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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송 2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1권에 이어......
‘19세기의 정통 소설 스타일’을 기초로 했다고 밝혔듯이 소설 속의 묘사는 상당히 섬세하고 치밀하다. 예술과 창작에 관한 논의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도 등장 인물들은 단어의 본래 뜻과 상황이 내포하는 의미까지를 포함하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말을 고른다. 그러면서도 언어의 부정확 혹은 불명확을 염려한다. 그러한 고민, 대화 중의 미묘한 심리 변화, 상대방의 표정이나 이해의 정도를 살피는 태도, 심지어 침묵의 소리와 의미까지 농밀하게 표현된 글을 읽고 있자면 마치 영화를 슬로모션으로 보는 듯 하다. 모든 동작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 사이에 울리는 미세한 감정의 파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하여 소설은 길어질 수 밖에 없으나 지루하거나 따분하다기보다는 ‘현실’을 새롭게 보여주는 일종의 프리즘으로 작용한다. 책을 읽어가는 와중에, 작품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와 태도에, 상대방의 반응에 보다 신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어느 인터뷰에서 “문학의 힘은 ‘언어의 명확성’, 즉 생각이나 사고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명확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근원적인 문학적 힘 역시 언어를 구체화 시키는 명확성에 기인한다.”고 언급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가 지닌 문학적 힘은 다른 형태의 예술 작품인 그림과 음악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른다. 1권 마지막 부분에서는 들라크루아가 몇 년간 심혈을 기울인 하원 도서관 천장화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질서와 무질서의 대립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하여 「그리스에 문명을 전하는 오르페우스」와 「이탈리아를 유린하는 아틸라」를 통해 화가가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설명하고, 그림의 전체 모습을 부분으로 나눠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들라크루아가 자신이 정한 주제와 세계관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듯이, 히라노 게이치로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언어로 형상화해낸다.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클래식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고 들었으나,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일 터이다. 쇼팽의 연주회 장면은 40여 쪽에 이른다. 한 곡 한 곡 연주할 때마다 변화하는 연주자 쇼팽의 태도와 감정, 청중의 반응, 피아노의 선율을 타고 피어 오르는 정경, 연주회장의 뜨거운 열기를 섬세하게 짚어내는 묘사를 따라가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라곤 전혀 없는 나조차 쇼팽의 녹턴과 프렐류드와 첼로 소나타를 듣고 싶은 열정에 휩싸이게 된다. 가히 문학의 힘이라 할만 하다.
작가는 “르네상스를 앞둔 중세 말기를 무대로 한 『일식』, 일본의 근대화를 추진한 메이지 시대 말기가 배경이었던 『달』, 1840년대 프랑스의 혁명기를 묘사한 『장송』까지 모두 ‘시대의 전환기를 탐색한 3부작’으로 구상했다. (역자 후기)”고 밝혔다. 작가의 구상은 타당해보인다.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새 천년으로 진입한 현대 역시 시대의 전환기일 터이므로, 과거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밝혀내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지 않던가. 또한 이는 작가 자신이 원했던 대로 ‘문학의 역사’를 자신의 창작에 흡수하여 탄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꼼꼼하고 치밀하게 자신의 길을 준비하는 이 작가의 행보가 새삼 감탄스럽다.
2003년과 2004년에도 『다카세가와』,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이라는 단편집을 발표했고, 현재 번역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단편집은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 한다. 드디어 동시대로 들어선 히라노 게이치로가 어떤 작품을 써냈을지 사뭇 궁금하다.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을 1순위 작가다.
* 한 가지 아쉬운 점. 조르주 상드를 비롯한 비중 있는 조연급의 여자들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조르주 상드에 대해서는 아는 바 전혀 없으나 이 소설을 통해 보자면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에서의 '낭만주의적 인물'이다. 여성에 대한 관점조차 고전주의식으로 따라간 건지, 다소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