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철학 공부 EBS 30일 인문학 1
윤주연 지음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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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단어는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똥철학. 이 말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말이, 그럴싸할 때도 혹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에도 붙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왜인가 싶으면, 아마도 저 뒤에 있는 "철학"이라는 말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무슨 모토가 있다면 그게 철학이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철학은 시작된 것일까는 물음은 의미가 딱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 "계보"라는 것은 있습니다. 사계절로 치자면, 봄, 여름 쪽의 계열이 혹은 피부 톤으로 치자면 쿨톤, 웜톤 거기서도 또 나뉘는 그런 것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궁금해져서 이 책,의 제목에 이끌리어 책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나,

그 신호탄을 연 사람이라면 아마, 이 사람일 겁니다. 바로, 소크라테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그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실상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죠. 사실, 그래서 이 말은 굉장히 난해하고도 어렵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의 소리를 우리가 말하는 "개똥철학"이 아닌, 철저한 논리학,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나가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데 이 두 사람이 전 재미있었습니다.

플라톤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면서 하늘로 손가락을,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정 반대인 손가락이 땅으로 향한 "아테네 학당"이던가요? 거기서 볼 수 있듯, 스승과 제자가 첨예한 대립이라도 했을까 싶으면 아닙니다. 그건 그들 스스로의 "철학"일 뿐, 남의 철학에 대립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를 뿐"이지 그것으로 그 손가락을 상대방에게 향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절제의 학파인 스토아학파가 있었다면 쾌락의 학파 에피쿠로스가 있었습니다만, 여기서의 "쾌락"을 지금의 쾌락처럼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아타락시스였던가요? 그 쾌락이 내면의 쾌락 자신 자신을 위한, 집중이었다고 하니 내면의 쾌락이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고 해야 할까요? 첫 시작인 1장, 모든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면, 5장 공존의 방법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의문,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어쩌면 그 그림 한 장에 다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작가가 말한 중세 시대 즉, 신에게서 자유롭지 못하고, "철학은 신학의 하녀다"라는 교부철학의 철학의 암흑기라고 하는데, 저는 인간의 존재를 못 찾았기에 그들은 "신"에게 오롯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들이 수학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 바로 "숫자"라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을 택했듯 말이죠.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하던 프로타고라스의 말이 그리고 인간이 가장 우수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전쟁에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일 뿐, 작가의 말처럼 그 시대가 철학의 암흑기라는 건 인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죠. 왜냐면, 교부철학이 꽃을 피웠고, 그 안에서도 많은 논쟁들을 인간은 가져왔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그런 철학자들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것을 깨트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1000년의 철학, 교부철학에 도전장을 내던진 사람, 아니 깨진 말이 바로 이 말이라고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존재하기에 앞서 "본질"을 추구하던 소크라테스라면, 과연 본질을 앞선 존재(본질은 존재에 앞선다, 사르트르) 과연, 존재하기에 생각하는가? 생각하기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다시 신에게서 인간으로 주제를 옮겨온 것입니다. 그 후는 우리가 아는 철학자들이(저는 이름만 들었던..) 나옵니다.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인지 인간의 "욕망"에 또 초점을 맞춘 철학자들이 있으니 그 유명한 프로이트와 라캉입니다.

그 둘은 무의식을 다루면서, 의사로서 제명당하고 파문까지 당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인간의 무의식.. 어쩌고 하면 대학 때, 심리학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강신청했으나(그것은 개론.. 개론은 다 그렇다고 합니다.) "각인" 하나는 정말 각인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샤르트르, 그리고 그 유명한 "칸트"가 나옵니다. 이 칸트의 도덕관 다른 게 바로 벤덤의 "공리주의"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선이다,라는 벤덤과 칸트의 도덕과 무엇이 맞는가는 각자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신을 벗어나, 인간의 이성, 존재, 본질에 대한 논의와 함께 나오는 것이 바로 "공존"의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면, 이제 철학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정 계급의 사람들만 향유하던 철학은, 가라!랄까요? 그러다 보니, 어쩌면 벤덤부터 아닐까, "다수"의 행복이 과연 선일까? 싶지만, 지금 많은 나라들이 이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단 것이 또 칸트가 틀렸다가 아니라, 중세에 신이 필요했고 이성을 지나, 지금, "공존"으로 온 것이니까요.

