기인 해님이라니 아장아장 걷는 아가 같아 살짝 깨물어주고 싶은 만큼 귀엽네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님에게 동물친구들이 따라가며 묻네요.

“해님 해님, 해님은 집에 가서 뭐해요?”

뽀독뽀독 세수하고

냠냠냠 밥 먹고

삭삭삭삭 이 닦고

홍알 홍알 책을 읽어요.

흉내 내는 말을 읽는 재미도 아주 좋습니다.

거기다 아하암 하품도 하고, 물 한 모금 꼴-깍 마시고, 꼬-자는 해님은 우리 아이들 모습입니다.


짧은 내용의 글이지만 그림 구경에 1학년 아이도 입이 헤 벌어지네요.

잠들기 전에 읽어주는 책이 좋은 건 행복한 꿈꾸는 걸 도와주고, 한글공부와 언어 발달 등 학습효과도 뛰어나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모든 건 덤으로 얻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꼼지락거리는 손을 꼭 잡고, 눈을 맞추며 읽어주는 책은 아이가 세상에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걸 느끼며 잠드는 것이니 그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입니다.


새 책이 생기면 의식처럼 하는 이름쓰기를 마친 작은 아들에게 위층 아기 있는 집에 선물하자고 했더니 입을 쭉 내미네요.

나중에 제 아들에게 줄 거라고 손도 못 대게 합니다.

아들이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쪼글쪼글 할머니가 되겠지만 그리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빠가 좋아했던 아빠 이름이 적혀 있는 책을 손자에게 읽어준다면 그게 바로 제가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이기에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단 치마
이형진 글 그림 / 느림보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아는 심청은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 품에서 동냥젖을 얻어먹으며 자란 효녀이다.

자라면서도 효성이 지극해 어려서는 남에 집에 밥을 빌어 먹고, 바느질이라도 할 나이가 돼서는 제 힘으로 아버지를 봉양한다.

물에 빠진 아버지를 몽운사 스님이 구해주게 되고, 공양미 삼백 석만 있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부처님께 덜컥 시주 약속을 하게 된다.

부처님과의 약속 때문에 전전긍긍 하는 아버지를 안타까워 하던 청이는 쌀 삼백 석에 장사꾼들에게 팔려가게 되고 종내는 왕비가 된다.

그 후 맹인 잔치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시주한 효력인지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되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입을 통해 들은 심청이는  천사 같은 맘씨를 가진 효녀였다.

하지만 속이들만큼 들어 읽은 심청전은 나를 답답하게 했다.

무능한 심봉사와 기약도 없는 약속에 제 목숨을 던지는 심청이 미련스럽기만 했다.

아무리 앞 못 보는 아버지라고 해도 15살꽃다운 나이의 딸이 장사꾼들을 따라 죽으러 가는 걸 막지 못하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미웠고, 아무리 부처님 전에 한 약속이더라도 그걸 지키겠다고 나서는 심청이도 바보스러웠다.

차라리 아버지와 힘들더라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진정 효녀가 아니가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된 후 15살 또 다른  모습의 청이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를 눈 뜨게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빛 고운 치마에 넋을 빼앗기고, 인당수 푸른 물에 단번에 뛰어들지 못하고 엄마를 찾는 모습은 효녀 심청이 아닌 인간 심청을 만날 수 있다.

모든 이가 떠받들고 우러러 보는 걸 즐거워하고,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에 행복해 하며 주인집 도련님께 연정을 품는  딱 그 나이의 소녀의 모습은 안타까움보다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연꽃아씨로 추앙 받으면서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불안해하고 아직도 눈 못 뜨고 비럭질 하는 아버지를 본 순간 자식이기에 느끼는 연민과 가난한 옛날로 돌아가는 게 두려워 자신이 진짜 연꽃아씨라고 혼자서 외치는 모습은 짠해지게 한다.

“못된 딸년은 이 늙은 아비를 버리고 죽어 버렸어요.” 아버지의 엉뚱한  말에 파르르 떨며 사실을 말하는 청이가 더 이상 사실을 숨기느라 괴로워하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귀한 연꽃 아씨가 아닌 눈 먼 거지의 딸로 밝혀진 이상 대감댁에서의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은 거라는 생각에 아버지와 고향으로 달려가는 청이 여전사와 닮아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기존의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이형진의 옛이야기 시리즈는  새로운 주인공을 만나는 기쁨을 전해준다.

