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영화다. 보면서 키득키득 많이 웃었다. 사랑을 잃고 물고기가 되어서도 말다툼을 그치지 않는 부부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부터 또다시 동상이몽에 빠져드는 이다와 오토의 마지막 표정까지, 순간순간 반짝이는 유머러스한 묘사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Fisher와 그의 아내>라는 멋대가리 없는 원제보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라는 국내 개봉 제목이 훨씬 낫다는 등의 얘기를 나누며 극장을 빠져 나오는데, 문득 신발 바닥에 아주 커다란 껌딱지라도 붙은 양 껄끄럽다. 뭐가 개운하지 않은 거지? 응, 뭘까?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의 의미는 무얼까, 사랑의 유효 기간은 얼마나 될까, 어떻게 해야 오래도록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해 온 평범한 질문들. 요즈음의 TV 광고는 사랑의 유효 기간이 18개월이라고 말한다. 마법에 걸린 물고기 부부는 고작 3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하는 커플을 만나면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것이 ‘미션 임파서블’인 듯 여겨진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사랑하며 해로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걸까.
인도에서 명상을 즐기며(?) 자란 탓인지 오토는 물질적인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캠핑카를 타고 떠돌며 물고기 의사 노릇에 만족한다. 반면 이다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이 넘쳐서, 그 넘쳐 흐르는 꿈이 이런저런 욕심으로 바뀐다. 제대로 된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싶고, 아이가 뛰놀 정원 딸린 집이 필요하고, 오토가 좋아하는 잉어를 잔뜩 키울 호수가 갖고 싶다. 둘은 그렇게 정반대인데,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당연히, 서로의 실체를 몰랐으니까! 이다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동안 해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오토는 무기력에 빠진다. 이다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아직도 날 사랑하느냐고 묻는 이다에게 그는 한 번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다의 성공은 한바탕 일장춘몽인 듯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그제서야 사랑을 확인한 오토와 이다는 아이와 셋이서 옛날의 캠핑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당신과 토미만 있으면 돼.”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디어와 의욕이 넘치는 이다, 아연실색하는 오토. 그들의 삶은 아마 그렇게 평생 돌고 돌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지, 이다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패션 시장에서 통할 만한 멋진(내 눈엔 그다지 멋져 보이진 않더라만 일종의 판타지니까.)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가 육아를 남편에게 맡기고 일에 매진하는데, 어째서 끝없이 물질적 욕심만 부리는 못된 마귀할멈처럼 보여야 하지? 욕심도 의욕도 계획도 없는 남자랑 캠핑카에서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참는 게 여자의 사랑이면, 남자의 사랑은 대체 뭔데? 오토는 마치 말뚝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자리에 딱 붙어서서 이다에게 고무줄을 묶어 놓고, 앞으로 열심히 걸어가는 이다가 결국 자기에게 되돌아오길,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해 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내 옆에 있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나만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그러니까, 둘이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데 어째서 감독은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는지, 영화의 제목을 차라리 <내 여자의 유통기한>이라고 해야 하는게 아닌지, 껌딱지같은 찜찜함의 이유는 그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