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식사를 함께 한 분은 부인이 5년째 암투병 중이다. 작년에 암세포는 모두 제거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 문제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바이스러만으로도 치명적이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지난 주에 패혈증과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며칠 째 의식불명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 하시는 말씀으로는, 패혈증도 폐렴도 좋아졌는데 지난 이틀간 엄청난 양의 하혈을 했다고 한다. 몸에서 혈소판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지혈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의식불명이고, 잠깐씩 정신을 차릴 때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단다. 남편더러 아버지라 하고, 작은 아이에게는 동생이라고 한단다.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속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밥 그릇 위로 얼굴을 숙이고 그저 숟가락만 놀려댔다. 그나마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전 해 받은 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불과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견된 암은 이미 말기였다. 어떻게 손 쓸 수도 없이, 진단이 내려진 후 2개월이 채 못 되어 가셨다. 아버지와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도, 몇 년 전 먼저 세상을 뜨신 작은 아버지도 모두 간암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 없이 못산다고 울던 엄마는 이제 우리들이, 특히 남동생이 같은 병에 걸릴까 근심이다.
가만 보면 주변에 암과 같은 난치병 환자들은 한둘이 아니다. 회사 동료의 누님도 2년이 넘도록 병원에 누워있고, 지난 주에는 친구의 막내 이모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암은 이제는 지나치게 흔한 병인 것만 같다. 마치 ‘감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감기처럼 쉽게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가족 중에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온 가족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나마 그렇게 고생해서 완치가 되면 다행이지만, 온갖 노력도 헛되이 죽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가족을 살리고자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가족을 잃고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비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연구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다만 황우석 박사 자신도 말했듯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연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MBC PD수첩의 취재를 놓고 이래저래 말이 많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생명윤리’나 난자의 불법 채취에 관한 ‘연구자의 윤리’ 같은 문제들은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고,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취재가 ‘국익’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익’의 실체가 뭔지, 대단히 헷갈린다.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를 ‘국익’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이 곧 ‘돈’이 되는 기술이라는 의미인 듯 하다. 삼성 핸드폰이 세계 시장에서 막강한 파워를 가지듯이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 성과도 우리나라에 돈을 벌어줄 것이라는 의미 말이다. 이건, 말하자면 현재 세계 유수의 제약 업체들이 하는 짓과 똑 같은 거 아닌가. 이런 저런 특허를 걸어놓고 20~30년씩 신약 생산을 독점하며 약값을 있는 대로 비싸게 받아 먹는, 그래서 치료약이 있는데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 죽어가는 걸 모른 척 하고 있는, 저 서구의 돈 많이 버는 제약 회사들. ‘국익’을 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런 건가?
‘국익’ 운운하며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를 무조건 진행하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난 이런 점이 염려 된다. 그런 논리를 따라가자면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가 성공하더라도, 난치병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치료 기술이 아니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또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일부 기업이 돈을 번다고 치자. 그걸 ‘국익’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특정인들의 배만 불려주는 게 아니라?
‘국익’ 이딴 거 말고, 사람의 생명을 위한 연구에 정말로 필요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