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째서, 왜, 생김으로 그리 상처받는가?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깟 외모에 대한 것 눈 감아 버리면 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그게 바로 외모만이 아니라, "어울림"의 기준이란 것을요. 어울릴 수 있는 외모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성적 순으로 매겨지는 것은 차라리 노력이란 것이 있지만 외모는 내가 어찌할 영역이 아닌데 그것으로 매겨지는 것들,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한 말이, 그저 그 말은 악의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상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에서 상처받으면서도 아닌 것처럼 단단한 것처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것을 이와무라 이치는 호러란 것과 미스터리를 섞어선 가 절대 가볍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보기왕 때부터 작가는 "심리적"인 요소를 더 잘 다루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 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친구 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뿐만은 아닙니다. 그는, 좀 더 나아가 보라고 한 발짝, 더 뛰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어떻습니까 아름답습니까? 혹은 그 반대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떤 친구인가요 혹시 이렇진 않은가,라고 말입니다.
멸시하면서도 원하고 있다. 가까이하긴 싫어도, 지켜보면서 즐기고는 싶은 것이다. 추한 인간을. 추하게 무너져가는 인간을. 자기가 다음 표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계속 구경꾼으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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