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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은 글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든 한 인간의 내면을 펼쳐 보이든,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독자의 머리 속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완전한 작품이라면 사진이나 그림 등 다른 시각적 보조 수단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요, 다른 수단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면 그 작품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시의 경우에는 자간이나 배열을 바꿈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겠으나, 소설은 마땅히 그런 시도를 포기하고 오로지 글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내 고정관념이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에서 살바도르 플라센시아는 종이 위에 변혁을 시도한다. 문단 배열 형태를 바꾸고, 빈 페이지를 그냥 두고, 검게 칠하고, 심지어 종이에 구멍을 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 작품을 완전히 낯설고 새롭다고 평할 수만은 없는데, 국내에서 작년에 출간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이미 이러한 시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페이지도 있고, 한 페이지에 단 한 문장 뿐이거나, 줄을 그어 지우고 다시 쓰거나, 빨간 펜으로 교정을 하거나, 글자가 겹치기도 한다. 몇 장의 사진도 실려 있다.) 미국에서는 두 작품 모두 2005년에 출판되었으며, 어느 작품이 먼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 작가가 거의 동시에 소설이라는 출판물에 대한 반역을 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국내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먼저 소개되었고 이미 그 작품을 보았기에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이 위의 형식 파괴가 소설의 내용과 보다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야 할까.
미안한 얘기지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노력이 전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허접스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다양한 시도들이 변혁이 아니라 사족처럼 느껴졌다.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소설은 역시 글로 승부해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은 더욱 강해졌다.
반면 『종이로 만든 사람들』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편집이 주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EMF 단원이 토성에게 본심을 감추기 위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 이 사람의 생각은 페이지 끝까지 쭉 연결되어 종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걸 읽고/보고 있노라면 언제까지고 쓸데없는 생각의 목록이 이어질 것만 같다. 아마 말줄임표같은 것으로 처리했다면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을 터이다.
또 아기 노스트라다무스나 꼬마 메르세드가 토성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막을 치면 토성은 물론이고 독자들까지 검은 장막만 볼 수 있을 뿐이다. EMF 단원들, 아기 노스트라다무스, 꼬마 메르세드는 이 작품 속에서 작가(토성)가 쓰고 있는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이다. 말하자면 액자 구성인데, 소설 속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소설 속 작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면 이 책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읽는 독자들조차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꽤 재미있는 발상이다. (방어막을 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검게 칠한 칸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 작품(『종이로 만든 사람들』)과 그 안의 소설(<종이로 만든 사람들>)과 그 모든 걸 읽고 있는 나(바깥과 안의 동시적 독자)와의 관계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틀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작가가 시도한 형식 파괴와 이미지 조합의 효과일 수 있겠다.
이제서야 소설이 때로 보조 수단을 활용하여 더욱 완벽한 구조와 의미를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한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은 쓸쓸하고 쓸쓸하고 쓸쓸한 사랑 이야기이자 "실연의 상처로 가슴앓이 하는" 망가지기 쉬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리가미(종이를 접어 여러가지 모양을 만드는 예술) 외과의가 종이로 만들고 꼬마 메르세드가 이름을 붙여준 '메르세드 데 파펠('파펠'은 '종이'라고 한다.)'이 등장하여 마르케스나 보르헤스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우리는 모두 종이로 만들어졌다고 내게 가르쳐준 리즈에게"라는 헌사(이는 아마도 소설 속 소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의 헌사인 듯 하다.)에 담겨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은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의도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쉴 새 없이 바스락거리면서 종이 조각을 상대방의 침대며 카펫이며 옷속에 떨어뜨려 놓지만, 때로 상대가 몸에 남겨놓은 흔적은 몸을 다른 종이로 갈면서 무정하게 지워버린다. 날카롭고 뻣뻣하지만 단 한 번의 충격으로도 쉽사리 찢어져버릴 수 있다.
사랑했던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도, 사랑에서 생겨나는 '쇠퇴의 역병'보다 헐리우드를 더 좋아했던 남자도, 영원한 사랑을 절대 믿지 않게 된 여자도, 다른 사랑에 눈멀어 남편과 자식을 떠난 여자도, 절대 돌아오지 않을 부인을 기다리며 잔디밭을 다듬고 또 다듬는 남자도, 떠난 사랑에 울고불고 목매는 이도, 우리 모두는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종이 심장과 종이 혈관과 종이 피부를 부여잡고 사랑을 한다. 물에 녹고 불에 타는, 무방비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