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아직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었나보다.
평소에 일기 예보를 전혀 듣지 않는 나는 당장 비가 오거나 날이 완전히 흐리지 않는 이상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는다. 그날도 조금 흐리긴 했지만 하루 종일 멀쩡했는데 퇴근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는 5분 거리. 비가 많이 쏟아졌으면 우산을 샀을 터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집에서 뒹굴고 있는 몇 개의 우산을 생각하니 새로 사기가 아까웠다. 그냥 맞지 뭐, 하는 심정으로 느긋하니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옆으로 쓰윽 하더니 머리 위에 우산이 있다. "같이 쓰고 가실래요?" 내 또래의 여자. 비 맞으며 걷는 폼이 안돼 보였던걸까. 하여간 그이 덕분에 집 근처까지 비를 피해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비가 오던 날, 이번에는 미리 우산을 챙겼다. 지하철에서 나왔는데 지난번의 나처럼 우산을 쓰지 않은 여자가 보였다. 어쩐지 빙긋 웃음이 나면서, 내게 우산을 같이 쓰자 했던 마음씨 고운 그이가 떠올랐다. 그래, 도움받은 건 갚아야지.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던 우산 없는 이를 쫓아가 우산을 내밀었다. "같이 가세요." 조금 당황스런 얼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 틀림없이 지난번의 내가 그랬을 것이다. 아무 말없이 나란히 걸어서 우리집 근처까지 왔다. 다행히 그 분의 집은 바로 조금 위라고 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헤어졌다.
이후로는 우산없이 비 맞는 사람을 본 적이 없나보다. (사실 젊은 남자들을 보긴 한 것 같은데, 남자들에게는 그런 말을 못하겠더라만. -_-;)
오늘 지하철에서 같이 내린 한 아주머니의 손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앗, 같이 가시자고 해야지, 하면서 "저기요," 말을 걸려는데, 그 아주머니, 쏜살같이 뛰어 가신다. 이런, 조금만 빨리 말할 것을. 오늘은 제법 빗발이 거센걸.
그 아주머니 때문에 내게 우산을 씌워줬던 고마운 이가 생각났다. 여전히 미소가 떠오르고, 그 아주머니께 미안한 마음도 든다. 다음부턴 꾸물거리지 말고 재빨리 말을 붙여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