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 자기만의 방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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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드롭박스에는 ‘보물창고’ 폴더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준 칭찬과 응원과 찬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캡쳐해 보관해둔 폴더다. 처음에는 힘들때 찾아보면 기운이 날 것 같아서 모아두기 시작했는데 막상 살펴보려니 부끄럽고 낯간지러워서 몇 번 열어보지 못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으면서 왜인지 나의 보물창고 폴더가 자꾸만 생각났다.



이 책은 기록하는 방법을 하나씩 소개하는 에세이다. 책을 읽다보면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세심하고 다정한 저자의 문장에 위로받게 된다. 기록 덕후인 나로서는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읽는 내내 들뜬 마음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록 방법과 아카이빙 방법도 알게되어서 당장 적용해볼 생각에 신나게 읽었다. ‘나를 기록하기’를 넘어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기’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는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했고. 이보다 친절하고 다정한 기록 에세이가 있을까 싶다.



기록해야지 마음만 먹고 작심삼일인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기록 예열을 시작해보시길 권한다. 챕터마다 기록 연습과 사진이 함께 실려있어 당장 기록을 시작해볼 수 있다. 일상에 치여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이라 읽을 책을 평소보다 까다롭게 고르고 있는데도 무척 좋았던 책이다. 좋은 문장들을 모아두는 문장수집은 이 책을 두고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오늘의 ㅎ은 바로 이 책. (그게 무엇인지는 읽어보시길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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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 기업인 박용만의 뼈와 살이 된 이야기들
박용만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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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통해서만 기업인을 접하게 되니 그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어느 기업의 회장이라고 하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으레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재빠르게 점령해버리는 식이다. 기업인이 책을 썼다고 하면 당연히 대필 작가가 쓴 자서전이겠지 하고 만다. 그런데 무려 마음산책에서 전 두산, 전 대한상의 회장직을 역임한 이의 산문집이 나왔다. 대필 자서전이려나? 아니다. 정형화된 글이려나? 아니다. 읽자마자 바로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 책 찐이야!’ 이 책에는 웃음도 눈물도 깨달음도 있다. 기업인 박용만의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읽는 내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는데‘ 싶다가,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싶다가, ‘이렇게 배우는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의 연속이었다. 결국 산문집의 매력은 저자 자신에게 있다. 저자의 글은 무엇보다 솔직하고 소탈하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냉면집에서 ‘나 두산 회장인데 지갑을 안가지고 왔다’며 양해를 구하고 지나가던 직원에게 돈을 빌려 계산했다는 일화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거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못참고 여러번 웃었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리더의 자리에서 겪은 일들을 마주하고는 저절로 허리를 바로 세우게 됐다. 일전에 어딘가에서 ‘리더가 가진 극강의 통찰력은 큰 조직을 이끄는 책임감에서 나온다’는 문장을 읽었다. 나로서는 글로나마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지만, 분명 리더라는 자리가 주는 남다른 배움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의전 등에 대한 의견도 솔직하고 가감없이 적혀있어 무척 큰 영감이 되었다. 더불어, 신입사원을 비롯해 후배 청년 세대를 향한 저자의 애정어린 마음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청년 세대가 나름의 열심을 살고 있다는 걸 이토록 적확하게 알아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어른이 가져야할 태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좋은 답이 되어준다. 스스로의 과오는 인정하고,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솔직하고 소탈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주저함이 없는 어른.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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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THICK - 여성, 인종, 아름다움, 자본주의에 관한 여덟 편의 글
트레시 맥밀런 코텀 지음, 김희정 옮김 / 위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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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청난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할까. 이런 책은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여성, 인종, 아름다움, 자본주의에 관한 여덟편의 글’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크 Thick>. 저자인 미국의 흑인 여성 사회학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은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문장으로 사회적 통념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 글 한 편 한 편이 걸작이다.

스스로의 사회적 위치에 의문을 던지며 시작되는 저자의 글은 흑인이자 여성인 독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공감할만하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출발하는 그의 이야기는 곧 그가 속한 사회, 더 나아가 미국 전체의 이야기가 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아름다움, 오바마 전 대통령과 ‘화이트니스’, 모든 유능함을 지워버리는 ‘블랙니스’ 등에 대해 주저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낸다. 그야말로 도발적이면서도 담백하고 대담하면서도 낙관적이다. 독창적이며 영리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자기 연민이나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고 이토록 밀도있는 글을 써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앞에 실린 세 편이 유독 좋았는데, 특히 ‘아름다움의 이름으로’를 으뜸으로 꼽고싶다. 자본주의에서 아름다움은 여성에게 유일하게 용인된 합법적인 자본인데, 이 아름다움은 백인 여성만을 위한 개념이라는 것이 이 글의 골자다. 저자는 반대 의견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자신의 논지를 이어가는데 중간중간에 사용된 표현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 글의 말미에 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도 하고, 추하니까 추해 보인다고도 한다. 둘 다 거짓말이다. 추함은 아름다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해진 모든 것이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여정의 일부다.’(88p)

