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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미어스 1부 - 상 -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 ㅣ 바티미어스 3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최인자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포터』 시리즈도 그렇고, 심지어 『어스시의 마법사』도 부분적으론 성장소설 내지는 교양소설의 아동물 버전입니다.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겠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나니아 연대기』와도 사뭇 다르죠. 이런 시리즈물은 십대 초, 중반 꼬마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험물로, 판타지 장르의 확고한 하위 장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목표 시장이 분명한 문학상품이랄까요.
메인 트렌드가 일단 형성되고 나면 항상 틈새시장을 겨냥하는 아이디어 상품이 뒤를 따르는 모양입니다. 이를테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는 인간이라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지구상 어느 곳도 아닌 아예 다른 세계, 다른 생물의 종족들이 주인공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용이라는 점만 빼면, 어린 소년입니다.
아이가 주인공인 판타지가 슬슬 지겨워지던 참에 『바티미어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바티미어스』가 엄청나게 재미있다거나 독특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어린 꼬마의 모험담 포맷을 따라가고 있지요. 게다가 이야기가 정교하다고 말하기도 사실 어려워요. 좀 슬렁슬렁 넘어가는 구석도 있고, 다음 편을 위한 복선일 수도 있겠지만, 흐지부지 끝나는 대목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아이디어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동 모험물에 지친 독자를 위한 아이디어 상품의 미덕이랄까요. 우선 메인 주인공이 꼬마가 아닙니다. 심지어 인간도 아니지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티미어스라는 오천 살이 넘은 요괴입니다. 이 바티미어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갑니다. 하긴 이 수다스러운 중년 아저씨 같은 요괴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때면 소년의 모습을 하긴 하지요.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건 바티미어스의 짝으로 나오는 나타니엘이란 꼬마 마법사입니다. 재능도 있고 정의감도 있으나 착하지만은 않은, 그리고 종종 어리석기도 한 소년이라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캐릭터입니다. 1권의 에피소드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가 끝날 즈음이면 나타니엘은 복수의 성취와 함께 제국을 구하게 되니 오히려 진부할 정도죠. 하지만 이 소년이 오히려 악당들을 닮아간다는 점은 꽤 독특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경우라면 해리가 악의 힘에 슬쩍 끌리는 대목이 있다 해도 그건 좀 뻔한 눈속임 같은 구석이 있어서, 누가 봐도 악의 편으로 넘어가지 않을거란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종주의 정치학’이랄까요. 아무튼 해리는 좀 불안해보이긴 해도 ‘좋은 편’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본질이 ‘나쁜 편’과 닮아 있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좋은 편’의 가치를 따르지요. 한데 나타니엘의 경우는 좀 더 세속적인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나타니엘에게는 ‘좋은 편’과 ‘나쁜 편’의 구분은 상대적이고 모호합니다. 오히려 개인이 취하는 태도랄까, 입장이 더 중요한 문제죠.
어찌보면 『바티미어스』는 드라마 시리즈물 방영에 앞서 상황 소개와 도입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두 시간짜리 텔레비전 영화 같은 책입니다. 복선이 될 법 싶은 디테일은 너무 많은데 비해, 이야기는 그 중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론, 딱 그만큼의 재미에는 충실합니다. 좀 덜 진부하고 어느 정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즐길 수 있는, 요괴와 소년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그러고 보니 이런 짝패가 나오는 일본 만화는 좀 있는 것 같습니다)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