마르크스의 주장은, 자본주의를 착취 체제로 보면서, 계급 간의 갈등, 투쟁..이라고 하지만 그가 말했던가요? 종교가 마약이다, 란 말처럼 그 계급 간의 투쟁과 갈등은 당연한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그 마르크스의 주장을 지금 알랭 바디우가 조금 주장하는 것은, "순수한 공산주의"는 없었기 때문이다,라면서 공산주의야말로 철학이 담긴..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특성을 모두 제외한다면 그것이야말로..라고 주장한다는데, 글쎄요, 이제껏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이어져 오던 게 철학 아니었던가요? 제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적 인간이라선지, 요새 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는 저에겐 여전히 저평가입니다. 이미 실패했는데 인간의 모든 고유한 특성을 제외한다? 이게 무슨... 싶었던 것이죠.(이건 저란 인간의 고유의 특성입니다)


그렇게 5장까지 오면서,

말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철학이란 것이 저자의 말처럼 어렵긴 하지만 "처음 하는"이면, 처음답게 조금 말을 쉬이 적을 수도 있는데 꼬고 꼬고 해서, 제가 풀어서 읽어야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이 제겐 너무 힘든 철학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한국입니다.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까진 어려워도 이해를 했으나, 도대체 철학 이야기에서 삶으로 자연스럽게 와야 하는데, 일본인가요? 마치, 일본 드라마가 자,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야 하죠?라는데 학문은, 학문으로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인간 고유의 특성"에 맡기고, "이성"에 맡겼으면 좋았을 텐데 왜 자꾸 교훈으로 가시는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헤겔 하면, 변증법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헤겔 편에서 전혀 언급이 없어선 살짝 의아하긴 했습니다. 하긴 너무 방대한 철학이라 그 정도는 빠져도 싶지만, 누군가에겐 그걸로 아, 헤겔이 그 사람이지!라는 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석 또한 그렇게 도움이 안 돼, 이게 굳이..?라고 있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처럼요. 사실, 사르트르도 "타인은 지옥이다(물론 드라마완 다릅니다. 제목만.)"를 인용해 살짝 재미있게 했더라면, 싶었습니다. 저런 건 따 와닿으니까요


저자의 말처럼 너무 어렵고, 게다가 방대하기까지 하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한 장만이라도 충실히 다뤘다면, 저자도 조금은 쉽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철학을 자, 이제 우리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로, 교훈적이 되는 건 싫었습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그래서 철학이 우리의 삶과 새삼스럽게 새삶스레게..가 되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한 의도임은 알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제가 무식해서임을... 다들 철학 이렇게 "처음"이라니 싶은 자괴감이..)

철학, 듣기만 해도 어렵고, 지금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과 그리고 동서양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비슷한 사상이었단 점도 드러내면서 철학이 결코 우리의 삶의 멀리가 아닌 바로 옆에 두어야 하며, 오늘 당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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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의 혼잣말 - 일러스트레이터의 섬세한 시선으로 찾아낸 일상의 예쁨들, 그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이야기
조선진 지음 / 니들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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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참 건조한 사람입니다. 그걸 알기까지는 의외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전에도 들었던 말이지만, 그냥 흘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말이 들어오면서 아, 하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제 건조함이 촉촉해질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을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보단 일상의 가까운 언어들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시인의 언어란 그 정확성 그리고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림과 함께라면, 시 같은 글도 조금은 내 일상의 어느 부분과 가깝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어쩌면 "혼잣말"이란 단어에 끌려서일 수도 있고요.




이야기는 우리가 마시는 커피 내리기 혹은 제가 그냥 마시는 커피와 같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머신이 아직 없어선 그냥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얼마 전까진 드립 커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좋았기 때문일 겁니다. 묘하게 그 시간만큼은 온전한 평안함이 오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커피를 마시는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커피가 일상의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참지 않고 마시기로 했습니다. (.....)



네, 작가의 말처럼

참 많은 것들을 이유를 붙여 참아왔던 것들 있어.(본문 62p) 완 다르지만, 말이죠.

