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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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비비언 고닉의 글. 이번 책은 글항아리 비비언 고닉 선집의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된 <끝나지 않은 일>이다. 노년의 비비언 고닉이 젊은 시절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문학을 다시 읽고 쓴 일종의 독서 에세이. 고닉의 글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지만, 특히 이번 책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처음 읽고 느꼈던 감동과 맞먹을 정도로 좋았다.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가? 우리는 문학으로부터 무엇을 발견하는가? 작가는 왜 문학을 집필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결국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로 수렴될 수 있으리라. 작가는 꼭 자기 자신만큼만 쓸 수 있고 독자는 꼭 자기 자신만큼만 읽을 수 있다. 고닉은 다시 읽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그로부터 훌쩍 성숙해진 시선으로 한층 더 깊게 작품을 읽어낸다.

문학을 읽을 때 독자는 행간에 무엇이 드러나있는지 무엇이 숨겨져있는지 감각적으로 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저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입장을 취하고있는지까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즉 문학 읽기는 저자와 등장인물과 독자의 일인삼각과도 같다. 고닉은 이 지점을 아주 기민하게 짚어낸다. 관련하여 고닉이 뒤라스의 <연인>에 대해 쓴 글들이 특히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 역시 뒤라스와 똑같은 집착에 구속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건 그가 성애의 망각에 평생을 바치고도 자유를 얻지 못했듯이 어른이 된 나의 앎도 나르시시스트적 상처에서 나를 해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닉 글의 매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듯하다. 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곧 타인과 세상을 향한 이해로까지 확장될테니. 그리고 문장마다 느껴지는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는 부분.

‘문학작품에는 일관성을 갈구하는 열망과 어설프고 미숙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비상한 시도가 각인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서 평화와 흥분, 안온과 위로를 얻는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르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11p)’

*판형, 표지 및 본문 디자인(폰트, 정렬, 여백), 번역 퀄리티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웠다. 글항아리에서 비비언 고닉 책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비비언 고닉 선생님 책 많이 써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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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 손웅정의 말
손웅정 지음 / 난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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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손웅정 감독의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와 마찬가지로 표지의 강렬한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던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자 손축구아카데미를 이끄는 손웅정 감독은 이제 그의 사진 한 장외에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상징이다.

이번 책은 난다 출판사의 김민정 시인과 손웅정 감독의 대담 혹은 일종의 인터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책에도 소개된 바 있는 저자의 독서노트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저자는 독서가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마음에 들어온 책은 세 번 읽고 독서노트에 주요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옮긴 뒤, 망설임 없이 버린다고. 자신의 삶을 견인하는 두 가지로 망설임 없이 독서와 축구를 꼽는 저자이기에, 독서 이야기는 곧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고 담백하지만 동시에 묵직하고 진지하다. 이 무게감을 아주 기민하게 덜어주면서 뜻밖의 방향으로 날려보내 결국 ‘아!’ 하는 깨달음을 건네주는 것이 바로 김민정 시인의 질문이다. 두 분의 합이 너무나 절묘해서 읽는 내내 감탄했다. 시인의 말 맛이 그야말로 이 책의 킥. 특히 마지막 마무리가 충격적일만큼 좋았다.

