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ttp://omn.kr/m0uh

- 오마이뉴스 책동네에 기고한 글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았다,라고 말하면 지루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셨는지 아버지는 내가 8살 때 이사를 택하셨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친구가 생기려고 할 무렵에 경기도에 있던 목장으로 이사를 갔다. 원래 사슴을 키우는 목장이던 곳이 수련원으로 바뀌게 되면서, 수련원의 식당에 손이 필요했던 이유였다. 아버지는 수련원 식당의 주방장이 되셨고 우리 남매들은 난데없이 시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은 인근의 초등학교에서도 꽤 먼 곳에 있었다. 한 시간을 걸어서 이십여 분을 버스를 타고 내려야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오빠와 등교 시간이 겹치는 오전에는 오빠와 같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오후반이 되는 날-당시의 초등학교 저학년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있었다-에는 혼자 한 시간을 걸어서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힘든 생활이었지만 닥쳤으니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와야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지는 않았을 것도 같다.

 

친구 사귀기 대신 책을 즐겨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막상 책을 다 읽은 후가 문제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그렇게 책에 관한 수다를 떨고 싶은지 오히려 더 쓸쓸해졌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독후감도 쓰고, 일기도 썼다. 작품을 모방하며 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그런 시간을 거쳐 책을 읽고 나면,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원석 작가의 <서평 쓰는 법>이 반가웠던 이유는 이런 내 삶의 이력이 있어서였다. 작가는 서평이 독서의 완성이라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잘 읽을 수 있고, 또 깊이 읽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읽어야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책을 통해 나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읽은 책에 대해 서평을 쓰는 것입니다. 서평이야말로 독서의 심화이고, 나아가 독서의 완성입니다.”(9-10)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서의 심화법을 배우고, 완성에까지 이르렀다는 칭찬을 받으니 이 책이 안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냥 책을 읽는 것도 물론 좋지만, 서평으로 흔적을 남기는 경우와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서평이야말로 제 독서의 결산인 셈입니다. 서평으로 독서가 일단락되는 것이지요.”(10)

 

어설펐지만 어린 시절부터 써 온 서평(혹은 독후감)이 있었기에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책을 오래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평 쓰는 법>은 기존의 내 독서법이 독서를 할 때, 꼭 필요한 과정임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서평과 독후감을 혼동해서 사용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작가는 이 부분을 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독후감과 서평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첫째, 독후감이 정서적이라면, 서평은 논리적입니다. <중략> 둘째, 독후감이 내향적이라면, 서평은 외향적입니다. <중략> 셋째, 독후감이 일방적이라면, 서평은 관계적입니다. <중략> 이렇듯 서평은 그 서평을 읽는 독자를 설득하고자 합니다. 서평 읽기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합니다. 서평을 읽은 독자가 해당 책을 읽거나 읽지 않는 구체적인 반응으로 화답해 주어야 서평은 제 구실을 다한 것이 되며, 이로써 서평을 통한 대화가 완성됩니다.” (23-25)

 

1부 서평이란 무엇인가의 시작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서평의 본질과 서평의 목적을 짚어낸다.

 

서평, 즉 북리뷰(Book Review)에서 리뷰는 책을 다시(re) 보는(view)' 겁니다. 새롭게 읽는 것이지요. 이는 해석의 주체인 독자가 각기 다른 자리에 서 있기에 가능합니다. 모든 서평은 독자/서평가의 다시 읽기입니다. 나아가 다른 독자에게 다시 읽기를 제안합니다.” (33)

 

서평 쓰기의 일차 가치는 독자 자신의 내면 성찰에 있습니다. 서평 쓰기는 작성자가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독서 자체가 그러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평 쓰기는 심화된 독서 행위입니다. 더욱 깊게 책을 읽는 가운데 자신을 더욱 깊게 읽는 것이지요.” (44)

 

