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의 저편 이판사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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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애 소설 작가 마쓰 유메이,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한 통의 파란색 봉투가 배달됐습니다. 소설가들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늘 파란색 봉투에 갖가지 사연을 보내오던 이웃 때문에 이사까지 오게 됐는데, 또다시 그 보기도 싫은 봉투가 배달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 마쓰 유메이는 그저 그걸 무시, 아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날도 짜증스럽게 그 봉투를 연 순간, 어쩌면 판도라가 된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장난이기도 한 것 같은 것이 들어있었으니까 말입니다. 바로, "소환장" 그것도 들어보지도 못한 문예윤리위원회라는 곳에서의 말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시를 하기엔 너무나 마음에 걸려 간 곳은 마치, 푸른 수염의 아내가 된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과연 저 계단 밑,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모르면서 내려갔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녀가 가지 말라는 곳을 간 것과 마쓰는 오라고 해서 간 곳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 지하 플랫폼에 한 발짝 내려놓으면서 시작됩니다. 왜냐면, 주위의 많은 작가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뚜렷하게 좋은 소설을 쓴다고도 생각지 않았으나,

그곳에서는 방침 혹은 사상은 과연 여기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고, 2020년이 넘은 지금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곳이었습니다.그곳을 "교육"을 빙자하면서 "수용소"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결코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 적응되는 작품을 써라. 그것이 좋은 작품이다.

처음, 이 말에 그녀 마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걸 누가 강제할 권리가 있죠? 펜을 떠난 후,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고 그들의 것입니다.

하지만,

마쓰가 진실로 그렇게 생각했던가요? 아뇨,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독자이면서 이웃인 파란 봉투를 피해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다만, 그녀에게 자유가 다 뺏어긴 지금은 그 생각이 절실해진 것입니다. 내 작품들이 어째서..?라고 말입니다.

자유란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것도 내 자유로의 글 쓸 자유를.

인터넷의 쓰레기 같은 글들부터 시작해 명작으로 불리는 글까지 읽히고 쓰고, 그리고 팔리는 지금 이 세상에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처음엔 몰랐고,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그다음 다가오는 것은 나간다 한들 또 그들이 찾아와 이 상황이 되풀이돼, 영영 끝나지 않을까 봐서,입니다.그게 바로, 자유를 앗아가는 일인 것입니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하는 건, 마쓰도 그리고 거기 온 작가들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말입니다.



_ 그래서, 당신의 소설은 좋은 소설입니까? 혹은 그렇지 못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기리노 자신에게도 하는 것을 우리는 또 압니다. 모든 글이 다 좋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그 가치가 높은 것도 아니고 또 재미없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그건, 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엔터테이먼트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좋은 문화를 즐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문화가 과연 좋은 문화인지, 나쁜 문화인지 무엇으로 결정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일이 정말로, 없었던가요.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요.



화려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분명,

암흑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명, 그 소설 속에서 수용소의 사람들의 말처럼 작가들은 "잘난 척하는 혐오, 차별주의자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랬다고 한들

그 누구도 그들에게 자유를 앗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건,

"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 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본문 317p

당신의 소설은 좋은 소설이냐,의 질문에

그녀가 자문자답처럼 써 내려간 답은 저것일 겁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그 답들은 어쩌면 다 알면서 획일화돼 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가 하면, 아뇨, 여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어딘가 섬뜩하면서도 <일몰의 저편>은 우리에게 주는 의외의 묵직성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하드보일드를 남성보다 더 강하게 써온 기리노 나쓰오의 선명한 메시지이면서 경고처럼 들렸습니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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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 스토리콜렉터 97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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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리는, 참 많은 것을 봅니다. 아픈 사람부터 웃는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누군가의 걱정이 누군가에겐 기쁨이 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말입니다.

거리는, 그럼에도 그 불빛과 함께, 보여주는 것은 바로 쓰레기통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범한 우리들부터 정말 쓰레기라 불리는 그런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이 책 <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은 연작 형식입니다. 단편들로서도 괜찮았고, 분명 아무 연결고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향해 가고 있는 그 거리에, 부스지마 형사가 그의 특유의 웃음소리인지 조소인지를 내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고, 마지막 다섯 번째 챕터에서 모든 것은 밝혀집니다.

*스포일 수 있습니다. 읽으실 분은 나중에 요약만 읽어보시길요. 스피사인 저로서는 조금의 스포도 용납을..




