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길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현세의 적들, 떠나라!
옛날을 흠모하는 자, 옛날로 돌아가라! 세상에서 떠나고 싶은 자, 어서 떠나라! 하늘로 오르고 싶은 자, 어서 올라가라! 영혼이 육체를 떠나고 싶은 자, 어서 떠나라! 현재의 지상에는 현재를 끌어안고 지상을 끌어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현세를 싫어하는 인간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현세의 적들이다. 그들이 하루 더 머물러 있으면 현세는 그 하루만큼 구원이 늦어진다.
노라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인형의 집>에서 집을 나온) 노라는 이미 깨어났다. 다시 꿈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그녀는 집을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집을 나간 뒤, 경우에 따라서는 타락할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녀는 각성한 마음 이외에 또 무엇을 가지고 나갔는가?” 가지고 나간 것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빨간 털목도리 하나뿐이라면, 그 넓이가 두 자이건 세 자이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녀는 더 부자여야 하며, 핸드백 속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란 말은 매우 귀에 거슬린다. 고상한 군자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의견이란 것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식전과 식후가 왕왕 다른 법이다. 무릇 밥은 돈을 줘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돈 소리 하는 것은 비천하다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의 뱃속을 눌러보면 분명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와 생선이 남아 있을 것이기에, 하루를 굶긴 뒤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라를 위해서는 돈, 고상한 말로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돈에 팔릴 수는 있다. 인간에게는 한 가지 큰 결점이 있다. 자주 배가 고픈 것이다. 이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그리고 인형이 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날 사회에서 경제권이 제일 중요하다. 따라서 첫째, 가정에서 남녀간에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사회에서 남녀간에 동등한 힘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권리를 어떻게 해야 획득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육의 잔칫상
이른바 중국의 문명이란 사실 부자들을 위한 인육의 잔칫상을 차리는 것일 뿐이고, 이른바 중국이란 사실 그 인육의 잔칫상을 준비하는 주방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서 중국 문명을 찬미하는 자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고서도 찬양하는 무리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외국인들 가운데 모르고 찬미하는 자는 용서할 수 있다. 높은 자리에서 사치스럽고 안일하게 지내다가 이로 인해 정신이 미혹되고 정신이 마비되어 찬미하는 자도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부류가 있다. 그 하나는 중국인들은 열등한 인종이기에 원래대로 사는 것이 어울린다면서 중국의 낡은 것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부류는 세상의 여러 다른 모습을 보면서 자기 여행의 재미를 더하려는 사람들로 중국에서는 변발을 보고, 일본에서는 게다를, 고려에서는 갓을 보고, 복장이 똑같으면 재미가 없다고 여겨 아시아의 서구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참으로 가증스럽다. 러셀이 시후西湖에서 가마꾼이 웃는 것을 보고서 중국인을 찬미하는 데는 다른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마꾼이 가마를 타는 사람에게 미소를 짓지 않았다면 중국은 진작 지금과 같은 중국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문명은 외국인을 도취시킬 뿐만 아니라 일찍이 중국의 모든 사람들을 도취시키고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