자아 성찰이 서평 쓰기의 결론은 아닙니다. 진정한 종결은 어디까지나 삶을 통한 해석이자 실천입니다. 이는 물론 서평이 보여 주는 가능성을 극대화한 이상적인 논의일 겁니다. 그렇더라도 이상은 중세의 선원이 기준으로 삼던 밤하늘의 북극성과도 같습니다. 항해를 통해서 북극성에 다다를 수는 없어도 북극성을 보며 항해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는 있습니다. 서평이 독서의 완성이라면, 그 완성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47)

 

이에 대한 확장으로 2부에서는 서평을 어떻게 쓸 것인가로 이어진다. 작가는 서평의 전제, 서평의 요소, 서평의 방법으로 구분하여 서평 쓰는 법을 꼼꼼하게 안내한다. 고추장 만드는 비법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여느 떡볶이집 할머니의 명언을 무시라도 하듯, 오랜 독서가이자 서평가로서 작가가 찾아낸 서평 쓰기의 정수를 모두 알려준다.

 

서평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독서의 목적독서의 태도(69)”를 제대로 점검(서평의 전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평가는 무엇을 위해 책을 읽을까요? 기본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목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각각의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읽고 독자와 공개적으로 소통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읽느냐보다는 왜 읽느냐에서 도출되는 질문인 무엇을 소통하려 하느냐가 중요합니다.”(70)

 

왜 읽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읽느냐입니다. 방법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태도가 양가적이어야 합니다. 한 면으로 숭배자가 되고, 다른 한 면으로 비판자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서평을 쓰려면, 다루는 책이 뭐가 됐건 이런 이중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책에 매료되어 다가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으로부터 냉철하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물론 책에게 다다가 흠뻑 빠져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공감의 해석학이 선행되어야, 이어서 비판의 해석학도 충분히 제 몫을 하게 됩니다.”(74)

 

서평의 전제를 점검했다면, 서평의 핵심 요소 역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그 핵심을 요약과 평가”(85)에서 찾는다.

 

요약 없는 평가는 맹목적이고, 평가 없는 요약은 공허합니다. 맥락화에 기초한 평가가 없다면 서평은 의미가 없지만 그 평가의 근간에는 충실한 요약이 자리해야 합니다.”(85) 

 

이를 토대로 요약과 평가가 필요한 이유를 제시하고 평가의 의미와 요소를 짚어낸다.

 

좋은 서평은 바른 맥락 속에 책을 자리매김합니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 연결해 특정한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 서평의 역할입니다.”(100)

 

이 과정은 서평을 쓰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독서의 완성이 서평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책을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원석 작가가 제시한 평가의 요소-제목, 목차, 문체, 지식과 논리, 번역, 감정 이입-를 살피라고 권하고 싶다. 평가의 요소는 서평을 쓸 때뿐만이 아니라 책을 고를 때와 책을 읽을 때에도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평의 방법에 와서는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일단 생각하라. 지금 바로 글을 쓰라. 첫 문장에 대해서 고민하되 지나칠 필요는 없다. 문단은 하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축약하라. 인용은 전채일 뿐이고 서평의 주체는 서평가임을 잊지 말라. 마무리 역시 부담을 가지지 말되 서평을 썼던 이유를 잊지 말라. 다 쓰되 고쳐 써라. 어려우면 좋은 서평을 참고하되, 분량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라.’

 

간단하게 요약했지만, 책은 내 방식의 요약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서평 쓰기에 관해서 이토록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저자가 말미에 언급하듯, 이 책이 앞으로 나올 책들의 디딤돌이 되(165)”도록 포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내가 작가에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책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었던 시절, 쓸쓸했지만 덤덤하게 걸어온 길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이제는 네 마음을 알아줄 지침이 있으니 함께 같이 가자고.