경시청.

엘리트들만 들어간다는 그곳에서 독설가로서 유명하지만 그의 명석한 두뇌로 최고의 검거율까지 자랑하고 있으니, 꽤 출세에 욕심을 내볼 만도 한데, 형사 부스지마는 전혀 관심이 없고 타인에게 오차도 관심이 없는 얼핏 보기엔 형사보단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범인 같은 사람...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세에 관심 없다, 독설가다, 검거율을 최고다, 이 모든 것들이 그를 아직 그 자리 "형사"로 머물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초반, 사건은

경시청이 엘리트들이 있는 곳이라면 사회에서 엘리트들의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사건의 공통점은 그저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라는 것. 그런데 왜?에서 범인이 검거됐을 때, 그가 갈망하던 것들은 사소하지만 또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스 지마갈 느낀 위화감은 바로 누군가 "조정"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들 속 등장하는 이름, "교수"였습니다.




"네 이른바 완전범죄라는 거죠.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하지만 (.....) 일방적으로 총이나 폭탄 지식을 얘기할 뿐 실행을 권하지 않아. 더구나 상대는 이성적인 상태로 "교수"의 말을 듣고 있을 분이야. 결과적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란 상당히 곤란하지 않을까 싶은데. "교수"가 범죄의 비읍자도 꺼내지 않았다면 담당 검사는 법정에서 망신만 당해" 본문 157p, 부스지마, 아소에게.

완전범죄.

범죄자라면 한 번쯤은 꿈꾸는 그런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은 남을 컨트롤합니다. 요샛말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거죠.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그 자신은 그저 슬쩍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욕구를 비틀어낼 뿐, 인 것이었습니다. 그들 밑바닥 속, 진짜 숨어있는 혹은 꿈틀거리는 욕망을 말이죠. 어쩌면 여기까지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사건은 글쎄요. 그저 "실험"을 한 것일 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요. 부스지마가 용서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_ 그럴 수도.

남의 욕망을 헤집고 그걸로 범죄를 저지르고_ 그럴 수도.

하지만, 마지막은 예외인 케이스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건 인간이 인간으로 보지 않았단 것, 자신도 그런 류의 사람이라면서 스스로를 조소 하는 듯 하지만, 선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걸 훌쩍 넘었기에 부스지마도 넘어 버렸습니다. 그와의 두뇌 게임 따위, 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프리퀄인 셈입니다. 저는 작가 형사 부스지마를 읽었는데,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이른바 안락 탐정이랄까요?- 의외로 나카야마 시치리의 무거운 사회파 소설들도 좋았지만 살짝 가벼운 듯한 그 후훗, 후후후훗..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게임 클리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작가 형사가 언제쯤 나오나 했는데 소식이 없어서 궁금해했는데 그 프리퀄로 그가 왜, 작가 형사가 되었는지가 나오게 돼... 라기보단 그의 웃음소리와 여전히 건방진 매력이랄까요? 가 좋았습니다. 사실, 부스지마의 독설이라고 해선 전 엄청 기대했다가........ 너무 순한 맛이잖아...?이게 무슨 독설이야?라고 했습니다. 다 맞는 말인데?라는 느낌이어선, 그가 안하무인도 독설도 조금 순해, 순해 좀 더 강하게 부스지마! 라고 했었는데 역시, 이번 <형사 부스지마>에서도 순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

굳이, 이 작품은

연달아 보시려고 하지 않아도 단편선이기에 아무 사건을 그냥 펼쳐 보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편인 <자업자득>과 <간녕사지>는 순서대로 읽어보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분명 가을인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가 아니라, 날씨가 기묘합니다. 그럴 때, 부스지마를 만나 보세요. 저는, 이 부스지마의 말이 달콤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또 그 안에 케이크에서 블루베리로 발견하고, 조금 쓴 에스프레소일 수도 있습니다(제게는 라테더라고요?! 귀여운 부스지마^^;;)

그러나, 마지막

그 역시, 선을 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그의 시리즈가 저는 계속 나와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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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 친구
사와무라 이치 지음, 오민혜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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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에나 괴담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나이 또래의 감수성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나 괴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그것은 극한의 공포로 찾아옵니다 특히나 목숨이 걸린 일 이상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것을 내놓아야 할 때, 망설입니다. 이 학교 요쓰카도 고등학교엔 그런 괴담으로만 전해져 오는 것이 있습니다.

