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훔치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빛깔·소리·목소리·모양 따위가)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곱다(예쁘다)

 

‘아름답다’에 대한 국어사전 정의이다. 여기서 보듯 아름다움이란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감각을 매개로 인식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나 예술 작품 등 다양한 것을 보고 들으면서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감각은 매개일 뿐, 실제로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동일한 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감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느낌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다른 것과 달리 사람을 아름답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감각으로 인식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타인의 가슴에 닿을 수만 있다면, 외모에 관한 것이거나, 심성에 관한 것, 혹은 그 둘이 합쳐져 한 인간을 형성하는 그 무엇에 관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의 아름다움을 획일적인 기준에 따른 외모로 더 많이 평가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확실히 서구의 영향이랄 수 밖에 없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일찍이 서구에서도 심히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던 모양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슈타이너 부인 프란체스카는 20여 년 간 수백명의 애인, 이라기 보다는 섹스 파트너를 가졌다.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았고, 한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으려 했기에 갈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에게 머무르던 사람들의 시선이 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에게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늙고 지친 슈타이너와 난장이 레몽을 설득해 ‘아름다움의 건초장’에서의 은밀한 작업을 시작한다. 프란체스카의 주장은 이렇다. 아름다움이란 타인의 시선을 받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괴로움을 주므로 원천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갓 피어난 꽃처럼 싱싱한 여인들을 지하 골방에 가두어놓으면 불과 1~2년 만에 그들은 말라 비틀어진 노파가 되고 만다. 그녀의 주장은, 미친 소리임이 분명하지만, 나름의 철학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미(美)란 ‘두렵고 무서운 것의 시작’이라는 릴케의 말마따나 지나치게 아름다운 사람이 본의 아니게 타인을 괴롭게 하거나 그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는 일까지 생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해악을 극렬하게 주장하면서, 타인으로부터의 시선을 제거하면 아름다움은 스스로 시들어버린다고 말한 슈타이너 부부와 레몽이, 실은 젊은 미녀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정기를 마심으로써 자신들의 육체를 나이보다 젊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의 주장과 거기에 점점 이끌리는 뱅자맹의 모습에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나는 이 대목에 이르러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푸하, 웃고 만다. 스스로의 주장과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 부조리함이라니.

 

이 소설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오로지 외면적인 것, 특히 섹스 어필이다. 이는 '스무 살의 아름다움은 자명한 거야. 서른 살의 아름다움은 보상이고 쉰 살의 아름다움은 기적이지.' 라는 프란체스카의 대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이 아무리 곱게 늙어도 성적 매력이 감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젊음이야말로 육체적 성적 아름다움의 근원이고, 슈타이너 부부와 레몽이 훔치는 것도 실상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젊음이다.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려는 부질없는 욕망에 몸을 맡긴 어리석은 이들이여.

 

<아름다움을 훔치다>는 인간의 헛된 욕망에 관한 풍자이고 조롱이다. 브뤼크네르는 젊음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아름다움에 현혹되는 사회의 경망스러움과 아름답게 늙어갈 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통렬한 이야기, 읽는 재미 또한 넘치는 멋진 작품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07-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주의 마이 리뷰 따라 왔습니다.(알라딘 서재에서...)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통렬한 얘기라니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urblue 2004-07-2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소설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류의 얘기들이 잘 읽힙니다. 기회 되시면 읽어보세요. 아마 오랜 시간 잡아먹지는 않을겁니다. 이거 상당히 재밌거든요. ^^

IshaGreen 2004-08-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갑니다^^
멋진 리뷰였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urblue 2004-08-0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스스무 2004-11-1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미 있게 읽었던 책이죠...

많은 분들이 아름다움을 훔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