그렇게 해서라도 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아마 커피를 계속 마시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건, 참는 게 아니라면서 말이죠.


 



작가의 말처럼, 그림은 공감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을 가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행이란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하나의 작은 여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우리의 여행의 순간은, 묘하게도 또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 한 번이 얼마나 특별한가요? 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 지금은 가지 못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웃는 얼굴들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인연이 된다면 또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어쩌면 여행의 주는 특별함은 그 도시가 아름다워서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만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명품 그리고 컬렉션을 모으는 친구에게 불이 나면 들고 나올 하나의 물건에 대한 대답은,

프랑스를 갔을 때 초대받아 갔던 집의 그 노란 조명을 이야기합니다. 그건 다시 구할 수 없으니까요. 명품이나 컬렉션도 물론 한 번만 나오는 한정판일 수 있겠지만 그 친구는 그 조그마한 어쩌면 다른 이에겐 아무것도 아닐 그 조명을요. 그런 것 아닐까요..? 여행, 만남, 그리고 선물. 이 모든 것들을 그 안에 담고 있으니까요.( 전, 그래서 그거라고?라고 정확하게 묻고 싶은 건조함을 지녔습니다만, 그건 분위기상 가만히 있는 게 낫겠죠..)




작가의 유년의 이야기도 불쑥, 하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또 의외로 잘 어우러집니다. 아마 우리들도 잘 하는 혼잣말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도, 이걸 해야지 하다가 가끔 산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이 화제에서 자연스레 그와 연관된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늘 가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 기차를 타고 갈 때 직행으로 간다 해도 중간중간 내리는 역은 분명 있습니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 주제에서 옮겨가면서 자연스레 꺼내는 이야기들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다 공감은 하지 않을지라도 말이죠. 저와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 그림을 보니까

기차 모양의 비행기도 곧 나오겠지, 싶었습니다. 어릴 적 풍선은 내 꿈이고 그게 날아가 버린 후, 텅 빈 내 손을 보면 참으로 묘했던 그 기분도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러스트 속,

작가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찾을 수 있었던 그 무언가도 있고, 공감과 또 나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카페, 건물, 여행,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 친구들과 관계 속에서 또 나만의 혼잣말을 하듯, 그림들도 분명, 같은 그림이지만 각기에게 다른 사연들로 다가오는 그런 #그림들의혼잣말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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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클래식 - 은밀하고 유쾌한 음악 속 이야기
문하연 지음 / 알파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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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다락방클래식은 클래식의 소개도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가들, 그들의 "스토리"가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도 그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 삶의 스토리가 음악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졌으면서도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음악가들에 대해서 더 많이 다루기도 했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까지 지금과 달리 그 시대엔 "여자"란 이유만으로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질 않았죠. 그래서 더 치열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조금 놓았을 수 있었던 삶들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이미지를 벗어버린 음악가들도 있었습니다.

클라라 슈만 - 슈만, 그리고 브람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면서, 브람스의 이야기 같은 면도 있었습니다. 브람스가 일생을 클라라만 바라봤다,라는 건 익히 알려져 있긴 합니다. 다만 제가 알기론 브람스도 꽤나 여자관계에 있어선 마음은 클라라나(...) 몸은 아니었단 이야길 들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의 순정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죠. 이 이야긴 바로 그 삼각관계(?!)의 중심인 클라라의 음악성에 초점이 있습니다. 이 클라라의 생에도 그렇게 순탄치는 않아, 아버지 비크에게 이용당할 때쯤, 바로 슈만이 나타나고 송사로 이어지기까지 했더군요 어쨌든, 클라라와 슈만은 평생 음악의 동지면서 부부였습니다. 그런 사랑의 이야기로 살짝 다락방을 보여줍니다.

13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해, 5년간 교향곡 2곡, 가곡을 140곡이나 써서 내놓은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프란츠 슈베르트입니다. 그의 시작은 어쩌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차르트를 질투했다던 살리에리가 선발하면서 시작합니다. 이 책에서 살리에리는 꽤 자주 등장하는데, 그만큼 그는 오디션에서도 그렇고 인재를 알아보는데 능통했던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 그 많은 곡들 중 하나, 바로 <겨울 나그네>는 그의 연애사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 번의 로맨스와 그리고 한 번의 짝사랑으로요 그리고, 그 한 번의 사랑이 참 쓸쓸했단 것이죠. 그러나, 이와 다른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베토벤의 이미지는 조작됐다.



