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남편은 친구들과 술 한잔 한다고 놀러 가고 나는 혼자 <플루토에서 아침을>을 보다.
하루님 서재에서 포스터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그날로 극장을 찾은 것인데,
기대한만큼 재미있고 좋은 영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의 킬리언 머피는, 
경계가 흐린 옅은 푸른색 눈동자와 진지한 얼굴이 부담스러운,
별로 호감가지 않는 배우였다.



하지만 그가 여장을 하고 진지함을 던져버리고 교태를 부리자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원래 그런 취향은 아니다. -_-; )



 

토요일.
술 마시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을 일찍 깨워 잠 못자게 괴롭힌 후
충무집에 데려가 도다리쑥국으로 해장을 시켜줬다.
맛있었지만 내 입에는 조금 짠 듯했는데, 남편은 엄청 좋아한다.
회사 근처 버스 정류장에는 경기도에서 오신 할머니들이 야채 몇 가지를 놓고 좌판을 벌인다.
그 중 쑥도 본 것 같아서 도다리쑥국을 직접 끓여보기로 마음먹었다.

점심을 먹고 <퀴담>을 보러 잠실 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사실 기술적인 면만 놓고 보자면 <퀴담>팀은 북한이나 중국의 기예단보다 못하지 싶다.
국내 서커스단도 그만큼은 할걸.
하지만 음악과 맞물린 '공연'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 보기엔 음악의 비중이 8할이다.
CD를 사야겠다.

우리 좌석은 둥근 공연장의 왼쪽 끝편이었다.
여기서는 공연장 중앙에 선 사람들의 등이 보이고 무대 뒤편은 조명탑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R석이라고 110,000원이나 받아먹다니!
R석의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가격을 올리는 부당한 행태에 짜증난다.  

집으로 돌아와 피자 시켜놓고 와인 마시며 만화책 보는 것으로 마무리.
평소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를 거부하는 남편이지만 아침부터 잠 못자게 괴롭힌 보람이 있는지
쓰러지다시피 잠이 든다. (그러게 누가 새벽까지 놀고 다니래.)

 

일요일.
늦잠자고 일어나 있는 반찬으로 대강 아침먹고 <300>을 보러 갔다.  
하지만 이건, 좀 실망스럽다.
누군가는 <씬 씨티>가 재미있었다면 이 영화도 재미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니던걸.
줄거리는 지루하고,
장점이라던 영상은 (보지는 않았지만) 프랭크 밀러의 만화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말고는 이렇다할 아름다움을 찾기 어렵고,
300명 남자들의 몸매도 그저 그렇고.
남편은 심지어 그 남자들의 몸이 풍뎅이나 꽃게 같다고 말한다.
"풍뎅이는 그렇다치고, 꽃게?"
"꽃게 안쪽 껍질 같잖아요."
ㅎㅎㅎ

남편 생일이어서, 저녁에 미역국은 끓여주었다.
어째서인지 화한 맛이 나는 미역국에, 약간 밍밍한 잡채에, 그나마 좀 맛있는 명태 불고기로 저녁상을 봤다.
그래도 둘 다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사다놓은 딸기조차 먹지 못할 지경.

이렇게, 잘 놀고 잘 먹은, 그야말로 제대로인 주말이 지나갔다.   

<플루토에서 아침을>과 <퀴담>은 따로 페이퍼를 쓸까 하였으나 귀찮아서 패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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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9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ng 2007-04-0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루토에서 아침을...기대중이에요
킬리언 머피는 나이트 플라이트에서도 제대로 무서웠다구요 ㅎㅎㅎ
퀴담...표 안사길 잘했다 뭐 그런 안도는 들지만
그래도 궁금해서요~~~

Mephistopheles 2007-04-0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공연표값이 타국에 비해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영화표에 끼어 나오는 영화진흥공사에서 뜯어가는 삥값은 퇴직자들
퇴직금으로 지불된다는 내역을 알게되고 아주 혈압이 단단히 올랐던 기억도
나는군요...^^

클리오 2007-04-0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게으른 우리 부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강행군이군요.. ^^

2007-04-09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7-04-0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28일후]에도 나왔던가요? 그건 보질 않아서... 이 영화에서부터 주목하려구요. ^^

다음 속삭님, 그러게요, 딱 말씀하신 대로인 것 같네요. 그 구슬픈 듯 경쾌한 듯 마음을 흔드는 음악이 무척 좋았는데, 그것만 따로 들으면 그만한 감동은 없겠죠.

몽님, 플루토는 꼭 보시길. 에... 나이트 플라이트..는 또 뭔가요? -_-;
퀴담은, 그래도 볼 만 했어요. 가격이 조금만 싸면, 아니 좌석을 제대로만 해 주면 좋겠어요.

메피스토님, 티켓값만 놓고 보자면 최고 부자 수준 아닐까요? 그래서 보고 싶은 공연이 올 때마다 더 짜증납니다.

클리오님, 어쩌다 한 번이에요. 매주 저렇게는, 절~대 못하죠. ^^

딸기 2007-04-10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꽃게 안쪽 껍질 ^^
블루님 어쩐지 오랜만인 듯.

urblue 2007-04-1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명태를 약간 말려서 고추장 양념에 재 놨다가 석쇠에 굽는 겁니다. 같은 양념에 오징어 불고기를 만들어도 좋아요. 물론, 명태도 오징어도 엄마가 다 손질하고 말려서 보내주신다는 문제가 있지만요. -_-a

딸기님, 꽃게 껍질에 공감하시는 건가요? ^^ 게을러져서 페이퍼 하나 제대로 올리고 있지 않으니 오랜만이 맞지요.

chaire 2007-04-10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남편 생일이어서 미역국'은', 끓여주셨군요. 하하.
그래도 도다리쑥꾹도 끓여주신 걸 보면 좋은 아낸 거 같은데요. ㅋㅋ.
300 재미없을 것 같던데, 역시 그렇군요. 보리밭과 플루토는 봐야 할 영화 목록에..

urblue 2007-04-1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다리쑥국은 아직 못 끓였어요. 어제 쑥을 사갔는데, 이 남편이 회식 있다고 늦게 들어오네요. 칫. 오늘은 뭐 부서에서 남산으로 꽃구경을 간다나 어쨌다나.
보리밭도 플루토도 보시면 좋아요. ^^
전 이번 주에 '타인의 삶'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 '밝은 미래' '파솔리니 영화제'를 놓고 고민 중입니다. 잘 봐야 두 편 정도 가능할텐데, 뭘 고를까요?

sandcat 2007-04-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차, 이 말을 빼먹었네.
'저녁상을 봤다'라는 표현에 쉼표 찍고 가요. 좌석을 바꾸고 남은 돈으로 술 먹기로 했어요. ㅎㅎ

urblue 2007-04-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꽤 많이 드시겠어요. ㅎㅎ

마냐 2007-04-1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부부 답군여. 놀라운 일정 소화 능력에다...맘 먹고 해장하러 시내까지!
영화는 땡기는군여...전 킬리언 머피,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눈여겨 보았었죠. 분위기가 보리밭때랑 사뭇 다르지만..ㅎ

urblue 2007-04-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킬리언 머피가 그렇게나 많은 영화에 출연했군요. 전 완전히 신인인 줄 알았습니다.
시내야 뭐, 어차피 퀴담 예약이 되어 있는거라 들른거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