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를 통해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조약문에 나타난 그 흐름을 볼 때 그것을 넘어 이제 시장이 국가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일찍이 '국가소멸론'을 설파한 맑스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원래 경제란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와 시스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 경제가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와 경제의 논리를, 곧 이윤의 논리를 사회에 강제하기 시작하였고, 국가 역시 경제의 무한이윤과 경쟁논리에 복속되기 시작하였다.
한미 FTA는 공공영역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 시장에서의 약자보호는 국가의 기본에 속한다. 그럼에도 한국 국가는 농업을 보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중소기업도 경쟁의 논리로 내몰린다. 이미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할 수준인 양극화는 단지 사후처리 수준에 맴돌고 있을 뿐이다. 한미 FTA의 공공성에 대한 공격은 특히 에너지, 교육, 의료, 문화 등에 집중되어 있다. 금융은 공공성을 운운하기조차 힘든 수준으로 외자 지배하에 넘어가 있고, 투자와 지적재산권은 미국형 FTA가 각별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공론화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말조차 한국에서는 낡은 개념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결국 국가 주권적 정책공간의 위축과 잠식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FTA는 무역의 자유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식으로 보자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무역의 대상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의 자유를 위한 협정이라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상에 자유로운 것은 오직 바람과 돈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FTA는 돈의 자유, 자본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면 노동의 자유는 없는가. 없다. 있어야 하는 데 없다. 그것이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모드 4 '자연인의 이동'을 대부분 주요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양허하지 않는 이유이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태평양을 오고 가도, 사람은 안된다.
미국형 FTA는 실은 자본의 극단적 보호주의이다. 이미 '자유무역주의는 강자의 보호주의'라는 말이 있다.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방하면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단 개방하면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망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는 강하다는 말을 줄여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면 옳다. 그런데 서비스산업의 경우 이미 개방하기 전에 생산성이 절반이고, 경쟁력이 절반이라면 그 말은 곧 절반은 망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하청업자가 대기업을 좋아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자본도 종속을 좋아 할 리가 없다. 모든 사업자의 최대의 소원은 독점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미 FTA는 종속이 눈앞에 보임에도 그것을 경제선진화라고 부르자고 한다. 대미 종속이 그것도 포괄적인 종속이 어떻게 새로운 성장엔진인가.
책을 읽는 동안 시작된 갑갑증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 최고조에 이른다. 휴... 대체 내가 뭘 믿고 이 나라에서 이러고 살고 있는 걸까.
대통령은 대내 협상팀을 구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고, 어제 청와대의 누군가는 협상팀이 축구 대표팀이라도 되는 양 응원을 부탁한다는 글을 올렸다. 협상 전문가라고? 드림팀이라고? 믿어달라고?
그런 주제에 벌써 오늘 오전에 '개성공단 한국산' 포기 방침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미 FTA의 내용과 방향 등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국에서는 대학교수만 1,400여 명이 달라붙었다 한다. 미국 국회의원들의 관심과 압력은 당연하다.
공청회 없고, 연구보고서 달랑 3권 내고, 국회의원들은 4대 선결조건이 뭔지, FTA 내용이 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협상팀은 미국에서는 이미 다 공개한 협정문을 꽉 움켜쥔 채 전략이 어쩌고 하는 따위의 소리나 지껄이고, 미국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퍼주고, 경찰은 시위대를 밟고,
미국 드림팀이냐? (미국)개가 웃겠다.
아우, 속쓰려. 점심 먹은 거 안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