베토벤입니다. 그의 사랑은 잠시 뒤로하고, 저도 그가 귀족 출신인 줄 알았는데, 그의 이름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합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

이 이름에서 <판>이 폰과 헷갈리면서 벌어진 일이라는데 여기서 바로 "폰"이 프랑스로 치자면 귀족을 나타내는 "드"의 역할인 것이죠 그런데, 그는 정정할 생각이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재판까지 열렸다고 결국 그런 조상 없다,라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고 하는데 "도도한 귀족"이기에 귀족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던 베토벤의 이미지가 사라진 것과 함께, 그는 계급이 세습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 얻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진보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그랬다면 너무 모순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뭐지 싶은.........)

그리고 "불멸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도대체 그 연인은 누구?라고 할 정도로 그의 연애사는 참 많았습니다(...) 그 이유 또한 제가 깜짝 놀란 건 바로 "베토벤의 연애사, 혹은 그 연애 패턴이었습니다. 읽으면서, 베토벤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많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짜르트의 모짜르트라 불렸다던 클라라 파스칼의 등장, 미모까지 겸비한 천재, 그러나.. 천재에게 꼭 불행은 따라다니기 마련이었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3월 12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해 무관중 온라인으로 중계된 "자클린의 눈물"의 주인공인 자클린 뒤 프레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다른 악기도 그렇지만 첼로란 것이, 20세기 초까지도 여성들에게 터부시 된 악기였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악기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앉는 자세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누군가는 이걸 깨트린 것이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_ 리스트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인물 리스트였습니다. 아주 자주, 이곳저곳 등장하는 이 오지라퍼는 누군가? 했고, 많은 음악가들이 그와 맞지 않는다, 그는 기교를 너무 부린다, 퍼포먼스가 강하다 등으로 멀어지게 됐다,라는 인물이었습니다. - 살리에리도 꽤나 자주 등장하지만요. 그런 그는 의외로, 자신은 음악을 즐겼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리사이틀"이 바로, 리스트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의 사위에 대한 것도 너무나 놀랬고, 그의 말년도 또 더 놀랬던 리스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사랑 이야긴 더더욱요. 저는, 이 리스트가 마음에 들어(잘생겨서는 아닙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싶었으나, 살짝 아쉬운 세 챕터였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나요>가 생각나는, 그 로맨스로부터

우리가 많이 알고 알고 있는 천재 음악가들이 나와서 좀 더 쉬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건 요새 나오는 클래식 관련 음악 책들과 마찬가지로 <다랑방 클래식>도 "음악"을 들어보라는데, 사실 "읽는" 것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작가가 음악 한 곡씩을 소개해 주는 한 페이지에 살짝, QR코드를 삽입했더라면 훨씬 이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더 와닿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베토벤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독자들을 위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음악에 대한 정의겠죠.

챕터의 제목인 바로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본문 157P)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은 그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는 예술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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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소설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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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 1의 비극은 그 평범한 하루, 단 한 통의 전화로 시작합니다. _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범죄들은 가장 힘없는 약자들을 향한 범죄입니다. 특히나,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들을 향한 손길은 말입니다. 바로, "유괴"란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 한 통의 전화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의 아이라도 그것은 생각지도 않고 싶은데, 그게 내 아이에게 생긴 일이란 것에 야마쿠라 시로는 진정할 틈 없이 뛰는 가슴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 우리 아이는 무사해.

아내인, 가즈미의 말입니다. 안도의 숨을 쉬기도 전,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가 유괴된 것 같다고 말입니다. 아들인 다카시인 줄 알고 친구인 시게루를 유괴한 것 같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엔 없습니다.

하필, 왜, 시게루인가? 왜 하필 그 아이란 말인가.