_유어 프렌드.

친구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겐 바꿀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고, 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소중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단어, "유어 프렌드"를 말하면서 공포에 질려 합니다. 당신의 친구, 참으로 묘한 단어입니다. 나의 친구도 아니고, 너의 친구란 단어는 확실히요.





성적도 최상위, 그리고 미모까지 최상위인 하무라 사라사.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녀가 아무런 징조도 없이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정확히는 죽음으로요. 자살을 했습니다. 어쩌면 알 수 없는 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넘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무라만 그랬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엔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누군가가 시기를 해 그녀를 저주해서 죽었다는 소문이 말입니다. 사라사에 대해선 완벽하지만 조금은 당돌하기도 하단 기억이 고타니 마이카에겐 남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상한 순간에, 또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실에서 가장 예뻤던 여학생이 자살하고 얼굴에 기묘한 상처를 입었다.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에서 잇달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본문 60p

그 기묘한 상처란 너무나 보기 흉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라 다음의 타깃이 될 것 같은 학생들은 스스로 떨고도 있었고, 그리고 누군가는 아마도 웃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차밍

매력. 그 말에 숨어있는 뜻은 또한 주문, 주술, 마법.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말로만 내려오는 저주가 마법이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너의 아름다운 얼굴은, 나의 추한 얼굴을 더 도드라지게 하기에 말이죠. 그리고 그것은 평범한 생활을 하던 아이들에겐 더더욱 공포로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주술의 공포. 추하게 변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이보다 더 상처 입는 것에 대한 공포.

평범함에서 멀어지는 공포.

본문 121p, 게이

그렇게 소설은, 대놓고 말합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요. 시점 자체는 1인칭과 3인칭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누군가의 추함이 내게 짜릿한 쾌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미묘한 불쾌감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사와무라 이치는 그렇게 "불쾌함 속, 혹은 호러 속 그 무엇"을 보게 합니다. #보기왕 때도 그랬지만 상당한 가독성을 나타내지만 개인적으로는 중후반에 조금 제자리걸음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만, 그 지점을 또 매력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일본의 미모에 대한 평가는, 우리나라 보다 더 심하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을 적나라하게 작가는 드러냅니다.





아이들이 어째서, 왜, 생김으로 그리 상처받는가?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깟 외모에 대한 것 눈 감아 버리면 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그게 바로 외모만이 아니라, "어울림"의 기준이란 것을요. 어울릴 수 있는 외모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성적 순으로 매겨지는 것은 차라리 노력이란 것이 있지만 외모는 내가 어찌할 영역이 아닌데 그것으로 매겨지는 것들,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한 말이, 그저 그 말은 악의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상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에서 상처받으면서도 아닌 것처럼 단단한 것처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것을 이와무라 이치는 호러란 것과 미스터리를 섞어선 가 절대 가볍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보기왕 때부터 작가는 "심리적"인 요소를 더 잘 다루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 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친구 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뿐만은 아닙니다. 그는, 좀 더 나아가 보라고 한 발짝, 더 뛰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어떻습니까 아름답습니까? 혹은 그 반대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떤 친구인가요 혹시 이렇진 않은가,라고 말입니다.

멸시하면서도 원하고 있다. 가까이하긴 싫어도, 지켜보면서 즐기고는 싶은 것이다. 추한 인간을. 추하게 무너져가는 인간을. 자기가 다음 표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계속 구경꾼으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본문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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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 - 희곡으로 만나는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정중헌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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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경자. 이 이름은 들어는 봤지만 그런 화가가 있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봤을 때, 느낀 건 슬프다..였습니다. 그 후, 더욱 그 이름이 알려진 건, 바로 위작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잊혀져 갈 때쯤, 다시 그녀가 바랐던 사막, 그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는 8월 세상을 떠났단 뉴스만 듣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다시 책으로 만났습니다. 처음 그녀의 작품을 봤을 때 기묘하게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웃고 있지 않았다고 그날 적었었고 그건 지금 다시 책으로 본 그림에서도 그랬나 싶으면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제가 본 그림은,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이런 그림이 주였습니다. 웃지 않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꽃으로 둘러싸인 여름이되 겨울의 여인을 보고 있었습니다. 꽃의 화관을 쓰고, 또 꽃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웃지 않는 여인이었으며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서글픈 여인들을 만났었습니다. 책으로 보면 조금 웃는 느낌인데 그림으로 만났을 땐 처연한 느낌이 왜 들었을까요? 그림이란 게 그날의 기분을 말해주기도 하는데 그날의 저는 그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녀들은 웃지 않는가, 라면서요. 색채의 화려함으로 그녀들의 우수를 가리고 있다고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 같지가 않음은 그녀가 말했듯, 사막의 여왕이라면 아마도 이런 피부 아닐까, 싶었고