 

물론, 지금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온라인에 글을 쓸 공간이 생긴 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책에 관한 소감을 나누면서 블로거끼리 교류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원석 작가처럼 조근조근 서평의 의미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았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작가, 서평가, 독자 사이의 교류를 끈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말해 주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독서법이 궁금한, 독서를 통해 깊이 교류하고 싶은, 책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수많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일은 당연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여자

                                     - 동생에게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미'(美)자는'양'(羊) '대'(大)의 회의(會意)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이처럼 모든 미는 생활의 표현이며 구체적 현실의 정서적 정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바깥에서 미를 찾을 수는 없다. 더욱이 생활의 임자인 인간의 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용모나 각선 등 조형상의 구도만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없음은 마치 공간을 피해서 달아나거나 시간을 떠나 존재하거나, 쉽게 말해서 밑바닥이 없는 구두를 생각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그녀의 생활목표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 생활의 자세를 관찰하며 나아가 너의 그것들과 비교해보야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알 만 하다'는 숙지(熟知), 가지(可知)의 뜻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미의식의 형성과 미적 가치판단의 훌륭한 열쇠를 주고 있다. 이를테면 너의 머리 속에 들어앉은 이러저러한 여인상이 바로 너의 미녀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기실 너는 사제(私製)의 도량형기(度量衡器)로써 측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네게 아름다운(可知) 여자가 어머니께는 모름다운(不知) 여자가 되는 차이를 빚는다.

  여기서 말해두고 싶은 것은 너의 여성미 기준이 혹시 매스컴이나 부침(浮沈)하는 유형의 침윤(浸潤)을 당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문이다. 스스로의 착소(窄小)한 시야에 대한 반성이 있다면 인생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한 노인들의 달관과 그 관조의 안목을 낡았다고 비양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는 또한, 신선미 즉 미의 지속성을 그 본질로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거니와 부단히 자기를 갱신하지 않는 한 미는 지속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미의 반어(反語)이며 권태의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녀가 어떠한 여자로 변화·발전할 것인가를 반드시 요량(料量)해봐야 한다.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 있는 여자인가 현재 속에 닫혀 있는 여자인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은 현재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완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연관 속에서 변화발전의 부단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며, 현실성보다는 그 가능성에 눈을 모으는 열려 있는 시각이다.

   나는 이 편지로 네게 여자를 고르지 말라거나 미녀를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에 임하여 미의 의미를 새로이 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잘 뿐이다. 사실이지 사람이란 사과와 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반려이며 생활을 통하여 동화·형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면밀한 선택으로부터 좀 대범해져도 좋을 것이다. '부모나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가'라는 현문(賢問) 앞에서는 답변이 없어진다.

   너는 아직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 어쨌든 금년에는 네가 결혼하기 바란다.

 1975.1.13


 오가며 지하철 안에서 오랜만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꺼내들었다. 역시나 신영복 선생님의 사색의 깊이는 따를 수가 없다.

 아름다운 여자란 어떤 여자인가, 를 저리 풀어낼 수 있는 그 분의 사색 앞에 또 한 번 감탄을 한다.

 뭐,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대목에서 살짝 거슬렸지만 1975년에 쓰셨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불편한 마음은 버릴 수 있겠다.

 마음을 흔드는 구절이 너무 많아 종종 멈칫거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6-06-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구절이 너무 많아 읽은 책중 가장 많은 밑줄이 쳐진 책이죠. 읽자마자 바로 책의 처음으로 넘어가 다시 읽기 시작한 유일한 책이기도 하고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소장책 1호입니다.

연우주 2006-06-3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에겐 미치는(?) 코드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랍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나, 처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어요. 그때 그 깊이에 매료되었지요. 오랜만에 꺼내들었어요. <나무야 나무야>는 매년 두세번 이상 보는데 이상하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자주 안 꺼내지더라구요. 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해서 그럴 거예요...

그나저나 잉크냄새님의 댓글 너무 반갑네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제 성석제에게도 웃음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성석제는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박장대소를 하게 한 인물이었기에 기대하는 바가 컸었으나 이제 그 박장대소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냥 음식에 대한 추억담 정도를 풀어놓은 이야기다.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소박한 이야기였고 무엇보다 성석제 이야기투가 배어나오긴 했지만 그다지 우스꽝스럽진 않았다.

그냥 심심풀이로나마 읽으면 좋을 법한 글이다. 간혹 심심할 때 읽거나 화장실에다 갖다놓고 읽으면 좋을 법한 글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6-06-2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다고 생각해서 보관함에 넣어두었어요. 그에게 실망할 때도 있지만 포기할만큼의 실망은 아직 안줬거든요...