청소, 교육, 꿈.. 책 속에 실린 수많은 이야기들의 중심이 되는 것은 결국 독서다. 이 책, 그야말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매일 운동하며 내 몸을 살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일 독서하며 내 마음을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를 향한 의무라고 생각된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만드는 것은 매일매일 습관처럼 쌓아나가는 수행의 영역이다. 왜 아니겠는가. 저자가 말하듯,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고 우리는 그런 나를 잘 돌볼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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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중독과 저항, 새로운 정체성의 관문
김지윤 지음 / 사이드웨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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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화면없이 사는 세상은 불가능해졌다. 어떻게 하면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화면 속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N세대 아이들의 삶의 방식과 그들의 정체성 인식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화면친화적인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인식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게임 속에서 타인과 교류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검색엔진이 아닌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정보를 검색한다. 디지털에서의 삶은 오프라인에서의 삶만큼 실제적이다. 이는 N세대 뿐만 아니라 영영 디지털과 함께 살아가야만하는 현세대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가장 놀라웠던 건, 디지털 세상에서조차 사회적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내용이었다. 교육수준에 따라 디지털 속 라이프스타일을 조절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비롯해 가짜 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문해력의 정도의 차이가 심화된다고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면 속에서 얼마나 자기 중심를 유지할 수 있느냐, 화면을 얼마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느냐일텐데. 중독성이 짙은 디지털 세상에서 균형잡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런 상황에서 디지털 세상에서조차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건 모두가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요즘 나는 극단적인 디지털 디톡스가 올바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되, 스크린 타임 등 적당한 규제를 스스로 만들어두는 편이 앞으로도 수십년을 더 살아가야할 미래를 생각해볼때 더 유리하리라는 판단이다. 책 속 화면친화적인 삶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특히 좋은 힌트들을 얻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정답을 맞추는 능력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원하는 능력’,‘스스로 가치를 판단하고, 가치를 만들어가는 능력’,‘경이로움을 느끼고 배움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부분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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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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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 PATA
문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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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하루종일 이 책 얘기를 했다. 책이 너무 예뻐요, 내지 디자인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작은 구석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공이 들어간게 느껴져요, 저 문가영 배우 좋아했었나봐요, 사은품 가지고 싶은데 한 권만 더 살까봐요..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에 있는 <파타>. 매혹적인 책이다.

시를 제외하고는 분량이 짧은 글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첫장부터 ‘파타’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우고 있어서일까, 1부, 2부 구성과 내지 디자인 덕분일까. 솔직한 진심이기도 하고 일어난 사실이기도 하고 상상속 허구이기도 한 파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흥미로운 단막극 같았다. 분위기에 빨려들어가면서 읽었다. 적힌 내용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대 위 파타가 보여주는 춤을 그저 따라가면 되는 것. 언젠가는 파타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될테니. (‘경계인은 경계인을 알아보는 것.’)

✨ 문가영 배우가 직접 고른 ‘파타 플레이리스트’가 유튜브에 올라와있으니 함께 읽는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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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una 2024-03-1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문진과 함께 받았는데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분지의 두 여자
강영숙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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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으로 밀려드는 삶의 폭풍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 거대한 폭풍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니 그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삶이 삶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징후’가 집필의 동력이 되었다는, 소설 <분지의 두 여자>. 이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속절없이 삶의 폭풍을 맞아낸 이들이다.

소설은 크게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삼계탕집에서 하루종일 일하며 근근이 먹고살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한순간에 직장을 잃게된 여자 샤오, 지방의 대학 교수였으나 딸이 호숫가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이후 삶의 동력을 잃어바린 여자 진영, 그리고 어느 새벽 바구니에 담긴 아기를 발견한 청소 용역 업체 직원 민준. 이들 셋을 엮어주는 것은 바로 생명이다. 삶, 아기, 생명. 샤오는 금전적인 이유로, 진영은 딸의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무너지지만 두 사람 모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결국 생명을 선택한다. 다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바오 그것.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는 아이를 거두는 민준이 있다. 세 인물의 이야기가 모두 합쳐졌을 때 비로소 소설 속 이야기는 균형을 맞이한다.

건조한 문체, 어딘가 기이한 분위기, 모호하게 느껴지는 인물들의 선택들. 소설 속 인물들은 어쩐지 스스로의 의지와 달리 삶이라는 이상한 힘에 떠밀리는 듯하다. 이야기 내내 묘한 기류가 흐른다 싶었는데,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그제서야 이 소설의 의미를 납득했다. 삶이라는 폭풍에 떠밀리고 스러지면서도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내고, 발견해내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바로 그 생명조차 또다시 날아온 삶의 폭풍에 가냘프게 꺼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살아있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야말로 살아있기에 살아있지만 종내엔 스스로 삶의 의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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