전편의 <끝지>에서도 자신을 길러준 가족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여우누이에 사연을 단색의 그림으로 만천하에 공개하더니 이번엔 비단치마가 입고 싶어 장사꾼을 따라간 청이를 만나게 해 주었다.

앞으로 잘 알고 있는 옛이야기 속 어떤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할지 기대해 보며 지금쯤은 산비탈 밭에서 아버지와 농사지으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을 청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고골 원작 그림이 있는 책방 5
니꼴라이 고골 원작, 지빌 그래핀 쇤펠트 다시 씀, 겐나디 스피린 그림,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3월 25일, 페테르부르크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아침으로 먹을 빵 속에서 스스로 소령이라 불리기를 바라는 팔등관 코블료프의 코를 발견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이반은 코를 어딘가에 슬쩍 버릴 생각으로 거리를 헤매다가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코에 주인인 코블료프는 자신의 코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코는 자신보다 더 높은 관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아온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와 함께 읽으며 아이의 반응을 살펴봤다.

눈을 사로잡는 “겐나디 스피린”의 그림 속 러시아의 아름다운 거리와 건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기괴하고도 황당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아직은 이야기의 숨은 뜻을 찾는 것보다는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즐기는 아이는 빵 속에 들어있는 코와 또 사람처럼 제복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는 코, 어느 날 갑자기 코가 사라져 버린 코블료프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다행스럽게도 거짓말처럼 제자리를 찾아온 코에 안도하는 것이었다.


아이 덕분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170년 전의 러시아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집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힘없는 이 시대의 소시민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예고 없이 닥치는  불행처럼 코는 느닷없이 그에게 왔고, 아무 잘못도 이유도 없이 고기 한 조각 훔쳐 먹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고양이처럼 주눅 들어 사는 그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연민의 정이 생겼다.

또한 팔등관인 코블료프에게서는 우리 시대의 속물의 모습을 보았다.

결혼도 사랑이 먼저가 아닌 신부의 지참금을 먼저 생각하고, 당연히 자신의 일부인 코가 자신보다 더 높은 관등의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며 그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 또한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부조리한 경찰은 코를 찾아온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고 치료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의사는 돈에 눈이 멀어 알코올에 넣어 전시할 생각을 하기도 하는 모습도 낯설지가 않다.

거기다 사건을 부풀리고 재생산해 당사자의 고통은 무시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다.


학창 시절 책 좀 읽었다하는 사람치고 러시아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꺼운 양장본 책을 한손에 척 들고 다니면 얼마나 으쓱해지던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는  최고의 멋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많이 읽었던 톨스토이나 도스또예프스끼의 수많은 문학작품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다만 주인공들의 이름이 어찌나 길고 외우기 어려웠던지 수첩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줄줄이 적어 두었던 기억만 난다.

재미있어서 읽었던 작품들이 아닌 문학소녀라면 의무처럼 읽었던 책들이라 학교도서관에 책이 아닌 내 맘대로 골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는 고리타분하고 복잡하던 러시아 작가의 고전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니콜라이 고골의 <코>를 읽으며 겉멋이 잔뜩 들어 읽었던 러시아의 문학이 그리워졌다.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그림이 있는 이야기로 다시 쓴 글이니 당연히 원작이 궁금했고 세계문학전집속의 <코>를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고골의 단편집 속의 이야기들은 학창시절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게 다가왔다.

가엾은 어느 관청의 어느 관리 이야기를 다룬 <외투>를 읽으며 진정으로 원해서 읽는 책의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어린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탄생한 ‘코’ 아니었다면 난 ‘고골’을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바람이 있다면 내가 그림책 ‘코’를 읽고 고골의 작품을 찾아 읽었듯이 훗날 내 아이가 어린 시절 읽은 ‘코‘를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고골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거기다 부조리로 가득 찬 19세기의 러시아의 모습에서 어른이 된 아이의 현재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3-29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록콩 2006-03-2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