Volkswagen 2006-06-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가 재밌니? 오~난 성석제 별루야!

연우주 2006-06-23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성석제에 대한 제 실망은 사실 성석제를 직접 만난 후에 더 심해졌어요. 쨌든 저는 이제 별로 재미없네요.^^
뽁/ 요상한 이름 적응 안 됨. 성석제가 처음 문단에 등장(?)했을 때 얼마나 웃겼는데.. 내가 무릎을 치면서 박장대소했다. 요새야 소설이 가볍고도 가볍지만 성석제가 처음 산문을 쓸 때는 그렇지 않았다구. 그러니 당연 성석제의 소설이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근데 요새 소설은 모두 너무 가볍고 다들 자기 얘기만 해대서 짜증난다. 한국 소설 안 본다니까...

기인 2006-07-0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석제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요즘 소설과 이 <<소풍>> 또한 참 실망이었어요. ㅎㅎ 저는 현대문학 전공자이기는 하지만, 정말 요즘 소설 중 상당수는 지겨워 죽겠답니다 ^^;

연우주 2006-07-0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현대문학 전공자라니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한때 문학 전공자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좀 다른 삶을 살고 있거든요. 언젠가 다시 문학 공부를 하게 될 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군요.^^

그.런.데 저는 요즘 한국 현대 소설은 안 봐요. 아무리 봐도 배울 게 별로 없더라구요.^^ 오히려 외국 소설을 많이 본답니다. ^^
 

서평단에 응모하여 당첨되어 오늘 이 책을 받았다.

아... 나는 향후 몇 년간 이 소설만큼 재밌는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일본 작가에게 흥미를 가졌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니, 이 시대 최고의 동양 작가다, 라고 뻥을 튀겨도 될 정도로 훌륭한 소설이었다.

199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 작가를 읽으면서 이렇게 감탄할 수 있었다면 진심으로 기뻤을 것 같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정하는 소설가는 김소진 하나다. 그리고 김소진 이후로는 소설가다운 소설가를 보지 못한 고로 참으로 슬프구나.

일본 소설을 읽고 나서 이렇게 감탄을 해야 한다는 게, 말이다. 뭐, 여기서 쓸데없는 민족주의가 왜 발동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열은 받는다.

어쩜 이렇게 구성도 완벽하고 재미도 있고 결론까지 깔끔한 소설을 쓸 수가 있는 거지! 이번 서평단 응모는 진짜 제대로다.

아.. 이 소설 강추다.  

 

간혹 너무 좋은 작품을 보거나 읽으면 오히려 서평이 잘 안 써진다. 아주 엉터리가 된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많아서 이야기가 꼬인다. 이 책이 그렇다. 아... 나는 깊이 깊이 감명받았다.

무엇보다 강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일 거다. 저자가 전달하려고 했든 안 했든 강간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도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될 거라는 아주 소박하고도 유치한 바람이 생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Volkswagen 2006-06-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넌 서평단도 뽑히냐? 좋겠다.
 
 전출처 : 히피드림~ > 알라딘 서재에서도 채팅창을 열 수 있다?!

방금 네이버 메인에서 본 기사인데요.

자기 블로그 주소의 앞부분에 http://gabbly.com/ 만 쳐넣으면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채팅창이 열려요.

너무 신기해서 알라딘에 들어와서 해봤는데

되더군요. 근데 현재 제 블로그에 접속하고 있는 알라디너 분들이 없으셔서

채팅은 못해봤어요.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47&article_id=0000081501§ion_id=105§ion_id2=226&menu_id=105

 

위에 링크된 곳에 들어가서 기사 한번 읽어보세요.

너무 신기해요.

우선 gabbly.com 을 자신의 알라딘블로그 주소앞에 쳐서 넣으면 

자신의 아이디가 gabber+숫자

형태로 뜨거든요. 창에 자신이 원하는 아이디를 쳐넣으셔서 아이디를 바꾸면 되요.

알라딘에서 쓰시는 닉네임을 아이디로 하시면 되겠죠.

우리 이거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