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봐 봐야 건강에 해롭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울 보스가 나한테 이 기사를 보라고 알려줬다. 아, 짜증나.

 

한나라당에서는 평일 오전 9시 최고위원 또는 주요 당직자들이 참석하는 간부회의가 열린다. 자신들을 주시하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화려한 말의 연찬이 펼쳐지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말의 80% 이상이 정부 여당을 향한 비판과 독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자중하고 있어서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여야간 공방중에 나온 자극적인 발언들을 모아 큼지막한 제목으로 보도하는 게 정치부 기자의 중요한 하루일과인 적도 있었다.

국가정책의 주도권을 쥔 쪽은 여당이다보니 야당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정부여당 비판'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말과 튀는 논리를 좇는 속성이 있기에 이에 영합한 정치인들이 마지노선을 넘나드는 발언을 할 때도 있다.

12일 오전 상임운영회의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날 행한 군 과거사 정리 발언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민들이 최근 과거문제에 관심이 있고, 군에서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군이 스스로 과거문제를 스스로 밝히고 정리하라는 게 노 대통령의 얘기였다.

노 대통령 발언은 '군이 과거 의문사 조사에 적극성을 보여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되지만, 한나라당은 이 정도의 발언조차 감내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분위기다. 일본육사를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를 맡으면서 과거사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군대에서도 과거사 캐기가 나오는데, 간단하게 한 말씀 드리겠다. 해방직후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세 가지 계열로서 우리 군이 창설됐는데 광복군계는 숫자가 적어서 별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못하고 쇠퇴해버린다. 그래서 실제적인 능력과 전문성, 식견을 가진 일군과 만군계가 해방 후 자리잡게 되고 우리 군의 근간이 형성됐다.

1950년대 참모총장이 8명이었는데, 일본군계 출신이 정일권씨 등 3명이나 된다. 우리 군의 과거사를 캐겠다는 얘기는 군의 뿌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인데, 국가 정체성을 완전히 뒤엎겠다는 것이다. 어제 군의 과거사를 캐겠다는 얘기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부터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이날 회의에서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철 의원이 했던 말이다.

'군의 과거사 정리'를 군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심 의원은 스스로의 뿌리부터 심각하게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심 의원이 누구인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서울역 시위를 주도했다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MBC 기자 시절 노동조합 설립에 적극 참여했고, 92년에는 파업을 주도했다가 구속까지 당한 사람이다.

'역사 바로세우기' 흐름타고 정계 들어온 사람이 '군 과거사 정리'는 반대?

심 의원은 96년 한 차례 낙선의 아픔을 본 뒤 2000년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지난 총선에서는 탄핵 역풍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재선 고지에 올라섰다. 그런 그가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96년 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며 정치권 세대교체의 물꼬를 튼 것이 그에게 정치권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95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5∼6공의 최고 권력자들에 대한 단죄를 꺼려했던 검찰의 논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직 국가원수들에 대한 처벌은 정치보복이고,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게 당시 수구세력들의 논리였다.

궁색한 논리는 박계동 의원의 노태우 비자금 폭로 이후 비난 여론이 폭발하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성공한 쿠데타가 영원한 권력을 약속하지 못하고, 일단 허물어진 권력은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95년 초겨울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준 교훈이었다.

심 의원이 '군의 과거사 정리'를 비판한 논거로 돌아가보자. 국군 창설과정에서 일본군 출신들이 광복군을 제치고 어찌어찌 대세를 장악해버렸는데, 이러한 현실을 건드리면 우리 군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이 문제를 국가정체성 문제로 연결시켜 이념 논쟁을 촉발시키려고 했다.

자신들의 비행을 갖은 논리로 미화하고 합리화하려던 군사쿠데타 세력들은 95년에는 진실과 거짓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변변한 저항도 못해보고 심판의 오랏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9년전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도한 YS의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에서 정치를 시작한 심 의원이 지금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왜 안된다고 토를 다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날 회의에서 심 의원의 말을 이어받은 김용균 제1사무부총장의 얘기는 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전혀 다른 것이다. 만주군은 만주제국이 따로 있었고, 물론 일본이 만주국을 조종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만주군과 일본군은 전혀 별개이고, 만주군과 관동군은 전혀 관계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군 소속으로 성적이 우수해서 일본육사를 졸업했다. 중국의 장개석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사관학교를 나와서 성적이 우수해서 일본사관학교를 나왔지만, 일본군인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만주군 소속이었지, 일본군이나 관동군 소속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김 부총장 얘기는 일본과 만주국의 관계를 따지지 않으려는 것에서부터 논리의 허점을 드러낸다.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에 세운 괴뢰국가가 만주국이었고, 중국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 국가의 실세가 다름 아닌 관동군(일본이 중국과 소련을 침략할 목적으로 1906∼45년 중국 동북지방에 배치했던 일본군 주력부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육사 나온 장개석이 일본군 아니었으니 박정희도...?

1932년 9월 한국독립군의 이청천 총사령관이 지린성 자위군과 합세해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사이의 요충지 쌍성보로 진격할 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만주군 3천명과 소수의 일본군이었다. 한·중 연합군은 초기에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항공기까지 동원한 일·만 연합군의 역습으로 결국 퇴각하고 말았다.

일본의 괴뢰군대로 독립군 소탕에 동원된 만주군을 놓고 부득불 "그래도 일본군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에 기생해 동족들의 고혈을 짠 친일파 조선인들을 놓고 "그래도 일본인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두둔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일본육사에 입학한 박정희와 일본유학 시절 일본군에 근무한 장개석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문제다. 장개석이 1906년 바오딩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육사에 들어가 일본군 특유의 군율을 몸에 익힌 것이 1909∼11년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똑같이 일본육사를 거쳤지만, 박정희와 장개석의 인생행로는 전혀 달랐다. 장개석은 1907∼1911년 일본유학 시절에 만난 공화파 유학생들의 영향을 받아 반청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귀국한 장개석은 청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장개석의 일본육사 경력이 일본이 아닌 모국의 미래를 위해 활용된 것은 그의 이념성향과 상관없이 평가돼야 할 부분이다.

반면 박정희는 어땠는가? 일본육사를 졸업한 뒤 만주군 장교로 활약하며 일본제국주의의 이익에 복무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한국교원대 신주백 교수는 2002년 논문(만주국군 속의 조선인 군인들)에서 만주군관학교 출신 조선인들의 의식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논문에서 "당시 군관학교 재학생 대다수는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은 소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항일비밀결사를 꾸려 기회가 날 때마다 장개석이나 모택동의 군대로 달아난 반면, 광복군·조선의용군 등을 향해 탈출한 조선인 학생·장교는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입신양명'을 노린 친일파들이 민족을 배반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친일반민족진상규명법의 핵심이고, 이들의 행태가 떳떳한 검증작업을 받는 것이 만시지탄이라는 느낌까지 드는 요즘이다.

5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무리한 논리 전개가 기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2004/08/12 오후 8:23
ⓒ 2004 OhmyNew

 

이 XX들아, 차라리 대한민국이 여전히 일본 식민지라고 우겨라.

점심 먹은 거 소화 하나도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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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8-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이 콱콱 막힙니다. 딴나라당 간부회의장에 크레모아나 한방 날렸으면 속이 시원하련만.

mira95 2004-08-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뉴스 거의 안 봅니다.. 속 터져서...

2004-08-14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14 0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14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14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