네, 그는, 어쩌면 또 한 번의 안도의 숨을 쉬었는지도 모릅니다. 하필 시게루인가,에서 다행히 시게루구나..라고 말입니다. 왜냐면, 그 시게루가 나, 야마쿠라 시로의 친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카시 시로가 아닌, 바로 유괴당한 아이,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를 그 아이가 불륜으로 낳은 그의 아이이기에 말입니다. 그의 말로는 아주 그저 잠시의 관계였던 그녀와의 관계에서 말입니다.그는 유괴당한 시게루의 엄마인 미치코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일부러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더라도, 그 둘이 친구가 된 그 모든 것조차 그녀의 복수의 1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는 다카시 때문입니다. 아내 가즈미에겐 조카지만 그 자신관 아무 혈연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데, 납치된 것이 설사 이름은 틀렸다 해도, "야마쿠라 시로의 아들"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도 안심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은, 내 가정을, 잃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는 모든 것을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를 포기하고 나의 가족도, 가정도 그리고 지금의 지위까지 말입니다. 그 1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만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요리코를위해 이하 요리코)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인 나, 야마쿠라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그의 눈으로만 우린 알 수 있는 단서들만이었다면 답답했을 상황 속, 노리즈키 린타로가 이번에도 탐정으로 등장해 그는 알지도 못하는 밀실 살인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의 추리로 독자들도 조금씩 단서를 얻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른 인물들도 등장을 합니다. 그가 앗, 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어쩌면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용의자를 찾아내는 겁니다. 아니, 그 차종을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가장 먼저 다카시의 친아버지인 미우라를 의심했을 겁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는 미우라에게 투영해서 다름 아닌 나를 질책했던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실격이라는 말은 시게루의 아버지인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 본문 143p

우연히 그의 차종 때문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 제 자식도 못 알아본 아비여야 하는데,

미우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야마쿠라입니다. 그는 적어도, 자식의 얼굴은 몰라서 유괴했을지언정 외면하진 않았을 거란 것. 내 아이를 부정하는 그 마음 때문에 말입니다.







지금 tvn에서 하고 있는 드라마 <더 로드:1의 비극>의 원작입니다. 직업들과 조금씩 바뀐 것들이 있지만 바로, 이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과연 드라마의 결말은 다를지 아니면 같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 드라마에 구원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원작대로 간다면, 없을지도요. 가만히 표지를 봤습니다. 어째서 1의 비극일까?라고요. 1은 하나의 그 무엇일 수도 있지만 마치, 1이 란 견고한 벽, 혹은 나 자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비극일까, 싶으니 일본어로 나, 즉 <I >아이, 그 아이의 뜻이 "사랑"이란 것이 참 묘하기 했습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아마도 사랑이겠지만, 너무 때늦어 버린 것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드라마에 구원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원작대로 간다면, 없을지도요. 가만히 표지를 봤습니다. 어째서 1의 비극일까?라고요. 1은 하나의 그 무엇일 수도 있지만 마치, 1이 란 견고한 벽, 혹은 나 자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비극일까, 싶으니 일본어로 나, 즉 <I >아이, 그 아이의 뜻이 "사랑"이란 것이 참 묘하기 했습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아마도 사랑이겠지만, 너무 때늦어 버린 것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진정 사랑일까, 싶었습니다.

그랬던가요..? 당신들이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들을 그렇게 내팽개치고 그럼에도 말인가요, 묻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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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소설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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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악기를 시작할 때의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리고 그만둘 때조차.
그 소리가 이뻐서, 시작하고. 악기의 가져다주는 불편함들 때문에, 관두기도 한다. 
야먀쿠라에게 있어서의 그 일 역시, 그에게는 사소했을 뿐이다. 그저. 그만둘 때조차도.

그래서, 그는 조금 미안할 뿐이었다. 그의 그 아주 사소한 일이 불러올 파장은 모른 채.






(....)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이가 가까워진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미치코의 의지가 있었다. 미치코는 나를 압박하기 위해 다카시와 시게루를 친구 사이로 만들었다....

본문 63P


비극의 시작은 그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다.

악기는 버려졌다고 해서, 주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일은 또 다르다. 그에겐 별 것 아닌 일이, 누군가에겐 아주 큰 일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일어날 일들은 더더욱 그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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