꽃의 화관과 만났지만 왜 그리 기뻐 보이지 않는지, 싶으니

"그 순간 슬픔이 괴어 와 저는 그대로 내 슬픈 눈망울만 내놓은 채 사막을 달리고 싶었어요. 지구에서 하염없이 짓밟혀 온 콩알만도 못한 존재의 의식 때문에 스스로가 가엾어진 것이지요"(본문 107p)

어쩌면 그런 것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을 제가 그냥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녀가 거부하는 것과 만나고 싶은 것들을 말입니다



환상여행

제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미묘한 몽롱함과 함게 어쩌면 여기에 그녀가 다 들어있는 느낌이라서일까요..?그녀가 남편과 생사를 확인할 길 없어지고 만난 남자는 왜 이런 사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천경자의 자존감은 아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아주 살 길이 없어 그와 함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너무 사랑해서도 아닌데 어째서 그런 사랑을 택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또 부인까지 있었으니 도대체 왜, 싶었을 정도였지만 그것 역시 그녀의 모습의 한 페이지로 인정한다 해도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혹은 그때의 아픔들이 그녀의 그림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생태

하나는 생태, 라는 그림으로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저 그림으로 천경자라는 이름을 알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면 어떨가 싶었습니다. 제가 본 그림들은 거의가 다 그 옆에 있는 것과 같은 여인들의 그림이었기에 이 "생태"란 그림을 보면 정말 그 꿈틀거리는 것과 같은 그 무엇가가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책과 실제 그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걸 직접 보지 않으면 이게 뭐야, 하게 되기도 하고 왜 그 그림들을 그렇게까지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있는가?할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 그림을 한 번 보고 싶긴 합니다.

꿈들거리는 뱀이 여러마리,

그 당시 저 그림은 파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녀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을테고요. 그러나 그녀에게 김상호를 제외하고도 꽃길만 있던 건 아니었죠.

꽃에 대해선, 작가인 기자는 이리 말합니다.

"꽃은 그 자체가 색체의 파티입니다. 회화적 요소로 최고라며, 꽃을 통해 계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생의 기쁨이나 죽음을 상징하기에 천경자의 인물화에는 꽃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유독 많다(본문 187p)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생명, 그 땅을 기어다니는 뱀, 그리고 그 엉킴이 우리와 같지 않을까 싶어, <생태>는 한 번 꼭 언젠가라도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책은, 천경자에 대한 설명과 그림보다 "희곡" 형식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 기자와 천경자 그 둘의 대화여선 차라리 모노드라마로 했더라면, 싶었는데 아무도 묻지 않은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보단, 누군가가 묻고 또 그에 대해 답하는 형식이 글의 초반에 있듯, 희곡의 정석으로 보긴 어렵지만, 순수한 그녀의 삶을 그대로 기리기 위함, 그대로 알리기 위함에 가장 진실하고 싶어서 굳이 이 희곡 형식을 택했다고 했습니다.

챕터는 네 챕터로 나뉘어 있었고,

가장 길면서도 또 가장 슬픈면서도 화가로서의 시작인 이 책의 표제처럼 쓰인 "천경자, 그 슬픈 전설의 91페이지"였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지만 그 후, 그녀의 그림 이야기로 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술술 말하면서도 또 자신의 그림이 "일본화" 같다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하지만 그녀가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 결국 내 그림인 것이죠.



그림을 잘 그려내던 그녀는,

글도 잘 쓰더군요 모든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또 잘하기도 하지만, 내 작품에 시적으로 말하기 서툰 사람들도 많은데, 천경자 화백은 시인처럼, 또 에세이인 듯, 뒤에 그녀의 에세이를 보면서 이런 감성이 그녀의 그림을 그리게 만들고 붓을 들게 했구나, 싶었습니다. 아마 그녀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도 글을 쓰거나, 다른 예술 계통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위작.

