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골 원작 그림이 있는 책방 5
니꼴라이 고골 원작, 지빌 그래핀 쇤펠트 다시 씀, 겐나디 스피린 그림,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3월 25일, 페테르부르크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아침으로 먹을 빵 속에서 스스로 소령이라 불리기를 바라는 팔등관 코블료프의 코를 발견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이반은 코를 어딘가에 슬쩍 버릴 생각으로 거리를 헤매다가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코에 주인인 코블료프는 자신의 코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코는 자신보다 더 높은 관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아온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와 함께 읽으며 아이의 반응을 살펴봤다.

눈을 사로잡는 “겐나디 스피린”의 그림 속 러시아의 아름다운 거리와 건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기괴하고도 황당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아직은 이야기의 숨은 뜻을 찾는 것보다는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즐기는 아이는 빵 속에 들어있는 코와 또 사람처럼 제복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는 코, 어느 날 갑자기 코가 사라져 버린 코블료프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다행스럽게도 거짓말처럼 제자리를 찾아온 코에 안도하는 것이었다.


아이 덕분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170년 전의 러시아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집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힘없는 이 시대의 소시민의 모습을 그대로이다.

예고 없이 닥치는  불행처럼 코는 느닷없이 그에게 왔고, 아무 잘못도 이유도 없이 고기 한 조각 훔쳐 먹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고양이처럼 주눅 들어 사는 그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연민의 정이 생겼다.

또한 팔등관인 코블료프에게서는 우리 시대의 속물의 모습을 보았다.

결혼도 사랑이 먼저가 아닌 신부의 지참금을 먼저 생각하고, 당연히 자신의 일부인 코가 자신보다 더 높은 관등의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며 그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 또한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부조리한 경찰은 코를 찾아온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고 치료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의사는 돈에 눈이 멀어 알코올에 넣어 전시할 생각을 하기도 하는 모습도 낯설지가 않다.

거기다 사건을 부풀리고 재생산해 당사자의 고통은 무시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다.


학창 시절 책 좀 읽었다하는 사람치고 러시아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꺼운 양장본 책을 한손에 척 들고 다니면 얼마나 으쓱해지던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는  최고의 멋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많이 읽었던 톨스토이나 도스또예프스끼의 수많은 문학작품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다만 주인공들의 이름이 어찌나 길고 외우기 어려웠던지 수첩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줄줄이 적어 두었던 기억만 난다.

재미있어서 읽었던 작품들이 아닌 문학소녀라면 의무처럼 읽었던 책들이라 학교도서관에 책이 아닌 내 맘대로 골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는 고리타분하고 복잡하던 러시아 작가의 고전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니콜라이 고골의 <코>를 읽으며 겉멋이 잔뜩 들어 읽었던 러시아의 문학이 그리워졌다.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그림이 있는 이야기로 다시 쓴 글이니 당연히 원작이 궁금했고 세계문학전집속의 <코>를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고골의 단편집 속의 이야기들은 학창시절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게 다가왔다.

가엾은 어느 관청의 어느 관리 이야기를 다룬 <외투>를 읽으며 진정으로 원해서 읽는 책의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어린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탄생한 ‘코’ 아니었다면 난 ‘고골’을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바람이 있다면 내가 그림책 ‘코’를 읽고 고골의 작품을 찾아 읽었듯이 훗날 내 아이가 어린 시절 읽은 ‘코‘를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고골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거기다 부조리로 가득 찬 19세기의 러시아의 모습에서 어른이 된 아이의 현재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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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9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록콩 2006-03-2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