추천사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필독과 필사를 권한다’고 썼다. 뉴욕 타임즈는 이 책을 두고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될 것이다’라고 평했다. 나 또한 위의 평들에 망설임없이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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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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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빠져들만한 소설을 찾고 있던 내게 딱 걸린 책. ‘우주 생존 스릴러‘라는 말에 혹했고, 주인공이 여성 사령관이라는 말에 끌렸고, 아름다운 표지에 완전히 넘어갔다. 바로 소설 <갤럭시> 이야기다. 유로파 탐사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메이가 험난한 여정을 거쳐 지구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다. 광활한 우주에 홀로 떨어져 고독을 인내하는 메이의 모습이 남일같지 않았던데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위기상황이 어찌나 쫄깃한지 제법 두툼한 책인데도 굉장히 빠르게 읽었다. 우주, 여성, 생존 스릴러 - 이 세가지 키워드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분명 이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소설은 탐사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주인공 메이가 의무실에서 홀로 깨어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메이는 인공지능 이브의 도움을 받아 본연의 굳은 의지를 회복해나간다. 사실 메이는 모든 면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인물이다. 과거 지구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 겹쳐질수록 그의 미숙한 면 또한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만 메이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인물이라는 점, 특유의 정신력으로 자신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점이 결국에는 그의 편이 될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 모든 재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심을 통제하는데 성공한 한 여성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계‘다. 그중에서도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중있게 다뤄지는 것은 메이와 남편이자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과의 관계다. 탐사 전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았던 그들의 관계는 메이가 처한 재난 상황과 단기기억상실의 영향으로 다시금 재정립된다. 가늠할수도 없이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비로소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어쩐지 뭉클하다. 이렇게 보면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가장 소중한 관계‘에 대해, 그것이 주는 유일무이한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메이와 인공지능 이브의 관계도 무척 흥미롭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우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메이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어준 이브라는 이름 덕에 그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렇듯 단순히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있게 생각해볼만한 지점들이 많은 소설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소설 속 묘사가 굉장히 생생해서 마치 영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소설 속 장면들이 그려진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제 끝인가보다‘하면 바로 다음 사건이 시작된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 그런 의미에서 <그래비티>와 <마션>의 팬이라면, <승리호>의 선장 캐릭터에 빠진 이들이라면 이 소설도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나는 이 소설이 흑인 여성이라는 악조건을 딛고 사령관이 된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 대해서 구구절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만 줄이며, 이 멋진 이야기를 직접 읽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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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 무례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 낸 여성의 자전 에세이
게일 캘드웰 지음, 이윤정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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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 돌아갈까>(캐롤라인 냅과의 우정을 그린 회고록)로 인상깊게 기억하고있는 게일 캘드웰의 최근작. 제목은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이다. 저자의 네번째 회고록이지만 국내에는 두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인지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웃 소녀 타일러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삶과 그를 구원해준 페미니즘의 영향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이다.

70대의 게일 캘드웰이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는 언뜻 빛바랜듯 희미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저자 본인이 치열한 방황과 아픔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그 시기를 평온하게 되돌아볼 수 있을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다. 온화하고 다정한 그의 문장은 오히려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그는 불안정했던 젊은 시절 마주했던 수많은 사건들, 미성숙한 결정들, 돌이킬 수 없는 과오들을 포장하지 않고 덤덤히 풀어놓는다. 그의 문장은 과거의 자신을 토닥이는 손짓같기도 하다. ‘슬프지만 손쓸 수 없다. 그녀가 살아 내서 다행이고, 살아 내지 못할 만큼 혼란스러워 했던 것에 안쓰러움을 느낀다.’(120p)

게일 캘드웰의 글은 깜빡거리는 스냅사진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대학원에서 도망치던 날, 퓰리처상을 받고 홀로 자축하던 순간, 낙태를 하기 위해 멕시코로 향했던 어느 밤, 캐롤라인 냅과의 만남..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탓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올곧다. 특히 문장마다 스며든 그 사려깊음에 예기치 못한 감동이 있었다. 아마도 이 책과 같은 회고록은 자기 자신을 용서한 사람만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내던져버리고 싶을만큼 격렬한 불안에 시달리는 지금의 나를 수십년 후의 내가 다정히 회고하리라 생각해보면 굳은 표정을 살포시 풀게 된다. ‘살아오면서, 지나온 것들보다는 앞에 놓인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256p)는 그의 말을 그대로 읊조릴 미래의 나를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지극히 공감했던 문장.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잘 안다. 여성운동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찾게 해줬다. 여성운동이 빠진 나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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