대표작을 기증하고 저작권까지 환원한 최초의 작가인 그녀에겐 나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경자 화백이 사랑한 그림, 그것들은 우리 곁에서 그녀의 생을,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남겨놓았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천경자

#스타북스

#컬처볼륨

#컬처볼륨리뷰단

#정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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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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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아니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동안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건 사실, 여자들이 외모에 더 관심이 많아서 부각됐을 뿐, 남자들도 동안이란 소리에 좋아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면서 말합니다.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오늘 이 책의 주인공인 오지 하나는 말합니다. 아니라고요. 그 스스로 얼마나 "젊음"을 포기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또래보다 열 살이나 어려 보입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이를 듣고 놀랍니다. 거의 열 살은 어리게 보이니까요. 그녀의 나이, 일흔여덟.

그 나이에도 동안이 있는가 하면, 존재하겠죠. 분명. 그런 그녀가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사는 일품점으로 시집왔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이와조와 결혼하고 한동안은 괜찮았으나 시대의 흐름상 거대 마트, 24시간 편의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편이 포기할 때, 그녀는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저 남들에게 "보이는" 부잣집에서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살아서 곱디곱게... 가 아니란 거죠. 자전거를 타고 비 오는 날 구르기까지 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말입니다.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왔고, 이제는

남들보다 더, 외면도 꾸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가끔은 내 게으름의 핑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외면은 그 사람의 내면도 나타나기도 하니까요.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오지 하나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아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뜻밖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저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찾아올 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 둘째치고 한 통의 문서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발칵 뒤집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껏 자신의 인생은 뭐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흔여덟을 살아오면서 가장 위기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보통의 우리라면 분노 그리고 또 분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달랐습니다. 오지 하나는 그런 순간들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필요한 건 또한 가족이었습니다

이야기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과 또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우리를 몰아가면서 오지 하나에게 이입하게 합니다. 그녀는 왜 이토록일까, 싶으면 읽다 보면 어느새 끄덕이면서 그녀의 말이 옳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다 옳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앞날이 없으니까, 곧 죽을 거니까, 바로 그래서 "어리석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다. 곧 죽을 거니까 끝까지 위장하고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알고는 있다. (본문 285p)

 

이야기의 전반부는, 웃음이 나면서도 하나에게 조금 덜 이입됐다면, 특히 며느리인 유미의 옷차림들을 속으로(속으로 하니 다행이란 생각도..)하면서 한 명은 겉으로 허세를, 한 명은 화가란 것에 허세를 부리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진짜 허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하나의 큰 사건은 우리가 또 하나를 조금 이해하게 할 때쯤이었습니다. 여기선 되려 신파면서도 슬펐는데, 그 후,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선상에서 오지 하나가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편안함...에이스) 의연한 모습을 모여주는가 하면, 또 손주들이 그녀에게 아주 큰 위안을 줍니다. 그깟 거, 하면서 다가와 주는 가족의 손길의 묘한 따뜻함이랄까요..? 유미와는 여전히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래도..구나, 싶었습니다.

제 경우는, 이 이야기의 가독성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초반의 하나가 조금 제게도 너무 이렇게까지 해야.. 하고 다가온다면, 중반부부터의 그녀는 여전히 멋있지만,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후반부쯤, 저는 오지 하나가 아마도, 이 작가 우치다테 마키코의 이야기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나이가 지금 일흔셋이니까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을 수 있는 그런 날들을 어떻게 멋지게 보낼까,라면서 말입니다.

 

 

네, 하나의 나이는 작가보다 많은 일흔여덟. 그럼에도, 그녀는 오늘도 의연하지만 아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 하루하루를 그리 살았기에 그녀가 멋있고, 남들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려 보였던 것일 겁니다. 여자들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아니오, 그런 이야기 아닙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령 연령자인 오지 하나의 그 삶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그녀가 아름다운 건, 또 그 연륜 속에서 묻어 나오는 그녀만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혹은, 그저 재미로만 읽어도 괜찮았던 소설, 살벌한 제목의 <곧 죽을 거니까>였습니다. 죽일 거니까, 보다 낫잖아, 하고 시작해 보셔도좋을 것 같습니다.

 

잘난 척하는 '지식인'들이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종종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젊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희망을 잃은 사람은 부쩍 늙는 거죠?"라고 말한다. 이런 번드르르한 말은 늘 듣기도 싫었는데 지금은 알겠다. 옳은 말이다.

다들 눈물주에 기분 좋게 취했다.(본문 37p)

그리고, 하나 씨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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